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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디어 사라지는 '차렷-경례'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은 "일선 학교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이 일제시대부터 그대로 답습된 것이 많고, 구령으로 시작해 구령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경직되고 권위적인 학교문화가 학생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교육청이 벌인 조사로는, 수업이나 학내행사에 구령이 사용되는 나라는 한국·일본·중국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은 구령 없이 인사하기 말고도 번호나 '야','너' 등의 호칭 대신 학생 이름 부르기, '일어서' 대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처럼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 <한겨레> 2004.6.9.


그저께입니다. 제사가 있어 부모님 계신 용인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전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 새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다음달(7월) 5일부터 서울시 학교에서 '차렷-경례' 같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마침 충주에서 일을 하다가 용인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날 충주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고를 갈무리하며 본 원고 가운데 하나로 '교쓰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쓰케'는 낯선 말입니다. 일본말이죠. 1989년 11월에 이오덕 선생님은 '교쓰케' 란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를 살피는 글을 썼습니다. 물론 이오덕 선생님도 한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지만 이 말뿌리를 알게 된 뒤부터는 당신이 교감-교장으로 있던 학교에서는 쓰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것 때문에 교육청 사람들과 꽤 싸우기도 했다는데….

송영이라는 분이 쓴 소설 <월파선생>을 보면 3·1운동이 있은 바로 뒤에 어느 서당에서도 "기착-경례"라는 말을 썼다는군요. 여기서 '기착'이란 일본말로 '교쓰케(氣を着け)'라 합니다. '교쓰케'는 일본 병사들이 천황에게 무조건 복종한다는 뜻에서 쓰였던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교쓰케(氣を着け)'의 한자만 따서 '기착'이라고 썼습니다. 이 말을 일제 강점기 때 학교에서 뿐 아니라 '서당'에서도 썼다고 하니,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국 사람을 아주 뼛속 깊이 식민지 노예로 삼으려고 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요. 그러니 해방이 된 뒤에도 '기착(차렷)-경례'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았겠죠? '기착'이라는 일본말만 우리말로 '차렷'으로 바꾼 채로요.

▲ <참교육으로 가는 길> 겉그림입니다.
ⓒ 한길사
<2> '차렷-경례'만 없앤다고 끝날 일은 아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참교육으로 가는 길, 한길사(1990)>이란 책에서 '기착(차렷-교쓰케)'이란 말을 안 쓴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원수 선생님이 지은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라는 노랫말에서 '나의 살던'이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익숙하다고, 오랫동안 불러왔다고 바꾸지 않는 모습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꾸짖습니다.

다른 동요 <얼룩송아지>도 서양 송아지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서도 '누렁 송아지'로 고쳐 부르지 않는 우리들이지요? 그러니 '국민학교'란 이름을 '초등학교'로 고치는 데에도 그렇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해방이 된 지 예순 해 만에 드디어 '기착(차렷-교쓰케)'이란 말을 서울시에서만, 그것도 학교에서만 가까스로 쫓아낼 수 있지 싶습니다.

.. 문제는 '기착'을 안 썼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40여 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교에서 '차렷' 하는 구령을 당연히 써야 하는 교육용어로 알아왔고, 그래서 이 말이 무엇을 뜻하며 어디서 왔는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고, 여기에 대한 아무런 깨달음도 없었다 ..<13쪽>


서울시 학교에서 안 쓴다면 대학교에서도 안 쓸까요? 군대는 어떨까요? 일제 식민지 찌꺼기임을 깨달았고, 이제서야 교육 현장에서는 안 쓰기로 했다면 군대에서도 안 써야 옳습니다. 더구나 1920년대 서당에서 쓴 '기착'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면 거의 아흔 해 가까이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써온 '차렷-경례'예요.

우리가 참으로 오랫동안 식민지 노예살이 정신으로 지내왔다는 이야기인 한편으로 군대식 억압교육이 학교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까지 퍼지고 번졌다는 이야기예요. 또 하나 생각해 보아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차렷-경례'를 안 쓴다고 한다면 일반 회사는 어떠한가요?

그뿐 아닙니다.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을 '사열'해 놓고 '훈화'를 듣게 하는 것, 교실로 들어갈 때 '가지런하게 정열'하여 '행진'하도록 시키는 것, 이 모두가 바로 일제 식민지 찌꺼기예요. 그런데 이런 '사열-훈화-정열-행진'을 군대에서는 '군대 문화'라 하여 아직도 즐겨 하는 한편, 예비군 훈련에서도(!) 합니다.

<3> 말을 바로잡는다면 생각과 삶도 바로잡아야

말을 바로잡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장애자(-者)'라는 말을 '장애인(-人)'으로 바꾼다고 '장애자 삶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말에서 '장애우(-友)'로 또 바꾸었는데, '장애자 삶이 나아졌'나요?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은 바꾸었으나 초등학교 구석구석, 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구석구석에는 일제 식민지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잘못된 생각과 사상과 정신에 물든 채 사회인이 되어요. 남자는 군대를 가며 더욱 뼛속 깊이 '군대 위계질서'에 길듭니다. 그러다가 회사원이 되면 더욱 뼛속 깊이 '명령 복종-위계질서'에 푹 빠집니다. 자기 생각을 품고, 올바르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고 살아가는 일에서는 멀어져요.

.. 민주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이 민주교육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교육자라도 자기가 아이들 앞에서 스승이라고 높은 자세로 서서 내려다보아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학생이고 어린아이가 되어 이제부터 민주주의를 아이들과 함께 배운다는 몸가짐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교쓰케' 교육의 해독을 결코 지워 없앨 수 없을 것이다 .. <14쪽>


이오덕 선생님은 20대 철없는 젊은이일 때 '황국신민화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뉘우칩니다. 그때 배운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해방이 된 뒤에도 한때는 일본말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나중에 가서야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크게 깨닫고 평생을 올바르게 참된 교육에 몸 바쳤다고 하네요. 하물며 다른 교사들은 어떠할까요?

말을 바로잡으려고 한다면, 몸가짐과 생각과 삶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좀더 일찍 태어난 사람"일 뿐임을 헤아려야 좋아요. 이오덕 선생님 말마따나 "아이들과 함께 배운다는 몸가짐을 잠깐이라도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살찌우면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참답게 민주주의 나라로 자리잡도록 어깨동무를 하면 좋겠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아름답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그런 나라로 말이에요.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 - 이오덕 교육철학의 뿌리

이오덕 지음, 고인돌(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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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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