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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한국언론학회가 분석한 탄핵방송 평가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언론학자인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 이와 관련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부위원장은 기고문에서 영국 BBC의 공정성 기준 등을 예로 들어 언론학회의 연구는 공정성을 수학적 균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편집자 주


▲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 오마이뉴스
보도에서 공정성 또는 불편부당성이 크게 문제되는 경우는 보도 사안에 관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다. 이 때 시시비비 없이 중립적이거나 초연한 자세로 대립되는 의견을 산술적 균형을 갖추어 제시하는 보도가 공정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공정성은 결코 시시비비 없는 중립성이나 초연성과 동의어가 아니다. 공정성은 또한 대립되는 의견의 기계적 또는 산술적 균형과 동의어도 아니다.

이렇듯 공정성은 산술적 균형이나 중립성이 아니라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방송으로 칭송받는 영국 BBC가 공정성에 관해 강조하는 기본 원칙이다. BBC는 여왕으로부터 칙허장을 받을 때마다 문화부와 합의서(the Agreement)를 작성한다.

그 합의서의 제5부는 프로그램 기준(Programme Standards)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5.1조에서는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적정한 정확성과 불편부당성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treat controversial subjects with due accuracy and impartiality)고 하면서도 5.5조에서는 "적정한 불편부당성이 모든 문제에서 절대적인 중립성이나 기본적인 민주적 원칙에서의 초연함을 요구하지 않는다"(due impartiality does not require absolute neutrality on every issue or detachment from fundamental democratic principles)고 단언하고 있다.

BBC가 칙허장과 합의서에 기초해서 마련한 <제작자 지침>(Producers' Guidelines)은 이점을 보다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침서>는 불편부당성에 관한 섹션에서 "사실적 프로그램에서 불편부당성은 각각의 견해가 단순히 동등하고 대립적인 견해로 보완되는 수학적 균형에 의해서는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impartiality in factual programmes may not be achieved simply by mathematical balance in which each view is complemented by an equal and opposing one)고 지적하는가 하면 "산업적 또는 정치적 논란의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서 상이한 주요 견해들은 그 논쟁이 활발한 동안에는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In reporting matters of industrial or political controversy the main differing views should be given due weight in the period during which the controversy is active.)고 못박고 있다.

여기서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는 말은 의견의 지지도에 따라 보도의 양이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수학적 균형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의견을 더 비중있게 다루는 것이 공정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공정성 또는 불편부당성의 원칙은 BBC가 최근에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을 BBC가 수용한 것이다.

1977년의 <방송의 미래에 관한 위원회 보고서>(일명 <애넌 위원회 보고서>)는 적정한 불편부당성은 균형이나 중립성과는 다르다며 그것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지적했다.

첫째, 가급적 최대 범위의 견해와 의견(the widest possible range of views and opinions)이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방송은 견해의 범위 뿐만 아니라 그 견해를 갖는 의견의 무게(the weight of opinion which holds these views)도 고려해야 한다. 공중으로 하여금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해야 한다는 방송의 의무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조차 비중있게 다루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방송은 견해의 범위와 의견의 무게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이런 원칙 하에서 방송이 논쟁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권고했다. 공정성에 관한 이 지적은 이후 BBC의 프로그램 기준으로 수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BBC의 공정성에 관한 원칙은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다룰 때는 기본 상식이다.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분석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탄핵방송의 공정성을 분석한 언론학회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이 점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공정성을 수학적 균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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