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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가판업자들이 29일 오전 한국일보 본사를 항의방문, 한국일보와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 수 천부를 내던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철저한 배신이다, 일간스포츠라는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30년간 한국일보,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 등 거의 팔리지 않는 신문까지 떠안아왔는데 이제 무료 스포츠신문으로 우리를 죽이려 든다. 다른 것 바라지 않는다, 가판 배포만 하지 말아달라."

29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한국일보 본사 주차장. 수 천부의 신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한국일보>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 등 한국일보사 계열 신문이다. 채 뜯지도 않은 신문뭉치도 수십 개씩 쌓여 있다. 잠시 후 도착한 봉고차에서 2000부의 신문더미가 또 쏟아졌다.

이날 한국일보 주차장에서 '신문반품' 투쟁을 벌인 주역은 신문가판 종사자들. 그러나 이들이 쏟아낸 것은 신문이 아니라 한국일보를 향한 분노와 원망, 배신감이었다. 가판업자를 중심으로 지난해 5월 결성된 '수도권 신문판매인 생계대책협의회'(회장 박명오·생계대책위)는 28일에 이어 이틀째 무료 스포츠신문 <스포츠한국>을 발행한 한국일보를 찾아 항의시위를 전개했다.

이관형 생계대책위원회 기획실장은 "무료신문 범람으로 가뜩이나 생계가 어려워진 마당에 한국일보마저 30년간 고생을 같이 해온 가판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실장은 "일간스포츠 판매권이 6월부터 중앙일보로 넘어가자 한국일보는 무료신문을 만들었다, 그것도 무료 스포츠신문으로 가판 배포까지 하니 그나마 남은 스포츠신문 시장까지 죽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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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가판업자 '무제한 판매거부' 돌입


▲ 한국일보 사옥에 무료 스포츠신문 <스포츠한국> 창간을 알리는 대형 프래카드가 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가판업자들, 무료 스포츠신문 창간에 반발 판매 거부

가판업자들은 지난 주 금요일부터 한국일보,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에 대한 판매거부를 분명히 전달했는데도 그대로 신문이 가판으로 오고 있다며 분개했다. "신문을 마음대로 보내놓고, 나중에 대금은 대금대로 청구할 요량이 아니겠는가"라며 이들은 "신문을 보내지 않을 때까지 '반품 투쟁'을 계속 벌이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신문판매인 생계대책협의회'는 28일 오후에도 <스포츠한국> 배포대행을 맡고 있는 한국일보 판매국 관계자와 자리를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생계대책위원회는 <스포츠한국>의 가판배포 전면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나 <스포츠한국>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생계대책위는 "신문을 찍으라 말라 할 수는 없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30년에 걸친 관계도 한순간에 저버리는 '도의성'을 고발하고자 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참석한 한 가판업자는 "지금까지 세 신문이 발행된지 한 시간 안에 수도권 전역으로 깔릴 수 있게 노력해왔다"며 "되레 지원비를 주면서 더 깔아달라던 신문사가, 또 잘 팔리지 않으니 100만 달라고 해도 200부씩 어거지로 떠안기던 신문사가 이제 와서는 '나 몰라라' 외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돈만 쫓는 다국적 계열 <메트로>나 개인업체 <더 데일리포커스>야 기업논리를 갖고 한다치더라도 공익성을 강조하던 신문사 <한국일보>가 이렇게 나와서야 되겠는가, 이는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행위"라고 쏘아붙였다.

한국일보 계열사인 서울경제가 창간한 스포츠한국은 5월 말 문화관광부에 특수일간지로 등록을 했다. 현재 스포츠한국 사장은 이종승 서울경제 사장이 겸임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2002년 채권단과 맺은 양해각서에 따라 신규사업 진출 진출의 경우 채권단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포츠한국 경영은 미주한국일보가 맡는다는 게 한국일보측 설명이다.

"무료신문의 무차별적 판촉행위 규제 안하면 신문시장 무너진다"

가판업자들은 무료신문의 무차별적 판촉 등 시장공략을 방조하는 관계기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오늘 '밥벌이'를 포기하고 나왔다는 다른 가판업자는 "지하철내 유인물 배포와 매대 설치는 불법이다, 그런데 무료신문은 '신문사'에서 발행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관련 법규를 조속히 정비해서 무료신문이 제도권에 들어오게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따졌다.

▲ 무료신문 <스포츠한국> 창간에 대한 반발로 한국일보,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가 가판에 깔리지 못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그는 지하철 입구에 설치된 무료신문 배포대와 유인 배포행위는 엄연히 단속 대상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어 지하철 안전문제와 과다발행으로 인한 폐지 문제 등도 거론됐다. 그는 "아무런 기준 없이 역 근처에 설치된 수많은 배포대, 경쟁적인 배포 등도 시민안전 차원에서 검토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가판업자들은 유·무료신문의 과다발행으로 폐지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하루 300만부에 달하는 무료신문 폐지와 유료신문의 과다한 무가지로 한때 kg당 160원까지 갔던 폐지값이 최근 80원대로 내렸다는 것. 이관형 실장은 "실제 독자 손에 쥐어지는 것보다 광고주를 의식해서 내는 부수가 더 많다"며 "ABC협회에서 발행부수 확인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가판업자들은 무료신문을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스포츠신문은 물론 유료신문 시장 자체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은 "하루 50만부 이상 찍어내는 무료신문이 5개로 불어난 이상 유료신문은 물론 무료신문간 경쟁도 치열해져 결국 제살깎기를 하게 될 것"이라며 "신문장사를 포기하는 게 더 빠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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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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