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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단식농성에 결합한 김창현 사무총장과 유선희 최고위원. 유 최고위원은 지난 1일 국보법폐지를 위한 56인 삭발에 참여했다.
ⓒ 민주노동당 인터넷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이 내부 갈등을 보이고 있다.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가 사실상 국가보안법에 '올인'하는 반면, 의원단과 당내 정책라인은 이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이재영 정책실장은 15일 인터넷매체인 진보누리(news.jinbonuri.com)에 올린 글에서 "국보법 폐지투쟁은 정당하지만, 지금의 국보법 폐지투쟁에서 당은 여당의 조력자로 기능하는 실질적 '2중대'"라며 당 지도부의 노선을 비난했다.

또한 이 실장은 "IMF에 버금가는 민생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상대적 우위를 과시할 수 있었으나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매몰되어 민생투쟁을 등한시했다"며 "당이 민생정당으로서의 지위를 망각·포기했다"고 주장했다.

문명학 정책기조실장은 "당 지도부가 독자적인 입장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국보법폐지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 투쟁에 끌려간다"며 투쟁방식에 불만을 나타냈다. 정당으로서 시민사회단체와 차별화된 다른 정치활동을 펴지 못했을 뿐더러, 국민연대 내에서 열린우리당과의 전선을 강화하지도 못했다는 분석이다.

드물게 PD 계열인 김종철 최고위원 역시 <이론과 실천> 12월호에서 "열린우리당의 형법보완안은 정세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사상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탄압할 수 있고, 한나라당과 타협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후퇴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고 다른 최고위원들의 '반한나라당 전선'을 비판한 바 있다.

▲ 지난 7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보법 연내처리 유보' 입장을 밝히자,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해 "국민의 개혁열망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이날 최고위원회는 의원단과의 긴급 연석회의를 소집하고 기자회견에도 직접 참여하며 여당의 국보법폐지 처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재영 실장 "당 지도부, 민생정당 포기했나"

민주노동당 의원단 역시 최고위원회의 국보법폐지 투쟁에 부정적이다. 지난 14일 최고위원들은 의원단과의 연석회의에서 "국보법 폐지투쟁에 총력을 모으자"고 공식 제안했지만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언론에 비공개한 이날 회의에 참석한 당직자들은 "최고위원회와 의원단은 정세를 바라보는 입장부터가 달랐다"고 전했다. 최고위원회는 국보법폐지 연내 처리 가능성을 밝게 보며 "연말까지 총력투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원단은 "열린우리당이 연내처리 의지가 뚜렷하지 않고 결국 한나라당과 타협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최고위원회는 결국 '국보법 올인'을 포기했지만, 구체적인 투쟁수위에 대해서는 의원단과 합의하지 않은 채 여지를 남겼다.

현재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들은 전체 13명 중 5명이 단식농성과 삭발 등으로 국민연대 투쟁일정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17일도 김창현 사무총장이 단식농성단에 결합했고, 이미 삭발에 참여했던 유선희 최고위원은 단식까지 강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창현 사무총장은 "사상초유로 600명 넘는 사람들이 노상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고 이번이야 말로 국보법을 폐지할 절호의 기회"라며 "이런 시기에는 민주노동당이 책임성을 갖고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또한 김 사무총장은 "민생투쟁은 일년 사시사철 해왔고, 국보법폐지는 힘을 집중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국보법이냐, 민생이냐'는 식의 구분은 저열한 이분법이고, 당내 반발은 잘 설득해 나가겠다"라며 기존 '국보법 폐지 총력투쟁' 입장을 고수했다.

▲ 지난 8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열린우리당사앞에서 '국보법폐지 연내처리 유보 규탄 철야시위'가 열렸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들이 집회대열 앞자리에 앉아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창현 "'국보법-민생'의 구분은 저열한 이분법"

이러한 당내 노선 차이는 일차적으로 최고위원회의 주류인 NL노선이 다른 현안에 비해 국보법폐지를 강조하며 '반한나라당 전선'에 적극적이라는 정파적 차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단순히 소속 정파의 노선보다는 최고위원과 의원단을 분리한 민주노동당의 독특한 '이원화' 구조가 최고위원들을 투쟁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 여러 당직자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최고위원들과 노선이 일치하는 강기갑·현애자 의원도 '국보법폐지 올인'에는 반대 입장에 서 있다.

최고위원들은 공식적으로는 원내외를 아우르며 당을 집단지도하는 권한을 갖지만, 실제로는 의원단이 올 한해 주요 정치사안에서 당의 대응을 주도하며 사실상의 지도부 역할을 해왔다.

역할이 불분명한 최고위원들로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장 집중하는 국보법 투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지도활동'을 펼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이유로 직접 투쟁에 참여한 최고위원들과 원내에서 활동하는 의원들은 정세분석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한 당직자는 이같은 차이에 대해 "원내외에서 느끼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며 "연내에 국보법 폐지가 처리되리라는 전망에는 (투쟁에 참여하는 최고위원들의) 희망과 결의가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노동당은 연말을 맞아 조만간 간담회를 갖고 올해 평가와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워크샵을 열어 여당의 과반수 의석이 무너지리라고 예상되는 내년 4월 재보선 이후의 정세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국보법폐지투쟁에 대한 평가와 이후 당의 사업전략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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