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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강경중앙초등학교 교사(사진제공 : 사진작가 한광석 60회 졸업생)와 현재의 강경중앙초등학교 교사(아래)
ⓒ 윤형권
100년(百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백년의 세월 동안 한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청운의 꿈을 품어준 학교가 있다. 4월 3일 충남 논산의 강경 중앙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1905년 4월 옥녀봉 밑에서 '사립 보명학교'로 개교하여 1905년 10월 윤경중 씨가 재산을 헌납하여 오늘날의 강경중앙초등학교가 시작됐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강경의 영화 그리고 쇠퇴와 함께 했다. 강경은 추억의 고장이다.

석양이 물들 무렵 강경포구에 가면 금방이라도 고기를 가득 실은 황포돛단배가 당당하게 들어올 것 같다. 새우젓 냄새가 구석구석 인심 좋게 배어 있다. 상투를 동여맨 장정이 소금가마니를 메고 이쪽으로 올 것 같고, 아낙네의 무명저고리 등 뒤에 업혀 있는 코 묻은 아이의 하얀 손이 움직일 것 같다. 강경은 추억이 물씬 배어 있는 곳이 많다.

추억은 만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강경은 만남의 고장이다. 새색시와 새신랑이 만난 것처럼 근대와 현대가 만나고, 상투와 짧은 상고머리가 만나고, 양복과 한복이 만난 곳이다. 강경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이었기에 일찌감치 번성하였다.

▲ 1920년대 강경포구(사진작가 한광석 씨의 전시회 사진을 촬영한 것임)
ⓒ 윤형권
강경은 옥녀봉 앞에서 신랑과 각시가 만나듯 금강과 논산평야가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다. 전북 장수군 수분치 마을에서 발원한 금강 물줄기는 소백산과 계룡산을 굽이굽이 돌아 백제의 수도 공주, 부여를 지나 이곳 강경을 지난다. 선화공주와 무왕의 서동요를 싣고 말이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이렇게 추억을 쌓으며 백년을 이어왔다. 단아한 교정은 3.1만세운동의 함성을 감싸 안았고, 펄럭이는 자유해방의 태극기 물결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달렸다. 교사(校舍)는 동족의 피비린내를 맡으며 가슴 아픈 한을 머금기도 했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한반도 근현대사의 질곡을 한 몸으로 겪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년이란 긴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강경중앙초등학교는 1907년 3학급 남학생만 114명, 1940년 22학급 남녀 1578명, 1970년에는 36학급 남녀 2306명이나 되었다. 현재는 14학급 304명(2004년 기준).

강경중앙초등학교 졸업생은 2004년도 기준 1만6757명이나 된다. 역대교장만 해도 30여분이나 된다. 2005년도 이강희 교장선생님이 34대째다.

봄비가 부슬거리는 4월 3일 강경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엔 '어른학생들'이 천명도 넘게 모였다. 어떤 학생들은 허리가 굽은 채 교문을 들어서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앞이마가 훤하다. 운동장에는 삼삼오오 반가운 만남으로 떠들썩하다.

"야 너 양현이 아녀? 건강하게 살아있구나!"
"반갑다. 시영아! 반가워!"

너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꼭 잡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할아버지, 아니 선배님!"
"허허 손주가 후배네. 허허허."

손자뻘 되는 초등학교 5학년을 보고 '후배'라고 한다. 강경중앙초등학교 100년이 빚어낸 인연이다.

▲ 44회 졸업생인 강부자 씨와 후배들
ⓒ 윤형권
강경중앙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졸업생들이 모였다.

얼른 눈에 들어오는 분들도 많다. 북한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교황청 사진작가 백남식(41회 졸업) 선생. 김우식 대통령 비설실장은 42회 졸업생이다. 원양어업으로 성공한 박인성 사장은 43회, 동문들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받은 탤런트 강부자 씨는 44회 졸업생이다.

이날 강경중앙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윤판석씨와 이재완 씨의 명예졸업장 수여.

명예 졸업장을 받은 윤판석씨는 1910년 강경에서 출생하여 1924년 지금의 강경중앙초등학교 재학 중 한국인 선생으로 하여금 국사교육을 못하게 하자 교장선생의 이마에다 컵을 던진 후 자퇴하였다. 1983년 73세의 일기로 작고했다.

또 한 분의 명예졸업장 수여자는 이재완 씨. 5학년 때 6.25사변을 겪으면서 학업을 포기한 경우다. 이날 행사에서 이 두 분에게 명예 졸업장을 주었다.

강경중앙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념행사와 기념문집발간, 기념비 건립, 학습시설 기증, 급식실 건립 등이 있었다.

▲ 강경중앙초 개교 100주년 행사. 오른쪽부터 김우식 비서실장, 심대평 충남도지사, 오제직 충남도교육감, 이인제 의원, 임성규 논산시장
ⓒ 임성식
42회 졸업생인 강기원씨의 회고는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근현대역사의 아픔과 기쁨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경중앙초등학교 100년을 말해주고 있다.

"마스오카 에이스케라는 창씨개명을 한 이름표를 달고 입학했다. 연합군의 폭격에 대비해 교실 책상 밑으로 피신하는 방공훈련, 6.25동란으로 불타 없어져 이웃 강경여중에서 신세진 수업, 학교 앞 국화빵집 그 냄새, 발가벗고 강에서 첨벙대던 일, 운동장이 떠나갈 듯 목청 높여 응원했던 운동회 등이 지금도 생생하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100년 후의 강경중앙초등학교의 모습이 2학년 1반에 재학 중인 홍유정 학생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 학교 나이는 100살이다. 그런데 하나도 늙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100살도 안됐는데도 얼굴이 쭈글쭈글하다. 200살이 되어도 학교는 늙지 않고 지금 그대로 일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늘 젊은 학교다."

▲ 몸은 어른인데 마음과 의자는 어린이다.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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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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