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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생식물원 꽃밭에 갓 피기 시작한 가는잎할미꽃
ⓒ 김성원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화도 피었습니다.
- 동요 '꽃밭에서' 중에서


어릴 적 '꽃밭에서'라는 동요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그리 크지 않은 단층집이었지만 작은 꽃밭이 있었던 터라 노랫말처럼 '아빠'는 아니지만 '엄마'와 함께 꽃을 심으며 이 노래를 부르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러나 요즘은 아파트 아니면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으로 집 형태가 바뀌면서 꽃밭이 들어설 마당이 있는 집이 드물다. 그러니 요즘 애들은 학교에서 어쩌면 이 노래를 배울지는 모르지만 막상 꼬마 손에 꽃삽을 들고 가꿀 꽃밭의 추억은 드물 것이다.

꽃밭에서 동요를 떠올리다

요즘 아이들은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으로 꽃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 쉽사리 숙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손이 가야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야 사랑하게 되는 게 이치. 봄비가 내린 후 파릇파릇 자라는 들풀을 시시때때로 지켜보고, 앉은뱅이 낮은 키로 자라는 온갖 색의 꽃들을 손에 흙을 묻히며 가꿀 때 비로소 자연에 대한 사랑도 자라는 법. 개나리며, 목련, 동백이 먼저 피고, 차례로 온갖 봄 꽃들이 갓 피어나고 있으니 아이들 손을 잡고 꽃밭 나들이 가보기 좋은 때다.

▲ 꽃들이 막 피어나기 시작한 자생식물원의 꽃밭
ⓒ 김성원
사월 둘째 주에 찾은 아차산생태공원은 한강 상류 워커힐이 있는 해발 285m의 야산인 아차산 초입에 위치했는데, 잘 가꿔진 커다란 꽃밭 같다. '자생식물원'과 '나비정원'이라 거창하게 이름이 붙여진 곳이 있지만 대여섯 장방형 텃밭에 70여종 꽃들마다 한두 평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로 가꿔져 있다. 품종이 다른 꽃 사이에 비정형의 흙골을 만들어 영역을 나누어 놓고 꽃 이름과 간단한 정보를 담은 푯말을 세워 놓았다. 푯말이라도 있으니 꽃 이름을 알 수 있다.

까치수영, 산꿩의다리, 자주꿩의비름, 노루오줌 등 산새, 산짐승 이름이 붙은 우리네 산에 자라는 자생 풀꽃들이 가득하다. 산짐승들이 즐겨먹는 풀들임에 틀림없다. 옛 사람들은 어느 풀꽃이 어떤 짐승이나 새들의 먹이가 되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도 하고 들과 산으로 나물을 캐고 꽃물로 염색을 하며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산짐승들 즐겨먹는 자생 풀꽃 가득

돌단풍, 벌개미취, 금불초, 관중, 패랭이, 솥나물, 꿀풀, 쑥부쟁이, 원추리, 억새, 둥굴레, 이질풀은 또 어떤 사연으로 그런 이름들을 얻었을까. 할미꽃, 가는잎할미꽃을 보니 '할미꽃'에 얽힌 이야기가 가물가물하다. 지금은 누가 꽃들의 사연을 들려줄 수 있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 정훈희 '꽃밭에서' 중에서


한 아이의 어머니가 작은 공책을 들고 열심히 꽃 푯말의 내용을 적고 있다. 아이는 따로 여기저기 꽃밭을 기웃거린다. 아마도 아이의 체험 학습 숙제를 대신 하나 보다. 그 어머니에겐 꽃 푯말 외에 고운 빛 꽃들이 보이질 않고 아이는 꽃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다.

꽃 이름이며, 개화 시기 등 정보야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을 터인데, 한번쯤 아이와 함께 꽃밭에 앉아 고운 꽃빛을 바라보며 예전에 배웠던 동요라도 함께 불러보면 좋았을 것을…. 하기야 표피적이고 일면적인 건조한 정보만이 지식의 전부로 아는 시대다.

▲ 꽃밭 풀섶에서 발견한 새끼손톱보다 작은 풀꽃
ⓒ 김성원
▲ 작은 꽃들은 무리 지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 김성원
▲ 자생식물원 꽃밭 풀섶에 피어난 보라색의 제비꽃
ⓒ 김성원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안도현의 시 <제비꽃에 대하여> 중에서


붉은 황토 길을 따라 꽃들을 구경하다 보니 꽃밭보다는 되려 꽃밭 주변 잡풀 사이에 조그만 들꽃들이 제법이다. 푯말이 없으면 이름조차 모르니 '생태맹'이 따로 없다. 초록 풀섶에 손톱 크기보다 작고 조그만 초미니 들꽃들이 보석 같다. 이렇게 작은 들꽃들은 무리를 지어 아름다움을 뽐낼 줄 안다. 아무리 작은 꽃들도 무리를 지으면 아름다운 것을 파편화된 채 혼자만으로 발버둥치며 살아 가던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보랏빛 다섯 갈래 꽃잎이 이제 갓 자라기 시작한 풀섶 곳곳에서 눈에 뜨인다. 육십여세 넘음직한 할머니에게 물어 보니 '제비꽃'이란다. 아차산에 원래부터 자생하는 산꽃이라니 당연히 곳곳에서 눈에 뜨였던 것이다.

제비꽃의 서양 이름은 '바이올렛(Violet)'이다. 바이올렛은 들어 봤어도 정작 우리식 꽃 이름은 몰랐으니 앞뒤가 바뀐 꼴이다. 이름을 알고도 그 꽃을 못 알아 보니 역시 불구의 지식이다. 정확한 학명은 아니더라도 사연마다 제비꽃을 오랑캐꽃, 씨름꽃, 장수꽃, 병아리꽃, 반지꽃, 앉은뱅이꽃 갖가지로 이름 붙인 옛 사람만 못한 지식이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풀 전체를 해독이나 소염에 쓰기도 하고, 향료로도 쓰였다 한다. 참으로 쓸모가 많고 생활에 요긴한 들꽃인 것을 어쩌면 이름조차 모르게 되었을까.

▲ 가족 조각상 옆의 초가 원두막
ⓒ 김성원
▲ 생태공원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너와 정자
ⓒ 김성원
▲ 맨발 지압장과 지압장 사이의 약수터
ⓒ 김성원
어쩌면 장맛비 같은 봄비가 대단하게 온 데다 봄볕조차 화사하니 사람들이 공원 내에 꽤 가득하다. 원래 워커힐이 자리잡은 아차산은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차산 서쪽은 서울의 끝 광진구다. 도시의 번잡함이 여기서 끝나고 시원하게 팔당호 가까이 한강이 크고 작게 줄지은 산들과 함께 펼쳐진다.

또한 삼국시대 축성된 아차산성이 이곳에 있다.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로 알려진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 장군이 전사한 곳이라 한다. 이런 까닭에 아차산은 그리 높지 않은 야산임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이런 곳 초입에 있으니 산짐승들이 서식하긴 어렵겠지만 사람만은 가득하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아차산성

산에 오르는 사람이든 산행을 끝낸 사람이든, 가벼운 산책길이 목적이든 공원 내 꽃밭 사이에 놓인 너와 정자와 초가 원두막에 다리를 쉬어 가기 좋다. 바로 앞에 온갖 꽃들이 펼쳐지고 배롱나무, 감나무, 쪽동백나부, 산벚나무, 회화나무 등 관람로와 경사로에 심겨진 나무들이 산바람을 걸러 주니 부드럽기 그지없다.

어떤 이들은 신발을 벗어 들고 돌과 나무를 볼록하게 박은 맨발 지압장을 조심조심 걷는다. 지압장 가운데 약수터의 물맛이 시원하게 발끝에서 정수리까지 깊이 전해진다. 지압장 옆에는 가래질해 놓은 논처럼 황토밭이 마련되어 있다. 지압장에서 신을 벗은 참에 맨발로 황토를 밟으면 움퍽움퍽 들어가고 시원하게 발을 감싸기도 하고 발가락 새를 삐져나오는 느낌이 어린아이가 된 듯하다. 바로 옆에는 세족장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발 씻을 걱정도 필요 없다.

▲ 마루다리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습지원
ⓒ 김성원
▲ 평강 공주와 온달 조각상
ⓒ 김성원
아차산을 타고 내려온 빗물은 생태공원 내 들꽃들의 뿌리를 적시고 황토빛으로 장로회신학대학 앞 도로 아래 습지원으로 고인다. 초가 원두막 옆의 '가족 조각상'도 공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차에 습지원에 어울리지 않는 인어상이 도무지 거슬린다. 그러나 꽃밭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보상해 본다.

아차산생태공원에는 '생태자료실'이 마련되어 있어 갖가지 생태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월수금토로 '생태공원체험학습'(09:00~14:00, 4회)이 운영되고, 매주 수요일 '장애우생태체험'(14:30~16:00)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매월 둘째 셋째 주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관찰교실'(10:00~14:30, 2회)이 열린다.

특별 프로그램(4~6월, 9월)으로는 '야생화압화만들기' '양생화리스 만들기' '허브와 새싹채소 기르기' '카네이션 코사지 만들기' '천연염색'과 모종 심기, 모내기 행사, 벼베기, 수확체험 등 '농작물 경작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꽃밭 있는 마당이 점점 사라지고 가뜩이나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설령 체험 프로그램에 참석치 못한다 해도 한번쯤은 꽃밭에 앉아 어설프게라도 준비한 아빠와 엄마의 '꽃 이야기'와 '꽃 노래'를 아이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아이들은 아직도 먼 훗날 추억으로 기억할 여유가 넉넉히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숲속여행 안내 웹사이트(http://san.seoul.go.kr)
광진구청 공원녹지과 (전화 : 02-450-1395)
제비꽃 내용은 두산백과사전을 참조했습니다.

이용시간 : 
입출입 시간 제한 없음.
매주 목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생태교육 프로그램 문의 (02-450-1192)

교통 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호선 구의역 하차 마을버스 2번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 산쪽 방향 도보 10분
생태공원 옆 주차장 또는 동의초등학교 주차가능(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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