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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 전경
ⓒ 추연만

노사 무교섭으로 올 임금협상을 타결한 기업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현상이 향후 노사관계 발전의 디딤돌이 될 지, 아니면 노동3권 후퇴로 작용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까지 무교섭 타결은 동부제강, 동국제강 등 몇몇 기업에 나타난 현상이었으나 올해는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업체는 물론 다른 업종과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일 포스코 노사는 올 임금협상을 무교섭으로 하되 인상 폭은 회사 측에 위임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풍산 노조는 5월 4일 대의원대회서 임금을 회사에 일임하기로 결정했다. 현대하이스코도 5월 10일 임단협을 무교섭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렉은 5월 4일 임금 무교섭 타결 조인식을 가졌으며, 3월초 동국제강그룹의 유니온스틸도 노사 무교섭 타결을 하는 등 철강업체는 10여년간 무교섭 타결한 동부제강, 동국제강을 포함해 다수 대기업 노사가 무교섭 타결에 합의한 상태다.

무교섭 타결 현상은 철강업체뿐 아니라 전자업체(LG전자, 하이닉스 반도체, 대우일렉트로닉스, 삼성전자)와 건설업체(대우건설, 쌍용건설, 쌍용양회), 정유업체(GS칼텍스, STX그룹 계열의 STX에너지, STX엔파코)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또 공공기관인 부산 시설관리공단과 한국 가스안전공사, 대한항공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무교섭 타결 현상은 올 임금협상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각 지역에도 무교섭 타결 추세가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1일 전남도는 "지금까지 무교섭을 선언한 회사가 12개로 지난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종·지역 예외없이 확산

일부 언론과 연구기관은 이같은 흐름을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드는 새로운 노사문화 정착'으로 진단하는 등 부푼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5월 '노사현안과 상생의 길'이란 보고서를 통해 "노사관계 안정이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조건이며 대기업 노사가 새로운 시대흐름을 수용하고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 내부에서는 무교섭 타결에 대해 "새로운 노사관계 정착이란 진단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고 노동3권을 후퇴시킨다"는 우려를 제기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무교섭 타결을 한 이유는 많지만 노사는 무엇보다 회사의 경영환경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란 것을 공통으로 밝히고 있다.

포스코 노사는 "미래 성장기반을 위해 경영혁신과 신규사업을 추진하는데 회사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큰 이유로 꼽았다. 풍산노조 이상협 위원장은 "중국의 추격이 심해져 가까운 미래 고용위기에 닥칠 수 있다"며 "지루한 임금협상 관행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임금 회사위임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 하이닉스 반도체, 대우건설 등 워크아웃 처지에 있는 회사는 "교섭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기업으로 탄생시켜 빠른 시일내 워크아웃을 졸업하자"는 이유로 무교섭 타결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하이코스나 LG전자도 각각 '당진공장 정상화'나 '환율하락 영향'이란 경영환경에 맞서 노사가 소모전을 줄이고 어려움을 극복하자며 무교섭을 결정했다.

회사 경영환경 고려한 현실적 선택

이와 관련 노동운동진영에서는 회사별 실익 챙기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주 40시간을 둘러싼 '임금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화두였던데 비해 올해 '비정규직 차별철폐' 대두로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노동계 공동의제를 교섭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즉 공통의 요구가 사라짐으로써 기업별 노조는 '자기 팔 자기가 흔들기'가 훨씬 강화돼 무교섭 타결 확대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노조가 교섭권을 일시 양보, 회사 측에 일정한 부담(?)을 줘 고용보장이나 복지 등 비임금성 분야에 실익을 얻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일부 대기업 관계자는 '임금이 오를 만큼 올라' 올 임금 인상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무교섭 타결을 이룬 배경이 되기도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풍산노조가 밝힌 것처럼 "노사 쌍방 간의 주장과 언쟁만 되풀이 하며 회의 수만 늘어가는 지루한 임금협상" 교섭을 석 달 넘게 진행하는 등 장기교섭에 따른 내부 여론악화를 지적하기도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화끈하게 밀어준 결과 오랜 협상보다 더 많은 실익을 얻었다는 현실적 판단이 무교섭을 확산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 어느 한쪽이 힘겨루기에 밀려 인상 폭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올렸다 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며 협상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올 상반기에 불거진 채용비리 등 노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는 것도 노사 무교섭 타결에 간접 배경이 된 것으로 노사는 진단하고 있다.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노동계가 노동권 후퇴를 감수하며 무교섭 타결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장기파업을 한 GS칼텍스를 꼽는다.

그러나 무교섭 타결을 하기까지 노동계 내부는 노동권 사수논란으로 진통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일 올 임금을 회사에 일임한 포스코 직원대표 일부는 "적게 받아도 좋다, 그러나 교섭을 해야 직원들이 더 박수를 칠 것이다"는 의견을 타결 직전까지 주장했다.

또 3일 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 게시판에 한 직원은 "삭감도 좋다, 왜들 이러시나, 기업의 덩치에 맞게 당당하게 꼼수 쓰지 않는 공개적인 노사대화는 이렇게 요원하단 말인가? 2만의 노동자 집단이 이렇게 무참하게 백기투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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