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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밥으로 누룽지 만들기. 원래는 잡곡이 섞이지 않은 밥이 만드는 상태를 확인하기 좋다.
ⓒ 나영준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가니까 밥 해놓지 마세요."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집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로 건네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말이 좋아 '밥'이지 대개는 온 몸에 술 냄새를 잔뜩 묻힌 채 늦은 밤이 되어서야 초인종을 누르곤 한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변함없이 물으시곤 한다.

"밥은 먹었니?"
"먹고 들어온다고 했잖아요."
"그럼 괜히 밥 해 놨나보다."

그렇다. 분명 먹고 들어온다고 이야기했건만,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는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새 밥을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굵어지고 노총각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어머니의 습관이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고쳐지지 않는.

때때로 그 정성에 미안해져 맘에 없는 숟가락질을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대로 다음 날의 찬밥으로 굳어져 간다. 그리고 그렇게 찬밥이 될 줄 알면서도 새 밥을 준비하시는 그 이유는 단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짜증도 내봤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그때 뿐이다. 혹시라도 '귀한 자식'이 밥을 걸렀을 1% 남짓의 확률에 희망을 건 그 마음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찬밥은 고스란히 당신의 입으로 향하기 일쑤다.

원래 찬밥을 좋아하신다고요?

▲ 용기는 넓고 납작한 냄비나 혹은 안 쓰는 프라이팬을 준비하면 된다.
ⓒ 나영준
▲ 밥을 펴 줄 때는 뭐니뭐니 해도 '깨끗이' 씻은 손이 가장 편하다. 중간중간 물을 조금씩 묻히면 밥이 달라붙지 않는다.
ⓒ 나영준
▲ 완전히 펴 준 상태. 되도록 납작하게 눌러 주는 것이 좋다.
ⓒ 나영준

물론 다음 날 아침상에는 다시 갓 지은 따끈한 밥이 올라와 있다. 어제의 찬밥은 어디 있냐고 물을 때 돌아오는 대답 역시 정해져 있다. 본인이 드실테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이어 미간을 찌푸리는 자식에게 한 마디를 보태신다.

"내가 원래 찬밥을 좋아해. 걱정 말고 밥이나 먹어."

원래 찬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밥통에서 금방 꺼낸 밥 알갱이의 고슬고슬한 감촉을 싫어할 이가 있을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기어이 찬밥은 냉장고 한구석에 감추어 두신 채 자식에겐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권하신다.

물론 그것이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풍경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이라면 누구나 베풀 보편의 마음일 것이다. 도대체 어머니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기에 희생 그 자체로 기쁨을 느끼는 것일까 싶어 때론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오기도 한다.

누룽지를 만들어 드리자!

▲ 가스불을 켠 상태. 약한 불로 은근히 태워야 제 맛이 난다.
ⓒ 나영준
그런 어머니에게 늘 찬밥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만들기 시작한 것이 누룽지다. 특별한 요리법은 없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또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겨찾는 전통음식이며, 지난밤 숙취로 혀 끝이 깔깔한 이들의 입에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훌륭한 해장거리이기도 하다.

사실 가까운 편의점만 가더라도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누룽지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또 요즘은 웬만한 고깃집에서도 메뉴로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특유의 깊은 맛이 떨어지고, 후자의 경우도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 단순히 찬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누룽지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은근과 끈기'다. 간단한 재료에 비해 기다림의 시간이 길다고나 할까. 센 불로 후딱 해치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약한 불을 켜둔 뒤 한참을 기다리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지루함이 단점이다.

찬밥을 골고루 바닥에 깔고 중간보다 약하게 은근한 불을 켜두면, 4~5분이 지나고 따닥거리며 마른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거기서 기뻐하긴 이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이니까.

▲ 불을 켜고 4~5분 후면 '따닥"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 나영준
▲ 약 30여 분이 지난 후의 상태. 이제 물을 붓고 센 불로 끓이면 된다.
ⓒ 나영준
그렇게 한참을 더 장작 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조금 시간이 촉박할 경우에는 냄비의 뚜껑을 닫아두어도 된다. 하지만 그 경우 수분이 내려앉으며 특유의 고소한 맛이 덜하다. 또 완성된 후에도 누룽지가 바닥에 달라붙어 물을 넣고 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뚜껑을 열고 그렇게 25~30분 정도가 지나면 주방에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며 냄비 가장자리부터 누룽지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설탕 등을 입혀 과자 같이 먹고 싶을 때면 그대로 약한 불로 4~5분 정도를 더 기다리다 주걱 등으로 떼어내면 된다. 하지만 끓여 먹을 때는 타는 듯한 냄새가 날 때 물을 넣어주면 된다.

조금 더 태우고 덜 태우고의 차이는 입맛에 따라 다르게 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간 '무늬만 누룽지'에 식상해졌던 이들이라면 살짝 탄 듯한 향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찬밥이 많이 남았을 때는 휴일 오후 정도를 잡아 몇 장을 미리 만들어 두고 입맛이 없을 때마다 물을 넣고 끓여 먹으면 여름철의 별미가 될 것이다.

미리 만든 누룽지는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된다. 물론 그 즉시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누룽지다운' 맛을 즐기기엔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얇게' 펴는 것(손으로 꾹꾹 눌러 준다)과 '은근한' 불이다. 바쁜 아침 시간이라면 약한 불을 켜놓고 출근 준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때로 장마비가 쏟아지는 듯한 소음에 타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냄새가 나기 전에는 절대 타지 않는다.

▲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면 된다.
ⓒ 나영준
▲ 약간 노릇한 빛이 돌게 만들면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 나영준
이제 찬밥 드시지 마세요

이제 맛있게 즐기는 일만 남았다. 곁들이는 음식은 누룽지의 원래 향을 해치지 않는 기본 찬 정도가 가장 적당할 듯싶다.

언제나 "너무 맛있다"며 드시는 어머니를 보면, 가슴 한 끝이 저려온다. 더 좋은 음식, 더 귀한 것 대접해 드리지 못하는 못난 자식이 원망스럽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전해 본다.

"어머니, 이제 찬밥 드시지 마세요. 그리고 앞으론 더 좋은 것 해 드릴게요."

▲ 김치와 깍두기 뿐인 소박한 차림에도 늘 기뻐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 나영준

덧붙이는 글 | 우리집 일품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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