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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전역을 돌며 역사 관련 생존자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는 체트데에프(ZDF) 100년 버스 앞에 서 있는 귀도 크놉씨.
ⓒ 귀도 크놉
8.15 해방 60주년인 올해, 2차대전 패전국 독일은 '종전 60주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전후 독일에서 진행된 역사청산 작업은 다른 나라의 역사청산에 견줘 상당히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독일의 역사청산 과정에서 미디어의 노력은 상당했다. 각종 언론매체들은 해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날이 오면 많은 프로그램과 기사 등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지난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제시했다.

묵은 역사에서 무슨 새로운 이야기 거리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 생존이 얼마 남지 않은 경험자, 피해자 가족 등을 소재로 프로그램, 기사를 만들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독일 사회가 과거를 돌이켜 보도록 해왔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독일 언론계에서 현대사 프로그램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독일 제2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 현대사 부장 귀도 크놉을 만나 독일 역사청산에서 방송의 역할에 대해 들어보았다. 귀도 크놉과의 만남은 지난 7월 18일 독일 마인츠에 있는 <체트데에프> 본사에서 이뤄졌다.

"방송인이 역사적 책임 느끼는 건 당연"

- 어떤 계기로 이런 일을 하게 됐는가.
"나는 역사학자이며 당연히 역사는 나의 최대 관심분야다. 역사를 다루는 일은 직업인 동시에 취미이기도 하다. '20세기 독일 역사'는 독일사회에서 긴장되는 주제다. 이러한 기록을 미디어라는 매체를 이용해 역사물로 제작, 수백만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로 전달하는 일은 항상 새로운 긴장감을 준다. 현재 독일 제2공영방송 <체트데에프>에서 현대사 및 시사다큐멘터리 관련 2개팀의 제작, 편집 책임을 맡고 있다."

- 역사학자로서 독일 현대사를 요약한다면.
"20세기는 인간의 악한 면과 선한 면이 확연하게 드러났던 시간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역사는 도덕적으로 완전히 파괴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젊은 시절 나치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 짧은 기간 인간생존의 한계상황, 독재, 대규모 폭격, 인종학살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을 직접 경험했다. 나치시대 없이 독일의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

독일인에게 20세기는 두 시대로 기억되는데 1914~1945년의 세계대전과 45년 이후 동서독으로 나뉜 역사가 그것이다. 1989~1990년 통일을 거쳐 독일은 현재 역사적으로는 최고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독일 역사에서 평화, 자유, 통일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대는 지금이 처음이다. 적이나 위협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럽차원의 이웃과 친구만 있다. 독일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때이다."

- 나치역사 청산에 대한 독일사회 분위기는 어땠나.
"50년대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들은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인식했다. 그러다가 60년대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히 68세대들은 전쟁세대에게 집단책임론을 제기했다. 나치에 동조하거나 방관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80년대까지 계속 됐다. 최근에는 다시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보인다. 출판물, 영화 등에서 독일인을 전쟁, 폭격 희생자로 그리는 내용이 많아졌다."

- 나치시대에 대한 독일 사회의 역사적 책임을 설명해달라.
"나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전후 세대에게는 과거 범죄행위가 다시 일어나선 안된다는, 그러기 위해 과거 사건을 계속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자각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존재한다. 나치 시대는 모두의 영원한 과제이자 책임이다. 방송분야 사람들은 무엇보다 그런 역사적 책임의 가장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 독일 제2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 홈페이지 현대사 및 시사 다큐 제작팀 웹사이트.

왜 독일 역사방송물이 시청률이 높냐고?

- 독일 미디어들이 현대사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의 역사물은 <체트데에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부서의 경우 1985년부터 현대사 관련 다큐를 만들기 시작해 95, 96년부터는 저녁 8시 15분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체트데에프>는 역사물을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독일 유일의 방송이었으며 유럽 방송사 가운데에서도 첫 시도였다."

- 프로그램 제작에서 특별히 고려하는 기준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고, 진실규명을 통한 정체성 형성도 중요하다. 독일 역사는 1933년에 끝나지 않았으며 1945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독일 역사에서 나치 시기는 우리가 계속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역시 긴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물을 통해 독일의 역사적 정체성을 함께 다루는 게 중요한 원칙이다."

- 역사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7월 17일 일요일 저녁에 방영된 역사매거진의 시청률은 15.4% 로 그 시간대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았다. <체트데에프> 역사물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대략 400~700만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역사물은 의미는 있지만 지루하다는 의견도 많은데 독일에서 역사물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역사적 자료와 기록에 대한 분석적 비평, 인간 개인의 경험 및 기억을 결합하는 게 우리 다큐멘터리의 기본 틀이다. 오늘날 삶에서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갖고 있거나 시청자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새로운 기록과 자료, 장소 발굴 등이 충족되는 프로그램은 시청자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 귀도 크놉씨가 제작 책임을 맡았던 1990-1999 세계사를 다룬 다큐멘타리 '세계 100년, 카운드 다운'의 일부. 30시간이 넘는 장시간 동안 지난 100년간의 대표적 세계사가 다뤄진다.
ⓒ 강구섭
"방송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다"

- 올해는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인데 <체트데에프> 에서는 어떤 내용을 주로 다루는가.
"당연히 종전 60주년이라는 주제가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몇년 전부터 <세계대전>이라는 2차대전 관련 시리즈를 제작해 여러 나라에서 방영하고 있다. 2003년부터 방영했는데 2004년에는 'D데이(노르망디 상륙작전)', '해방' 등을 주제로 한 방송이 나갔고 올해 1월부터는 '종전', '폐허', '러시아 붉은 군대', '드레스덴 폭격', '홀로코스트' 관련 시리즈(10회), '베를린 폭격' 등에 관한 내용도 다뤘다. 8월에는 영국 BBC와 공동제작한 '히로시마 원폭' 다큐 영화, 드라마가 방영될 계획이다."

- 역사 제작물이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 역사청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속적인 논의와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1996년 독일 전체가 나치시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깨운 토론, 독일군의 대량학살 집단참여에 대한 토론, 강제노역자 배상 토론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매년 격렬한 토론을 이끌어왔다. 우리가 제작한 '히틀러의 조력자' 다큐멘터리는 당시 나치 관련 토론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TV 다큐멘터리는 학문적일 수 없고 박사논문도 아니다. 45분에서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핵심을 파헤쳐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접하기 위해서는 관련 서적 등을 살펴보는 시청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TV는 한 사건에 대해 관심을 제공하는 시초라고 할 수 있다."

- 과거청산 작업에서 독일 미디어의 역할을 평가한다면.
"독일 언론은 역사청산 작업에서 상당히 긍정적 역할을 했다. 출판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역사청산 자료가 쏟아져 나와 논의를 풍성하게 했다. 방송, 신문 등에서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논의는 항상 많은 논쟁거리를 가져왔다. 특히 교육적 측면과 독일의 정체성이 자주 부딪쳤다. 논쟁을 이끌어 내고 역사의 가르침을 전수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며 지금까지 제대로 수행했다고 본다."

- 세대에 따라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 같은데.
"나치를 경험한 세대에서는 개인적 경험, 기억과 방송물에서 전달되는 내용을 비교하는데 관심을 보인다. 다른 측면에서 나치를 경험한 세대의 경우 홀로코스트 같은 사례에 집단 책임의식을 느낀다. '그것을 막지 못했고 도리어 조력했다' '히틀러를 지지하지 않았냐'라는 집단적 죄책감은 일부 주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으로 표출된다.

그런 거부감은 최근 방영된 홀로코스트 시리즈의 시청률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반면 젊은 세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홀로코스트 시리즈는 젊은 세대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나치시대가 어떠했고 어떤 사건, 어떤 증언자가 있었는지 등 역사적 사실, 진실에 대해 알고자 하는 관심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는 나치 세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생존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7년째 대형 방송 스튜디오 버스를 타고 독일 전역을 다니고 있다. 'ZDF 100년 버스'라고 이름 붙인 차에서 매년 1500여 명의 사람들이 나치 시대 등 다양한 증언을 했다. "

"한국의 역사청산도 화해 전에 '진실규명'이 먼저"

- 역사청산은 자국 관점을 넘어 다른 나라와 공동작업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런 측면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오래 전부터 그런 작업이 시작됐다. 1988~89년 당시 소련의 방송과 공동으로 18회 시리즈를 만들었다. '2차대전 공동의 전쟁사'라는 주제를 담은 제작물은 러시아 TV와 <체트데에프>에서 같은 사진, 같은 코멘트을 넣어 같은 시간에 동시 방영됐다. 단순히 TV방송물, 사실의 기록을 넘어서는 적지않은 의미가 있던 정치적 사건이었다. 서로의 이해를 넓히고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작업은 독일-러시아의 미래에도 상당히 많은 의미를 주었던 기회였다. 흥미 있는 것은 당시 독-러의 공동작업은 굉장히 쉬웠고 잘 돌아갔던 반면 영국-독일 사이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 무렵 영국과는 어떤 방송에서도 서로 합의점을 찾는 게 힘들었다."

- 한국도 역사청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역사청산에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조언한다면.
"한국 미디어는 역사청산에서 그다지 큰 어려움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희생자였지 가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희생자쪽의 역사청산이 쉬운 게 사실이다. 가해자가 스스로 역사를 청산하는 건 아주 어렵다. 그런 점에서 희생자인 한국 미디어는 일본 미디어보다 역사청산에 대한 접근이 더 쉬울 것이다.

일제침략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 일부 한국인들이 일본에 협력했는지 등에 대한 것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화해를 이야기하기 전에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진실규명이 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은 언제가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고 다시 모두를 힘들게 할 것이다.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 고통스럽더라도 초기에 그런 작업을 해야 한다. 나중에 청산하려면 더 힘들다."

-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 일본에 조력했던 친일세력이 해방 뒤에도 사회주도층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역사청산 작업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진실규명은 언론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미디어의 막중한 역할, 사명이다. 전파매체의 경우 외부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만 신문과 같은 종이매체는 상대적으로 자유의 폭이 넓다. 인터넷매체는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있다. 역사문제에서 진실규명은 언론의 최대 과제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가가 문제이고 한국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지식인층, 학생 등은 분명히 진실규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귀도 크놉은 누구?

▲ 독일 <체트데에프> 현대사 및 시사다큐 제작책임자 귀도 크놉씨.
ⓒ강구섭
역사학자이자 방송 제작자 및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귀도 크놉(58). 독일언론대학 교수로 언론학을 강의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인 짜이퉁> 편집부, <디 벨트 일요일판> 해외특파원 등을 거쳐 1984년부터 독일 제2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 현대사 및 시사다큐팀 제작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기록, 사진, 생존자 경험 등을 토대로 제작된 그의 독일 현대사 다큐멘타리와 드라마는 역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990년 중반 제작된 '히틀러의 조력자' '히틀러의 여인' 등 현대사 다큐멘터리는 독일 사회에서 현대사 논쟁을 촉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이같은 활동과 독일 역사청산 작업에 기여한 공로로 유럽TV상, 야콥 카이저상, 연방정부 공로십자훈상 등 권위있는 언론상을 여러차례 받았다.

이밖에 독일현대사와 관련된 저서 10여권을 펴냈는데 <독일총리들>, <히틀러의 조력자> 등은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올림픽, 분단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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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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