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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유령
ⓒ 이갑순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본게 2002년도이니, 벌써 3년이나 흘렀다. 그땐 국내배우들이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3층 뒷자리를 3만원을 주고 예매를 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본 대형 뮤지컬이었다.

나는 그때 많은 감동을 받았다. 물론 첫 관람이라는 이유도 많은 작용을 했으리라 본다. 엘지아트센터 3층 뒷자리에선 배우들의 얼굴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촛불이 켜졌던 안개 낀 호숫가, 크리스틴과 유령의 노래, 그리고 가면무도회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서 가끔 떠오르곤 했다. 정말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올 여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팀이 내한공연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싼 공연값에 망설이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좋은 평을 하길래, 그제서야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8월 6일 토요일 저녁, 나에게는 큰 돈인 8만원을 들여 오케스트라석으로 예매를 했다.

오리지널팀 공연이고, 오케스트라석이라 자막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그 전날 <오페라의 유령> 비디오를 미리 봐두기도 했다. 솔직히 많이 설렜다. 3년 전에 느꼈던 그 감동을 이번에도 가슴 가득 안아올거라 다짐했다.

2시간 반 동안의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가슴 속엔 감동 대신 허탈감만이 가득했다. 모두가 그렇게 극찬했던 <오페라의 유령>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감동도 일지 않는 뮤지컬 한편을 보고 나는 우울해져 버렸다. 이렇게 감동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1.음향이 좋을 리가 없는 오케스트라석에 앉았기 때문에 배우들의 노래를 최상의 상태로 듣지 못했다.
2. 전날 미리 본 비디오 때문에 장소적 제약이 많은 공연이 성에 찰리가 없다.
3.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기 때문에 대사를 바로바로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감흥이 없었던게 단지 이런 이유만이 아니란 걸 안다. 가장 큰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였다. 6월 10일부터 공연에 들어갔으니, 2달째 계속되고 있는 공연이 힘에 부칠 것이라는 걸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들어 배우들을 이해하는 일은 전문배우인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 아닐까. 그들은 일년 내내라도 공연을 할 수 있는 프로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그들에겐 두달째 접어든 공연일지라도, 관객들에겐 어느 공연이든 처음 관람하는 공연일 테니, 배우들은 매일매일 첫 공연처럼 온 힘을 다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공연은 너무나 성의가 없었다. 입을 벙긋거려 노래만 부른다고, 대사만 말한다고 다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표정없는 얼굴에 감정없는 목소리로 연기하고 노래하면서 관객이 감동을 받기를 바라는가. 기립박수를 받기를 원하는가.


▲ 영화속 가면무도회 장면
ⓒ 이갑순
2002년 <오페라의 유령>을 본 이후 지난 3년 사이 여러 편의 화려한 대작 뮤지컬을 봐왔다. 그래서 더 이상 내게도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 중 안개 낀 호숫가가 더 이상 감탄의 대상이 아니다. 나의 경우가 이럴진대 그 동안 외국여행으로 다양한 공연들을 접해 본 사람들을 화려한 무대로만 현혹시킬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젠 화려한 무대와 의상에 치중하기 보다는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와 좋은 음악에 눈을 돌리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오페라의 유령은 여전히 겉모습에만 치중했던 공연이었다. 배우들은 더 열심히 노래했어야 했고, 자신들의 배역에 더 깊이 빠져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그 공연을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대작뮤지컬이 많이 공연되고 있다.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유명한 공연들은 다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비싼 돈을 주고 들여왔다고 해서 꼭 돈 값어치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컨테이너로 몇 톤 분량의 의상과 무대세트를 싣고 왔다고 홍보하지만, 과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일까?

외국인들과 정서가 달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대작 공연들이 마음깊이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 공연을 올린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더불어 돈까지 벌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에 비하면 세 번이나 봤던 뮤지컬 <와이키키브라더스>는 무척 기억에 남는다. 우리네 이야기와 우리의 노래로 꾸며졌던, 소박한 무대와 평범한 의상으로 이루어졌던 그 공연이 기억이 남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칭찬일색이었던 <오페라의 유령>, 과연 감동적인 공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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