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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어르신들을 존중하며, 부모에게 효도하며 친구들간에 우애롭게 지내고,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인재가 되어 국가에 보답하겠습니다."

지난 8월 6일, 중국 광동성 더칭에 있는 공자묘에서는 조금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올 대학입시에서 광동성 전체 수석을 한 학생이 옛날 과거 장원급제자가 입던 예복을 그대로 입고 공자가 모셔진 사당에서 이른바 '장원급제식'을 치른 것.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는 전통예복을 갖추어 입고 공자상 앞으로 공손히 다가가 그에게 절을 올리고 향을 피운 뒤 영원한 '스승' 공자를 향해 위와 같은 '맹세'를 했다. 대학입시 수석합격자가 공자 앞에서 '장원급제식'을 치른 것은 광동성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죽은 공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출 만한 일이다.

공자가 감격해 할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11일, 중국 ‘스승의 날’을 전후해 인터넷과 언론 등에서는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논란의 발단은 스승의 날을 공자 탄생일인 9월 28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네티즌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9월 11일보다는 중국 전통문화의 주류이자 모든 중국인들의 영원한 '스승'인 공자탄생일을 스승의 날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공자, 돌아오다

▲ 2005 국제공자문화절 관련한 뉴스를 모아둔 사이트.
ⓒ 없음
9월28일. 공자탄생 2556주년을 맞은 오늘은 공자가 죽은 이후 아마도 가장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린 날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를 기리는 '글로벌 합동 제사'가 열리고 있으며 중국 중앙방송(CCTV)은 건국 이후 최초로 이날 산동성 취푸시에서 열린 공자제사를 4시간 이상 생중계하고 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건국 이후 최초로 국가 고위급 간부들이 참석했다. 중국 전역에서도 '논어 낭송 경연대회' 등 유교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전통문화 부흥을 주장하는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틀 전인 9월 26일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취푸시에서는 '제22회 취푸 국제 공자 문화절'이 개막되었다. "우수한 전통문화를 널리 확대 발전시키고 조화로운 문명사회를 건설하자"라는 주제 하에 개막된 이번 공자문화절은 1989년 첫 회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열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공자문화제나 공자제사 등은 취푸시 정부와 공자연구기관 등 지방정부와 민간단체 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올해부터는 그 성격이 '국사(國事)' 급으로 변했다. 바야흐로 중국에서 공자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베이징 번화가의 광고판. 민족문화를 고양, 발전시키자는 내용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 박현숙
이러한 흐름을 타고 최근 중국에는 '공자 붐'이 일어나고 있다. <논어>나 <사서오경> 등과 같은 대표적인 유가경전들이 다시 사람들 손에 들려져 낭독되기 시작했으며, 어릴 적부터 이런 유가경전들을 읽고 자라게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각 대학에서는 이른바 '국학원'이라는 걸 만들어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전통문화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려는 움직임들도 진행되고 있다.

중국 런민대학교는 이미 9월 신학기부터 '국학원'을 설립하여 신입생을 모집한 상태며, 중국사회과학원은 지난 6월14일 '유교연구중심'을 만들었다. 또한 출판계에서는 유가사상의 대표적인 경전들을 모아 출판하는 '유장(儒藏)'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유교경전을 읽자!"

최근 중국에서 유가사상 및 전통문화 부흥 논쟁이 중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시작된 '독경운동(讀經運動, 유가 경전읽기 운동)'이 시발점이 되었다.

중국 내 신유가사상 연구자로 유명한 장칭이 제창한 이 운동은 요약하자면 어릴 적부터 <논어>나 <맹자>, <사서오경> 등과 같은 유가 경전들을 읽고, 암송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와 민족에 충성하고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바른 어른'으로 클 수 있다는 것. 장칭의 이와 같은 주장과 글은 발표되자마자 입장을 달리하는 각계 지식인들과의 거센 논쟁에 부딪혀 지난해 중국 최대의 '문화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독경운동' 논쟁을 기점으로 중국에서는 유가사상과 중국 전통문화 재조명에 대한 논쟁이 급물살을 탔다. 이어 올해 들어서 새롭게 전개된 논쟁은 이른바 '국학'논쟁이다. '국학'이란 한마디로 중국의 모든 과거 전통 문화, 학술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가사상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국학논쟁'은 올 5월 중국 런민대학교 총장이 "올해 내로 런민대학교에 '국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계기로 점화됐다. 그 후 중국 정부의 정책 브레인들을 키워내는 학술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의 '유교문화연구 중심'을 만들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런민대학교와 중국사회과학원의 이런 움직임은 중화민족의 전통문화를 수호하고 부흥시키자는 데 있다.

그동안 유가사상을 비롯한 중국 전통문화가 멸시받고 천대받아 왔는데, 21세기 중화민족의 부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통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 이들 전통문화 부흥파들은 수많은 중국 전통문화 중에서도 공자의 유가사상이 가장 핵심적인 중국의 주류 전통문화라며 유학부흥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유학부흥 운동에 힘쓰는 사람들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유가 민족주의, 중국의 새 이데올로기로 등장

▲ 90년대 이후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유가 민족주의가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로 등장하고 있다.
ⓒ 박현숙
"후진타오 체제는 공자사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2005년 2월, 중국과학원 국정연구중심 연구원 캉샤오광이 한 '예언(?)'이다. 그는 "후진타오 체제는 중국정치의 이상을 멀리서 찾기보다는 '과거', 즉 중화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찾고 있다"며 "후진타오 체제는 공자의 핵심 정치사상인 '인정(仁政)'을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덩샤오핑 이후 중국정치가들은 줄곧 자신들의 민족문화전통에서 발전과 전진의 목표를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며 "90년대 장쩌민 체제 이후부터 중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유가사상으로 방향전환을 해 왔다"고 말했다.

중국 통치이데올로기 변화와 관련하여 상하이 사범대학교 샤오꿍친 교수는 "89년 톈안먼 사건과 동구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중국 내 지식인들은 '서방중심론'의 현대화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 '중국 중심'적인 현대화 과정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현대화 전환과정 중에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 전통문화는 정치적 응집력과 질서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유가문화를 토대로 하고 있는 (유가) 민족주의는 전환기 중국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개혁개방 이후 중국 지도부는 더 이상 기존의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마오쩌둥 사상만으로는 인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는 것. 이러한 이데올로기 자원의 결핍시기에 바로 '죽었던 공자'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바로 그 공자의 유가사상에서 체제안정과 통치의 권위를 보장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순기능'을 발견했다는 요지다.

90년대 장쩌민 체제 이후 부쩍 '도덕정치'가 강조되고 중화민족 전통문화 중시 운동이 강조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또한 90년대 이후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구호가 공식화된 정치적 구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보이듯 중국 지도부는 유가사상이 가지고 있는 체제유지적인 순기능과 민족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내부적 응집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후진타오 체제 들어서 보다 더 가속화 되었는데, 후진타오는 유가사상에서 빌려온 '조화로운 사회건설'과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통치'를 새로운 국정이념으로 내세웠다.

▲ 중국은 21세기 경제대국과 함께 유가사상의 재확립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문화패권주의를 꿈꾸고 있다.
ⓒ 박현숙
한편, 부산외국어대 고영근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유가사상이 중국 체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는 또 다른 배경으로 "21세기 '경제대국'과 함께 '문화패권주의'를 꿈꾸는 중국이 동북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전통적 문화기반이 바로 유교라는 점을 부각시켜 유교문화 종주국으로서의 문화적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대국주의적' 기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죽었던 공자'가 다시 살아왔다. 중국은 지금 부활한 공자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 한창 그를 맞을 '꽃단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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