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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 문학수첩 리틀북스
1-1.나는 풀빛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릴때면 유독 연두색을 많이 썼다. 사람들 옷에도 연두색, 신발도 연두색, 나뭇잎 색깔도 녹색보다는 연두색을 더 많이 썼다. 그리고 지금도 연두색을 좋아한다. 연두색 티를 입는 날이면 마음이 무척이나 가볍고 내가 더 예뻐 보인다.

1-2. 크리스토퍼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빨간색 식용색소를 준비하고 있다가 음식에 뿌려먹는다. 만약 크리스토퍼가 학교 가는 길에 4대의 빨간 자동차가 줄지어 지나가는 것을 보면 그건 좋은 날을 의미한다. 3대의 빨간 자동차는 아주 좋은 날이며, 5대의 빨간 자동차는 특별히 좋은 날이다. 그리고 4대의 노란 자동차는 운이 없는 날을 뜻한다.

2-1.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싫어한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그런 만남이 생기는 걸 썩 내켜하지 않는다. 나는 아침 출근길이나 등교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걸 정말, 죽기보다 더 싫어한다. 가볍게 안정되어 있는 아침의 공기를, "오늘 날씨 좋죠?", "어제 어느 티비프로그램 봤어요?",라거나 "리포트 다했어?"같은 별 시덥잖은 질문으로 채워야 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가끔 출근길에 저기 멀리 아는 사람이 보이면 일부러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2-2. 크리스토퍼는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에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들이 오면 몇 주가 지나도록 크리스토퍼는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다 그분들이 편안하다고 여겨지면 다가가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아폴로 우주선에 대해 아는지 물어본다. 혹은 집의 구조를 그려보라고 하고, 어떤 차를 운전하는지 물어본 뒤에야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3-1. 나는 농담을 하지 않기에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농담을 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농담을 농담일거라고 생각지 못하고 진실로 받아들인다. "웃자고 한 소리야", 라는 말은 단지, 농담한 사람이 자신의 본심을 감추어보고자 하는 말일거라고 생각한다.(지금도 물론 농담을 잘하지 못하지만,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3-2. 크리스토퍼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담을 못한다. 예를 들어 동음이의어를 가지고 하는 농담일 경우, 그 농담을 하려고 애쓰면서 말을 만들게 되면, 동시에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를 써야한다. 그것은 세 개의 음악 작품을 동시에 듣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 사람이 당신에게 동시에 각각 다른 말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4-1. 나는 영국 최고 문학상인 휘트브래드 대상 수상작인, 마크 해던 지음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란 책을 읽었다.

4-2. 크리스토퍼는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풀어보고자 하는 소년이다. 아니, 그냥 소년이 아니고 자폐아 소년이다.

5-1. 물론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소년이 자폐아 일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책 내용 어디에도 자폐란 두 글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언론의 논평을 읽고서야 이 소년이 자폐아란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과 조금만 다르기라도 하면, 그들을 어떤 병을 앓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버리면, 오히려 그들을 대하기가 더 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2. 크리스토퍼는 아주 영리한 소년이다. 세계 각국의 수도를 다 외우고, 2의 45제곱까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낸다.

한 소년이 있다. 엄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아빠와 애완용 쥐와 함께 사는 소년이다. 소년은 정확히 그날 15년 3개월 2일째를 살고 있다. 그날은 한밤중에 누군가가 쇠스랑으로 시어즈 부인의 개인 '웰링턴'을 죽인 날이고, 소년은 그 범인이 누구인지 꼭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소년은 추리소설을 쓴다. 이 소설은 소년의 추리소설내용이자, 추리소설을 쓰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매력은 크리스토퍼가 정의하는 다양한 현상들의 풋풋함이다. 그러한 새로운 정의들을 읽고, 뜻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다보면, 이 책이 꽤 괜찮은 책이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감정이 있고 컴퓨터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컴퓨터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정이란 단지 내일 아니면 내년에 일어날 일, 혹은 일어났던 일을 대신해서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 머릿속의 스크린 위에 그려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만약 행복한 그림이라면 사람들은 웃을 것이고, 슬픈 그림이라면 울 것이다." (본문 208쪽)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문학수첩 리틀북(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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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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