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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에서 가장 정숙한 여인을 뽑으라면 그 주인공은 단연 '페넬로페'다. 페넬로페는 누구인가?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오늘날 자주 사용되는 관용어인, '페넬로페의 수의'로 유명한 여자다.

ⓒ 문학동네
페넬로페를 알려 주는 '페넬로페의 수의'는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헬레네 때문에 벌어진 트로이 전쟁을 살펴봐야 한다. 영웅들과 신들 대부분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의 전쟁인,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자 약속에 따라 오디세우스도 참전하게 된다. 전쟁은 몇 년에 걸쳐 계속된다. 그러다가 오디세우스의 머릿속에서 나온,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덕분에 승리를 거두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페넬로페는 당연히 부부의 정을 다시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고 결국 행방불명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왕국의 다른 유력자들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하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협박과 회유 속에서 페넬로페는 위기에 처하는데 그때 등장한 것이 '페넬로페의 수의'다. 시아버지를 위한 수의를 만들고 나면 새로이 결혼하겠다는 것인데 페넬로페는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수의를 풀어서 시간을 버는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이것만 보면 페넬로페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다운, 참으로 현모양처다운 인물로 기억될 만하다.

하지만 신화를 이렇게만 봐야 할까? 알려진 대로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페넬로페를 정숙한 여인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페넬로페에 대한 이야기를 비틀대로 비튼 <페넬로피아드>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첫번째 의문은 오디세우스와 관한 것이다. 교활하다고 소문난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위협을 받아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지은이는 다양한 비꼼으로 오디세우스를 비아냥거린다. 혹시 미인들과의 유희에 정신을 잃어 집과 아내를 잃은 것은 아니냐고.

두번째 의문은 페넬로페에 관한 것이다. <페넬로피아드>를 이끄는 화자라고 할 수 있는 페넬로페는 현모양처가 해서는 안된다고 알려진 '한풀이'를 한바탕 늘어 놓고 있다.

전쟁의 원인이 되는 헬레네에 대한 질투, 남편에 대한 의심, 정혼자들에 마음이 기우는 갈등, 갇혀서 지내는 시댁살이에 대한 불만 등 페넬로페의 말투는 기존의 그녀의 이미지를 뒤흔드는 데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페넬로페의 독백은 연민을 자아낸다. 사실 어느 여자가 외딴 곳에서 홀로 이십 년의 세월 동안 남편만 기다리며 살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남편이 온갖 바람을 피우고 다니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페넬로페에 관한 의문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중차대한 의문은 페넬로페의 열두 명의 시녀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 열두 명의 시녀는 누구인가?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자마자 시녀들을 죽이는데 그들은 페넬로페를 괴롭히던 정혼자들의 성적 노리개 역할을 하던 이들이다. 기존의 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이들을 죽이는 건 당연해 보인다. 주인을 버리고 적들과 희희낙락했던 하녀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페넬로피아드>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이 그녀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

그녀들을 무엇을 말하는가? 그녀들은 페넬로페가 수의를 푼다는 밤의 그 시간에, 결혼하자고 조르던 그들을 불러들여 한껏 '즐겼다'는 뉘앙스를 남긴다. 또한 시녀들 자신이 죽은 것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당했다는 말을 남긴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페넬로페에 대한 이미지는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는데 페넬로페는 그에 대해 일절함구한다. 오디세우스가 일방적으로 자신이 아끼던 시녀들을 죽였다는 말을 할 뿐이다.

이렇듯 <페넬로피아드>는 영원한 영웅으로 군림할 것 같았던 오디세우스를 바람둥이로 전락 시키고 외면 당했던 페넬로페와 페넬로페의 시녀들에 발언권을 주는 '새로운 신화 만들기'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녀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존에 알고 있던 신화를 전복 시키는 획기적인 사고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에 신화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개인은 신화를 어떻게 재창조할 수 있을까? <페넬로피아드>는 그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하다. 모범답안으로서 신화의 재창조와 새로운 신화만들기를 보여 주는 <페넬로피아드>. 신화를 비트는 독특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페넬로피아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 마거릿 애트우드 저/김진준 역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페넬로피아드 -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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