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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18일) 휴가를 냈다. 올해는 내가 유난히 바빴던 모양이다. 하루 하고 반나절밖에 쉬지를 못했다. 내가 근무하는 등기소가 그랬다. 하루라도 쉬면 등기신청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바쁜 일이 아니면 휴가를 내지 않았다.

나는 어제도 평상시처럼 일찍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셨다. 베란다로 나가 길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다시 서재로 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다녀온 여행기사다. 얼마나 바빴으면 일주일씩이나 미뤄가며 글을 쓰고 있을까.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금방 사라진다. 글이 제법 잘 나간다. 제목을 정해놓고 글을 쓰니 한결 편하다. 글이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아서 좋았다. 결론 부분도 내려놓으면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글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물론 일관성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최소한 제목하고 결론 부분은 정해놓고 글을 쓰라고 말이다.

글이라는 게 참 묘했다. 몇 줄 쓰지 않았는데도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어제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벌써 8시가 다된 모양이다. 딸그락 딸그락. 아이들이 식탁을 준비하고 있다. 때맞춰 아내가 나를 보채기 시작한다.

"7시 50분이에요. 출근시간에 늦겠어요."

▲ 우리 아이들입니다
ⓒ 박희우
나는 짐짓 못들은 체 했다. 아내를 놀려주고 싶었다. 계속해서 글만 써댔다. 아내가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하는 눈치다. 나는 그제야 아내에게 오늘은 휴가라고 말했다. 아내가 피식 웃었다. 아이들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아빠, 진지 드세요"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때였다. 아내가 불쑥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들아, 아빠가 실직하신 모양이다. 너희들 앞으로 어쩔래?"

나는 깜짝 놀랐다. 농담도 할 게 따로 있지, 하필 실직이야. 실직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데.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겠어. 나는 화가 나는 것을 애써 참았다. 작은놈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나한테 쪼르르 달려오더니 울상부터 짓는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내게 묻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도 짐짓 슬픈 표정을 지었다. 녀석을 꼭 안아주었다. 녀석이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녀석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빠, 좋은 방법이 있어요. 아빠는 지금까지 글을 많이 썼잖아요. 그 걸로 책을 내면 되잖아요?"

아내가 아이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아빠는 실직하신 게 아니다. 오늘 하루 휴가시란다. 아이들이 엄마는 거짓말쟁이라며 아내를 꼬집고 난리다. 나는 글쓰기를 중단했다. 식탁에 앉았다. 반찬이 단출하다. 총각김치에 콩자반이 전부다. 그래도 밥맛이 좋다.

"여보, 그런데 있지요. 직장 구하기가 참 힘드나 봅니다. 얼마 전이었어요. 우리 사무실에 정년퇴직하신 분이 들렀어요. 30년 넘게 우리 직장에 근무한 분이셨지요. 그런데 그분 말씀이 아파트 경비원 자리 얻기도 그렇게 힘들답니다."

내 말에 아내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숟가락을 놓더니 내게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지 정년까지 근무하라는 것이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월급은 많지 않지만 사는데 불편함은 없다. 아내가 알뜰하게 살림을 꾸린 덕택에 아파트도 장만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란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 아침 식단입니다
ⓒ 박희우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그때까지 쓰다만 글을 마무리 짓는다. 아내가 커피를 타온다. 그래도 아내밖에 없다. 글 쓰는 병에 걸려 허구한 날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는 나를 아내는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새로 컴퓨터를 구입할 때만 해도 그랬다. 내가 컴퓨터 값을 지불하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원고료를 청구하려고 하자 아내가 말렸다.

"우리가 작년에 아파트학교용지분담금 낸 거 있지요? 그게 위헌판결 받았잖아요. 그래서 분담금을 돌려받았어요. 그걸로 컴퓨터 값 지불했어요. 당신이 어렵게 모은 원고료잖아요.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찾아 쓰세요."

아내의 마음이 갸륵하기만 하다. 나는 눈물이 핑 도는 걸 애써 참았다. 정말이지 나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이만큼 내게 글 쓸 자유를 준 사람들이 또 있었을까. 언젠가는 나도 가족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예쁜 책을 내어 가족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나는 그날까지 열심히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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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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