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연극 '강풀의 순정만화'
ⓒ 떼아뜨르 추
연극 관람료는 결코 싸지 않다. 웬만한 규모의 극장에서 하는 연극은 이미 오래전에 삼만 원을 넘어섰고, 이젠 소극장 연극까지도 삼만 원을 받는다. 십만 원이 넘는 뮤지컬 공연에 비하면 연극은 비싼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좁은 소극장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고작 2시간여에 3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건 누구나 비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배우 유지태씨는 이번에 출연하는 연극 <육분의 륙(戮)>에 1억4천만 원 가량의 제작비를 댄다고 한다.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연극계 현실을 보고 제작비를 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연극을 한다는 건, 배를 곯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무대에 서는 배우들을 생각해서, 웬만하면 연극 공연에 대한 나쁜 글들은 적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연극판에, 찬물까지 끼얹으면 너무 힘들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는 돈이 없어서 더 나은 연극을 만들 수가 없었답니다. 관객 여러분의 이해바랍니다' 와 '우리는 돈이 없어서 좋은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답니다. 손님 여러분의 이해바랍니다'는 다를 게 무엇인가.

전문 연극 배우와 연출자와 무대미술가 등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연극이라면 그 또한 전문 연극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고등학교 축제 때나 볼 수 있는 그런 엉성한 연극을 보여주면서 3만 원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그런데도 3만 원을 받는다면 자신들이 만든 연극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원작자에게 지불한 원작료에 대한 회수 차원인가.

'강풀의 순정만화'란 연극을 보고 왔다. '강풀의 순정만화'는 2003년부터 '다음'에 연재되어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나 또한 그 당시 '순정만화'가 연재되는 날들을 기다리곤 했다. 온라인 만화였던 '순정만화'가 큰 인기를 얻고, 책으로도 출간되고, 얼마 전엔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도 들렸는데,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강풀의 순정만화'의 유명세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을 것이다. 워낙 알려진 작품이다 보니, 홍보에도 유리할 것이고, 내용도 검증됐다 보니 쉽게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연극 '강풀의 순정만화'는 이 유명세에만 기댄 채, 정작 중요한 각색에는 소홀했다. 만화와 연극이란 장르는 분명 다를테니, 그 차이점을 인정하고 만화에서 받았던 느낌들을 그대로 연극에서 소화해 낼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했을 거 같은데, 연극은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만화 '순정만화'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연우, 수영과 더불어 하경, 숙, 규철, 붕어빵 아줌마, 거기에 더해 엑스트라처럼 느껴지는 편의점 직원, 수영의 엄마, 아빠까지. 그리고 얘깃거리도 무척 다양하다. 그 모든 것을 좁은 소극장에서 2시간여 동안 풀어내려면 이야기를 과감히 잘라냈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만화에서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토막 이야기들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 사이에 흐르는 어떤 따뜻함이었기 때문이다.

▲ 주인공은 모두 여섯명
ⓒ 강풀
하지만 연극 '강풀의 순정만화'는 너무 많이 욕심을 내었다. 만화에서 보여주었던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다 보여주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연극은 감정이 흐를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배우 2명 나와서 대사 몇 마디하고 나면 장면 바뀌고, 또 다른 배우 2명 나와서 대사 몇 마디하고 나면 또 장면이 바뀌고. 이런 상황이니 대사에 빠져들 시간이 없고, 그냥 눈만 빙빙 굴리고 있는 셈이었다.

일화만 보여주고 있는 연극을 어찌 해 보려고 애쓴 게 코믹이다. 하지만 그 코믹이란 것 또한 '아니, 관객 수준을 지금 어떻게 보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 그 또한 실패일 것이다. 웃어주지만 그 웃음은 안쓰러워 웃는 웃음일 테다.

▲ 연우가 수영이네 식구와 같이 밥 먹는 모습
ⓒ 강풀
만화 '순정만화'에는 따뜻함과 용서와 이해가 있다. 식구가 없는 연우가 수영이네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따뜻함 그리고 수영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 하경이 규철을 이해하게 되는 것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등 만화 전체적으로 사랑과 따뜻함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연극 '강풀의 순정만화'에는 대사와 코믹만 남았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 감독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의 눈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마루야마 겐지도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혹시 강풀씨가 이 연극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