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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6년 1월 24일은 남편과 내가 빚은 첫 작품(?)이 세상속으로 출고되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마친 남편은 딸아이가 첫 근무를 하게 될 직장을 찾아서 화분을 보내줘야 한다며 아침부터 바쁘게 서둘렀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바쁘다고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해서 늘 미안해 한 우리 부부입니다. 대학 졸업을 한 달 남겨두고 발령이 난 걸 생각하니 나는 내내 마음이 아픈데 남편은 기특하다며 즐거워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보내서 16년 동안 학교 공부로 달려온 심신을 쉬게 한 후 출근했으면 좋을 텐데, 다시 세상으로 나가 황금 같은 젊음의 시간을 일로 보낼 녀석이 안쓰러웠습니다.

마음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책과 씨름하며 학교 공부와 공무원 시험공부를 병행하며 매달려온 아픈 시간의 열매를 손에 안은 자랑스러운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29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열여섯 살에 일터로 나가서 독학으로 주경야독으로 5년 뒤에 얻었던 공무원으로 출발한 내 모습을 돌아보며 나는 작은 한숨을 들이켰습니다.

정말 마음 편하게 놀러 다녀본 추억도 없이 보낸 젊음. 결혼과 함께 자식을 기르면서 직업 전선에서 공무원과 교직생활 29년을 보낸 지금. 내 앞에 있는 나의 모습은 지천명으로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 성성해진 머릿결. 이미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길을 향해가는 빠른 시간의 물줄기 앞에 서서 '삶이란 정말 별거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 한 조각.

그러기에 나는 딸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얘야, 엄마는 가난한 집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라서 부모님을 부양할 책임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일자리를 얻어야 했단다. 일하는 엄마라서 너희 남매에게 제대로 못해 준 게 너무 많아 늘 미안했고 아빠에게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했단다.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를 충실히 해내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는 엄마처럼 일하는 여성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고 싶구나."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서서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두 아이를 기르며 눈물과 함께 밥을 먹었던 숨겨진 아픔의 시간들을 나처럼 대물림하며 살아갈 딸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착잡해옵니다.

제대로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빨리 먹어서 생긴 위장의 이상으로 음식 먹기가 부담스러워진 지금. 일과 공부, 육아와 아내 역할, 며느리와 딸노릇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으니 뒤집어 말하면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했고 쉴 시간이 부족했으며 늘 달리고 쫓기듯 살아야 했습니다.

주어진 24시간 속에서 때로는 엄마 노릇을 못해서 눈물 흘려야 했고 앞만 보고 달리며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내 삶에 회의하며 우울해 했던 시간들도 숨어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던 30년을 보내고 나니, 어두워진 눈, 엉성해진 머릿결, 돌아가는 길이 바빠 조급해진 마음에 염려되는 건강까지... 좋아하는 책도 눈이 나빠져서 마음대로 볼 수 없으니 서글프고 음식 맛도 잃어가는 미각으로 요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이듦의 서글픔.

이런 내 마음을 아무리 말해 줘도 자신이 가 본 적이 없는 길이니 위풍당당하게 달려갈 태세로 씩씩하게 출근하는 딸아이가 부디 처음 마음을 잊지 않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달려온 내 방법을 전수해 주려합니다.

첫째, 여성임을 내세워 눈물을 보이거나 쉬운 일자리를 생각하지 말 것.
둘째, 모르는 것을 배우는 데 게으르지 말고 자기 업무를 정확히 파악할 것.
셋째, 전문 서적과 교양 서적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 것.
넷째, 공무원은 철저하게 봉사적인 자리임을 잊지 말고 친절하고 성실할 것.
다섯째, 자신을 위해 노는 시간도 남겨 놓을 것(이것은 내가 못해 본 것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너나없이 힘들어 하는 현실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추구하며 학부 졸업생이 몰려드는 공무원 시장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한 딸아이의 힘찬 2006년을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취업의 문턱에서 젊음을 보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힘든 과정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이기는 싸움에서 의연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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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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