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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사모를 쓴 한준석씨와 김숙이씨가 활짝 웃고 있다.
ⓒ 김범태
지난 15일 서울 휘경동의 한 대학 학위수여식장. 까만 졸업가운을 입은 수 백 명의 졸업생들 사이에 학사모를 쓴 중년의 부부가 눈에 띈다. 이들은 삼육간호보건대 보건사회복지과를 졸업한 한준석(54), 김숙이(53) 부부.

이들은 막내딸보다도 어린 학생들 틈바구니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전체 10위권 안에 드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이날 영예로운 학위증을 손에 쥔 ‘부부 장학생’이었다. 졸업평점이 4.5점 만점에 한씨가 4.3점을, 김씨가 4.26점을 받았을 정도. 마지막 학기에는 이들 부부가 전체 1, 2위를 차지할만큼‘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의 뇌리에는 만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졸업하는 기쁨과 감격보다, 3년 전 이국땅에서 먼저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부가 지천명의 나이에 늦깎이 신입생이 된 데에는 지난 2003년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승원씨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22살의 꽃다운 나이였던 아들을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황망히 보내고, 슬픔에 겨워 나날을 지내던 부부에게 처남인 김상래 교수(삼육대 신학과)가 대학 진학을 권유하면서부터다.

부부는 “대학을 다녀야겠다는 생각보다 어딘가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에서 어렵게 결정한 선택이었다”며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누기 위해 애쓰던 당시를 담담히 회고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진학하려니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김씨의 경우 전교생이 150명밖에 되지 않는 강원도 산골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도전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망설여졌다. 그녀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5남매의 동생들을 홀로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쳐야했다. 마흔두 살에 어렵사리 중·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마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한씨 역시 “공부를 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만큼 오래 되었다”며 자신이 대학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는지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부부는 입학 이후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의 본가를 나와 서울에 거처를 따로 마련하고 공부할 만큼 열성을 보였다. 처음에는 어린 학생들 속에서 어떻게 공부할까 막막하기도 하고, 여간 어색하고 쑥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

황혼의 나이 탓인지 수업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는 기억력 때문에 부부는 평소에도 노트를 끼고 살았다. 시험기간을 앞두고는 거의 2-3주 동안 책과 씨름하는 등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 과제물을 정리할 때면 문장력이 좋은 아내가 남편의 리포트를 살펴주고, 분석력이 뛰어난 남편은 내용을 검토해 주는 등 서로의 부족한 점을 도와주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것은 비록 나이는 먹었어도 공부만큼은 뒤처지지 않겠다는 각오이자 어른으로서 자식뻘 되는 학우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먼 길을 떠나버린 아들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늦깎이 대학생 부부... 아들 잃은 슬픔 봉사활동으로 승화

▲ 늦깎이 대학생 부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봉사로 승화했다.
ⓒ 김범태
부부가 보건사회복지과를 지원한 것은 이처럼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난 후 삶의 소중한 의미를 잃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씨는 대입 면접에서도 “20년은 친정 동생들을 위해, 20년은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 나머지 20년은 어려운 처지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뜻을 비쳐 면접관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부부는 이후로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보다 더 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발 벗고 찾아 나섰다.

이를 위해 수업이 끝나는 매주 금요일이면 둔내로 내려가 가정봉사파견센터에서 농촌지역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으며, 학기 중에는 학교 교수진과 학생들을 데리고 무료진료 및 건강세미나, 영정사진 촬영 등의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한씨는 최근 소형트럭을 구입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떡볶이 장사에 나섰다. 그 수익금으로 농한기를 맞아 경로당에서 술이나 담배, 화투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소일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서다.

봉사를 통해 아들을 잃은 깊은 슬픔을 잊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되찾은 부부는 곧 상지대학교에 편입을 앞두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편입학도 같은 복지계열 학과를 선택했다.

부부는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의 필요를 파악해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며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해 지역사회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학교를 떠나며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미소 지은 부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을 만학도들에게 “처음에는 우리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과감히 도전해 보라고 ‘파이팅’을 외쳤다.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부부는 이날 오후, 목 아래까지 차오르는 가슴 뻐근한 그리움을 삭히며 경기도 포천의 한 공원묘지에 먼저 잠들어 있는 아들의 묘지를 찾았다.

“보고 싶은 아들… 엄마, 아빠 오늘 졸업했다. 모두 네 덕분이야. 너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되어 기뻐. 착한 우리 아들, 앞으로도 응원해 줄 거지?”

살아 있다면 누구 보다 축하해주었을 아들, 엄마에게 자랑스럽다고 볼에 입을 맞추어주었을 살가운 아들의 모습이 코끝 찡한 겨울바람과 함께 눈부신 햇살 뒤로 가만히 스쳐 지났다. 누렇게 바랜 잔디 위에 앉아 있는 부부의 졸업장이 햇빛에 반사되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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