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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조례안 제정과 그 후 이어진 일 정치인들의 망언에 분노한 우리네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주말이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화제의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다. 그 '불멸'의 신화를 잇기 위해 KBS가 야심 차게 준비한 드라마 <서울 1945>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드라마는 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숱한 화제를 만들어 내었던 <여명의 눈동자>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윤여옥(채시라분)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운명의 두 주인공 장하림(박상원분)과 최대치(최재성분)의 갈등과 대립, 연민의 파노라마는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 대치와 여옥이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그 안타까운 사랑에 죽을 만큼 아팠고, 대치가 인도차이나의 정글에서 산 뱀을 물어뜯는 장면에서는 아연실색하면서도 그토록 강한 삶의 의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림과 여옥, 여옥과 대치, 대치와 하림에게 씌어진 운명의 굴레와 <서울 1945>의 주인공들인 동우와 운혁, 석경과 해경(개희)의 엇갈린 사랑과 어긋난 운명은 다르지 않다. 서로를 연민하고 누구보다 더 사랑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도록 운명지어진 그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여명의 눈동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림은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나는 남았다. 남은 자에게는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의 메인타이틀과 등장인물들
ⓒ KBS
현재까지 18회가 방영된 <서울 1945>의 첫 회에서 남측의 동우는 북측의 운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하지만 동우의 약혼자인 해경은 "이 사람이 죽으면 나도 살 수 없다"며 애원한다. 끝내 해경과 운혁의 도주를 묵인하는 동우와 <여명의 눈동자>의 하림은 같은 별을 타고난 인물이다. 대치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감수했던 여옥이나 어린 시절부터 운혁을 사모했기에 동우를 배신해야 하는 해경은 운명의 자매들이다. 가슴을 갈래갈래 찢어놓는 사랑의 아픔과 풀어버릴 수 없는 사슬로 그들을 옭아맨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굴곡진 현대사의 격랑을 일으킨 것은 바로 분단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구석구석에 분단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고 지금까지도 걷히지 않고 있다. 분단이란 괴물의 마수는 우리의 정신과 이성을 반신불수로 만들며 그로 인한 골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멀리로는 동족상잔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 했고 군부독재를 용인해야 했으며 신성한 '개인'을 주장하는 것이 간첩질이 되는 암흑의 시대를 경험해야 했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호소가 '불온'이 되는 이 모순의 땅에서는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노예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분단의식은 언제나 피상적이며 감성적이다.

학문에 인간이 없고 이념에 사람이 없으면 이는 모두 가짜다. 분단은 바로 그 가짜의 것들이 진짜처럼 행세하도록, 그 가짜를 진짜로 맹신하도록 우리에게 광기를 불어넣는다. 무조건 수용과 무조건의 배척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오랜 세월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굳어버렸다. 분단은 그렇게 한 개인의 정신까지를 지배한다.

분단을 뛰어 넘어 경직된 의식의 관절에 유연함을 길러주는 데에는 장편만한 것이 없다. 요즘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텍스트에 해당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이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우선 재미가 없다. 내 삶과의 구체적 연관성이 없으니 더욱 어렵다. 선택은 소설이다.

소설은 비록 꾸며낸 이야기긴 하지만 작가는 작품 속에서 현실보다 더욱 사실적인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속에는 당대가 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 있으며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사건이 있다. 인물과 사건은 곧 역사다. 또한 소설은 한 시대의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적 경험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는 당대의 정신과 전형(典型)을 드러낸다. 그것은 그대로 내 경험의 한토막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재미있다.

그저 추리작가로만 알고 읽기 시작했던 김성종 문학(여명의 눈동자)이 주는 충격에 놀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식음을 전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10권을 사흘 만에 읽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텅 비어버렸던 기억. 남북으로 갈린 운명의 소용돌이보다 더 강하게 부딪친 생존의지, 식인(食人)을 서슴지 않으며 살아남으려는 최대치를 비롯한 패잔병들의 정글은 충격과 경이의 세계였다.

분단은 해방 후 찾아온 것이 아니다. 세계열강들의 협상테이블에서 정해진 것도 아니다. 분단은 피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이미 예정된 역사의 불행이다. 민족은 만주로 북간도로 뿔뿔이 흩어졌고 우리의 자원은 수탈되어 제국주의 전쟁의 군자금으로 충당되었다. 강토에는 전쟁을 위한 산업기반만이 기형적으로 산재하였다. 소위 식민지 근대의 암울한 현실에 지식인 계층은 황국신민의 길을 걸었고 굶주림과 착취에 지친 민심은 꿈조차 포기하였다.

조정래의 <아리랑>은 바로 그 식민지시대 인간 군상들을 현미경으로 보듯 생생히 재현해낸다. 김제 군산을 중심으로 한 강토의 곡창지대를 배경으로 식민지 백성의 한과 눈물 그리고 그 참혹한 삶을 이야기 한다. 일제에 부역하거나 일제에 항거하거나 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그 안에 녹아있다.

삶의 터전, 인식의 지평은 강토에 머물지 않고 만주 하와이 블라디보스톡까지 확대된다. 수많은 취재여행과 자료수집으로 복원해낸 나라 잃은 백성의 삶은 그대로 '한'이다. 같은 민족 간의 갈등과 반목은 곧 이념의 맹신을 부추기고 이는 분단시대를 여는 서막이다. <태백산맥>은 그 분단이 잔인하게 충돌하는 역사의 진혼곡이다.

소설 속의 분단과 식민지가 어디 두 장편뿐이겠는가. 분단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작품에 녹아 있는 한 모든 문학은 통일(분단)문학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포켓북 형식 등으로 다시 출간되고 있는 책들 중에는 70,80년대의 주옥같은 단편들도 많다. 이를테면 일송에서 내놓은 '판문점'을 비롯한 이호철의 단편선 등이 그것이다. 또한 분단이 우리에게만 주어진 고통은 아니다. 베트남과 독일 등, 그러나 그들은 그 분단을 극복하였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기왕 우리의 삶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는 분단에 대하여 눈을 돌렸다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서 식민지 분단을 경험한 베트남의 분단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더욱이 그 나라는 우리의 젊은이들이(우리에게는 선배세대가 되겠지만) 달러 몇 푼에 미제의 앞잡이가 되어 전쟁을 수행한 불행한 역사의 현장이 아니던가. 방현석의 <존재의 형식>은 우리의 눈으로 본 베트남의 분단에 관한 단편이다. 단편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의 일독을 권한다.

어린 나이에 정글의 전사로 참여했던 시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반레의 소설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하재홍 역/실천문학사)은 한 때는 우리에게 악마의 빨갱이라 가르쳐졌던 베트콩 친구에 관한 회고담이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러나 외세로 인한 분단에 철저히 저항하다 밀림의 고혼이 된 아름다운 영혼의 친구를 추억하는 소설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꼭 한 번 읽기를 권한다.

드라마 <서울 1945>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남겨져 시대를 증언하고 사랑했던 친구를 추억할 것이다. 베트남 시인 또한 친구를 추억하고 시대를 증언한다. <아리랑> 역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노래다. 소설 속의 '대한민국 1945'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눈 덮인 골짜기에서 하림이 하던 말이 다시 들려오는 듯하다.

"남겨진 자에게는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자의 추천 소설

얼마 전 '전략적 유연성'이란 생소한 낱말이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건의 유출파문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연내 환수에 합의하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는 우리의 안보를 외세에 의존하고 있는 애처로운 분단현실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또한 우리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미명 아래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한 참전국이다.

전시작전권을 비롯한 국경의 안보를 미군에게 의지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의 일방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슬픈 조국의 현실은 베트남의 독립전쟁에 기자의 눈을 돌리게 한다. 적어도 외세와 민족분단을 극복하였다는 점에서만큼은 그들의 경험은 값지다. 우리의 분단과 그들의 분단, 우리의 전쟁과 그들의 전쟁은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설읽기는 그 두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 굶주리지 않고, 외국의 군대가 베트남의 사람과 대지를 유린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 <존재의 형식> 중에서

우리의 바람과 무엇이 다를까.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형성사), 이상문의 <황색인>(현암사),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던 안정효의 <하얀 전쟁>(고려원), 대하드라마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머나먼 쏭바강>(이가서), 따이한 소녀가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찾아 화해하는 오현미의 <붉은 아오자이> 등이 우리의 눈으로 본 베트남 전쟁과 그 전쟁의 정글에서 살아남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참전용사들에 관한 장편들이다.

우리의 분단에 관한 소설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최인훈의 <광장>(구운몽)은 분단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여러 번의 개작을 통해 현재에도 유효한 관점을 제공해주는 스테디셀러다. 윤흥길의 <장마>(민음사) 역시 꼭 한 번 읽기를 권하는 작품이다. 보수우익의 대변자로써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문열의 <영웅시대>(민음사)는 작품성에 집중하여 읽으면 좋을 듯하다.

전후 세대 작가에 의해 빚어진 작품으로는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문학과 지성사)이 있을 것이다. 같은 작가의 <백년 여관>(한겨레신문사)은 식민지시대부터 4·3사건과 6·25,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현대사 100년의 시공간을 가른다. 장편을 읽기에 부담스러운 독자들을 위한 단편은 무수히 많다. 드라마를 보면서 분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소설읽기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리라 확신한다.

"너희 나라는? 너희 나라는 다르냐?....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가, 뭐 남의 나라를 돕겠다구? 세계평화가 어떻구 어째? 야 나발불지 말라고, 돌아가서 니 나라나 지켜!.... 얻어먹으러 온 주제에 주인을 모독해" - <황색인> 1권 85쪽 / 임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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