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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하루가 다르게 더 많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자운영
ⓒ 한명라

▲ 옛날 고향의 논둑에서 볼 수 있었던 자운영
ⓒ 한명라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시골이어서 그런지 저는 산과 들에 피어나는 아주 작은 들꽃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자라 자신들의 삶을 찾아 내 곁을 떠나면, 그때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꿈 꾸는 삶이 있습니다.

제가 꿈 꾸는 삶은, 내려쬐는 따뜻한 햇볕을 마음껏 느낄 수 있고, 밤이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별들을 질리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시골마을에, 나지막한 나무울타리가 있는 마당이 넓은 집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습니다.

마당의 텃밭 가장자리는 소박한 들꽃들로 가득하여, 계절이 바뀌면 제 스스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풍경을 보여주는 마당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합니다.

이제 마흔이 훌쩍 넘은,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그런 꿈을 꾸는 저를 바라보면서 어떤 분들은 어쩌면 철없는 아줌마라고 놀릴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삶을 살아가리라고 항상 다짐하고는 합니다.

아파트인 우리집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있지만, 저는 크고 화려한 화분들보다 아주 작고 소박한 화분의 화초들을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 한명라

ⓒ 한명라
지난해에 어머님의 제사를 지낸 후, 어머님 산소를 다녀오다가 길가에 핀 자운영 한 포기를 조심스럽게 캐 와서 빈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 자운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까만 씨앗을 맺었습니다. 자운영이 진 그 화분에 잊지 않고 물을 주었더니 올 봄에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맺더니 기어코 꽃을 피웠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자운영이 너무 서둘러 꽃을 피울까봐 저는 아침마다 마음을 졸이고는 했습니다. 저의 디지털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20여일 가까이 수리센터에 맡겨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운영꽃을 카메라에 담기도 전에 꽃이 져 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사실 자운영보다 앞서 꽃을 피웠던 냉이는 그 키가 너무 커 버려서 카메라에 담아도 별로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병원에 가시기 전에 잠시 저희집에 들렀던 아버님께서 화분에 핀 냉이꽃과 자운영을 보시고 "허허, 아파트에 냉이꽃도 피고 자운영도 피고… 어찌 겨울 동안 죽지 않고 살았을꼬…" 하십니다. 저는 "아버님은~ 제가 잊지 않고 꼬박 꼬박을 물을 줬으니까 안죽었죠~" 하고 자랑을 했습니다.

▲ 올해로 3년째 우리집 베란다를 지켜주는 시클라멘
ⓒ 한명라
시클라멘은 3년 전 제 사무실 옆에 위치한 상가 분양사무실 책상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가, 그 사무실이 철수를 하면서 버려졌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집으로 가져와서 영양제도 주고, 작은 정성으로 보살폈더니 지금까지 변함없이 3년 내내 그 화려한 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6년째 베란다를 지키는 선인장 종류의 꽃
ⓒ 한명라
중학교 2학년인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 가져 갈 화분을 구입하면서 함께 샀던 선인장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분홍빛 작은 꽃망울을 피워 주면서 저에게 기쁨을 선물합니다.

▲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사랑초
ⓒ 한명라
지난해 길을 지나다가 앙징맞은 작은 꽃이 예뻐서 구입한 사랑초입니다. 겨울이 되면서 예전의 묵은 잎은 다 져버리고, 봄이 되자 새로운 잎이 돋아나고,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웠습니다.

▲ 6년째 우리집 베란다를 지키는 안방마님 군자란. 자식을 분가시키기도 했습니다.
ⓒ 한명라
6년 전,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언니집에서 가져 온 군자란입니다. 군자란은 우리집에 온 다음해 봄부터 그 화려한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오랜 산고 끝에 2개의 새끼를 출산했습니다. 한 개의 화분이 세 개가 되고, 올해에는 새끼 군자란과 함께 사이좋게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듯한 온시디움
ⓒ 한명라
화려한 노란 드레스와 모자를 쓰고 춤을 추는 듯한 서양란은 온시디움이라는 이름의 꽃입니다. 2년 전 어느 노총각의 자취방에서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에 걸렸던 온시디움은 그 노총각이 이사를 가면서 버려지려는 찰나 우리집으로 옮겨 왔습니다.

자신을 구해 준 저에게 선물이라도 하듯 지난해에 이어서 두번째로 화려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지난해 우리집을 환하게 빛내 주었던 민들레꽃
ⓒ 한명라
지난해에 노랗고 환한 웃음으로 활짝 피어나서 저에게 많은 기쁨을 선물하여 주었던 민들레꽃입니다. 민들레꽃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저는 오랜 바람으로만 생각했던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콘크리트로 지은 25층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 베란다에서 피고 지는 작은 꽃들이 있어서 제 삶이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제가 꿈 꾸고 있는 마당이 넓은 집에서도 지금의 꽃들이 저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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