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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을 전해온 촌지
ⓒ 장옥순
"00십니까? 택배회사입니다. 금방 갑니다."

토요 휴업일로 집에 올라와서 쉬고 있는 오후, 단잠을 깨우는 목소리에 피곤함도 잊고 갸우뚱했습니다. 이 시간에 내게 올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문인단체의 문예지나 출간 서적이라면 택배로 올 리는 없기에 물건이 오는 동안 호기심 많은 아이들처럼 손꼽아 기다렸지요.

얼마 뒤에 우리 집에 들어온 손님은 3년 동안 내 마음을 담고 살았던, 내게는 고향같은 연곡분교 학부형님이 보내신 고로쇠였습니다. 세상에나, 떠난 담임 선생님에게, 그것도 택배로 보내는 정성 앞에서 나는 그만 눈시울까지 붉혔습니다. 저 물을 만드느라 추운 겨울에도 나무는 쉬지 않고 일을 했을 것이고, 시린 손을 불어가며 험한 산을 오르내렸을 학부모님의 노고를 생각하니 단순한 선물이 아님을!

유난히 정이 많았던 연곡분교의 모든 아이들이었습니다. 내 반이었던 1, 2학년 다섯 명 중에 2학년 하나였던 정나라양은 특별히 사랑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저학년을 처음 담임하며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우쳐 준 아이였습니다. 늘 공주 그림을 그려서 내게 내미는 아이, 하트 모양의 색종이에 사랑한다고 써서 내 바이올린 틈바구니에 몰래 넣어 놓고 집에 가곤 했던 소녀였습니다.

이제 보니 그 아이가 그렇게 사랑이 많은 것은 그 부모를 닮은 모양입니다. "나라 엄마는 어떻게 떠난 사람에게 이렇게 마음을 전하세요?"했더니, "우리가 언제 헤어졌던 가요?" 하시며 내 말문을 막으셨습니다. 그 학교를 떠나며 나는 아직도 뒤돌아보며 정리하지 못한 그리움을 삭히느라 이렇게 힘들어 했는데 알고 보니 그리움은 정리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눈 앞에서만 사라졌을 뿐, 마음 속에 남겨둔 정과 사랑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귀여운 그 녀석이 아직도 선생님이 떠날 때 송별회를 못해 준 것을 미안해 하며 들먹인다는 말을 들으니 내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모든 선생님이 한꺼번에 떠나니 송별회를 하면 눈물바다를 이루어 아이들을 울게 할까 봐 못하게 말린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랑이 많은 아이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습니다.

1년 동안 교실을 지켜준 사랑이 담긴 꽃바구니를 떠나올 때 꼭 실어야 한다고 부탁했는데 다른 이삿짐에 밀려 챙기지 못하고 교실에 두고 온 것을 미안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왜 안 가져 가셨는지 섭섭해 한다는 나라의 말을 전해 들으니 아이 맘을 헤아리지 못한 내 실수가 부끄러워졌습니다.

▲ 마음 속에 간직한 꽃바구니
ⓒ 장옥순
'나라야, 그 꽃바구니는 이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으니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단다. 부디 곱게 바르게 자라서 선생님이 되겠다던 그 약속을 이루어주길 바란다. 몸으로 껴안아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안아 줄게. 사랑해!'

그리움을 담아 보낸 고로쇠 수액 한 모금마다 지리산 피아골에 사는 정이 많은 학부모님의 애정도 함께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그리움을 만들어내는 시간을 잉태하렵니다. 나라 엄마! 맞아요. 우리는 헤어진 적이 없습니다. 지상에서 만든 인연이 끝나는 법은 없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지리산 산골분교 <연곡분교장>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006년도에도 변함없이 바이올린도 배우고 학생수도 늘어나서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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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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