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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이라는 꽃은 쉽게 피지 않습니다
ⓒ 조찬현
오늘 나는 슬픈 마음을 안고 이 기사를 씁니다. 3월 28일은 가장 힘든 생일을 보낸 날입니다. 교실 유리창이 맑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우리 반 아이 19명에게 독서를 시키고 청소를 시작한 게 문제였습니다. 마량 앞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꽃샘바람에도 불구하고 몸에 땀이 날 정도로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절반가량 닦았을 때 몇 몇 아이들이 걱정하는 투로 말합니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떨어지면 죽는데…."
"선생님이 이상하다?"

저는 아침에 끝낼 요량으로 거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터였습니다. 말갛게 닦이는 유리창에 비친 바다 풍경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던 것도 잠시, 갑작스레 위경련이 시작됐습니다. 통증을 참으며 작업을 진행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가족을 불렀습니다.

인근 보건 지소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며 2시간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달려온 존경하는 오난옥 팀장님의 위로와 마사지를 받으며 생일이면 가장 생각나는 친정어머니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새 학교에서 새로운 학생들과 만나면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20년 가까이 6학년을 맡았지만, 복식학급(둘 이상 다른 학년 학생으로 짜여진 학급)에서 1, 2학년을 맡아본 경험을 떠올리며 1학년을 선뜻 맡았던 게 잘못인 것 같습니다.

6학년과는 너무나 다른 1학년 학생들

출근하기 전, 거의 날마다 '오늘은 어떤 공부로 아이들과 잘 지내지' '어떻게 하면 제 맘대로 날뛰는 아이들을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하지' '싸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고쳐주지' '먹기 싫다며 40분씩 식판과 몸부림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밥 먹게 하지' '글씨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어떻게 빨리 깨우치게 하지' 등등의 고민으로 교단생활에서 가장 긴 3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은 많아도 모범을 보이고 좋은 말로 충고하면 잘 따르고 공부도 잘 해 주었던 6학년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1학년 아이들.

한 명씩 대할 때는 말도 통하고 귀여운 꼬마인데 전체 속에 있으면 제각기 개성을 발휘해서 단 몇 초를 집중하지 못하는 왕성한 운동력에 내 인내심이 한계점이 도달해 있었나 봅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고, 칭찬과 벌점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으지만 수업이 파할 때쯤 되면 종아리는 이미 퉁퉁 부어있는 일상이었습니다.

친구집에서 노는 아이들, 퇴근해도 일은 끝나지 않아

그래도 이제 제법 눈길을 맞추는 아이들이 늘어나 안도하던 참이었는데, 생일 아침의 변고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도 갑작스런 변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침울한 하루였습니다.

안정을 취하자며 조퇴를 하면 좋겠다던 남편을 억지로 돌려보내고 교실로 오니 아이들은 자기들 알림장을 보여주며 포인트를 달라고 달려들었습니다. 알림장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소식지에 부모 도장이나 사인을 받아 오면 칭찬 포인트를 줘 바람직한 습관을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실내화를 빨았다고 자랑하는 민혁이에게도 별점을 주었습니다.

편식을 지도하기 위해 점심밥을 다 먹으면 별점을 주었더니 요즘은 거의 모두 별점을 올립니다. 그러나 한 시간 가까이 식사 지도를 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릅니다. 먼저 먹은 아이들이 교실에 가서 장난하다 다칠까봐 걱정이고 운동장에 나가 놀게 하면 시간을 못 지키니 또한 걱정입니다. 이제 막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아이들이라 친구 집에 가서 노느라 학교차를 안 타려는 아이, 집에 도착하지 않은 아이들 때문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 집을 뒤지는 일도 있으니 퇴근해도 일이 끝난 게 아니랍니다.

힘들지만 웃음 주는 아이들

힘든 일상이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혼자서 실실 웃음 짓게 됩니다. 1학년 아이들이 주는 기쁨입니다. 보건지소에서 돌아온 나에게 유림이가 생일을 축하한다며 스케치북에 생일케이크를 그려서 선물하기에 참 맛있겠다며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 색종이에 생일축하 한다며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준 서경이, 말을 잘 들을 테니 아프지 말라며 곁에 와서 속삭이는 하늘이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늘 4시까지 학교를 헤집고 다니던 권영이는 작품을 붙이는 내 곁에서 부지런히 핀을 집어주며 옹알거렸습니다. 내가 가장 미안해 하는 아이, 권영이! 제 곁에만 있다면 훨씬 좋아질 아이인데 18명 아이들에게 몰린 내 눈이 그 아이를 품지 못하고 있어 가장 안타깝습니다.

이 기사를 시작할 때는 학부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받은 한 초등학교 교사를 생각하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었는데 예쁜 아이들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기사를 보고 난 뒤엔 1학년 선생님, 그것도 나이 든 여선생님들을 질타하는 여러 목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저는 화분 사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청소도와 달라고 학부모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체 학급(6개 반)에 진공청소기를 기증해 주신 학부모님을 둔 우리 마량초등학교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전진하렵니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고 책임을 통감하지만 그릇까지 깨서는 안 되겠지요? 자연치유력에 맡길 수 없을 만큼 중병인 경우에는 칼을 들이대어 수술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꼭두새벽에 이 글을 올립니다.

학부모님! 날아오는 돌팔매를 피하지 않으며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호된 꾸지람 뒤에는 따스한 격려도 같이 주소서! 발전과 상생을 이루며 함께 성숙하는 길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비난의 대상인 1학년 담임으로서 나이 든 여교사입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아픈 마음에 이 글을 썼습니다.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깨어 살고 싶다는 소망,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에세이> <한교닷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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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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