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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투명한 봄 햇살 사이로 바람이 섞여 들고 그 바람 사이로 알 수 없는 헛헛함이 엄습해옵니다. 그 헛헛함에 허덕이다 문득 깨어 보니 어느새 봄 햇살은 꼬리만 남긴 채 저만치 멀어져 가 버렸고, 동네 끝으론 이른 저녁 으스름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그 으스름 사이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시던 내 아버지의 굽은 등과 허연 머리칼이 언뜻언뜻 스치고, 글썽이던 두 눈가로 밝게 피어나던 내 아버지의 초라한 웃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무어 그리 미안하신지... 정작 죄송스러운 건 이 딸자식이건만, 내 아버지도 그토록 절절하게 부모님이 그리우셨다는 걸 미처 몰랐던 이 딸자식이건만...

“아버지. 그렇게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이왕 나설 거 일찍 나설란다.”

“그렇게 빨리 가시고 싶으세요.”
“그래. 갈려고 작정하니 자꾸 마음이 앞선다.”

“아버지. 그동안 할아버지 어지간히 보고 싶으셨나 보네요.”
“나는 부모 보고 싶어 할 자격도 없는 자식이다. 효도 한번 못한 자식이 무슨... 불효가 깊을수록 죄스러움은 더 큰 법이지.”

아버지의 한숨은 깊었고 흐린 시선은 먼 하늘 끝 어디쯤에서 한참이나 머물렀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아린 가슴은 벌써 고향마을 뒷산 할아버지 산소에 다다른 듯했습니다. 부모님 뵈러 가는 자식 마음이야 발걸음에 앞서 천 리 만 리 앞지르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아버지의 애달픈 조급함에 새삼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사고 당하시고 근 4년만에 찾는 부모님 산소. 그 마음도 오죽 절절하실까만 당신 자식에게 못난 아비라는 자책감까지 두 어깨에 짊어지셨음인지 오늘 아침 아버지의 야윈 두 어깨는 유난히 더 꾸부정해 보였습니다.

큰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지난 2일.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꾹 다문 아버지의 입은 좀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수심이 깊어지시는 듯 아버지의 퀭한 두 눈도 덩달아 깊어졌습니다. 서너 숟가락 뜨다만 아버지의 밥그릇은 이 딸자식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오롯이 재가 되어 가고 있는 아버지의 손가락에 낀 한 개피의 담배는 이 딸자식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이번 한식날 네 할아버지 산소를 좀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해마다 장마 때면 산에서 토사가 흘러 내려 봉분을 훼손시키기에 이 참에 봉분 주위에 돌도 좀 쌓고 산소에 떼도 좀 입히려고. 돈은 네 작은 아버지들과 나눠 내기로 했으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거동에 불편 없으면 함께 가자고 했다.”

참다못해 큰아버지께 전화를 드렸고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근심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 몇 푼이라도 자식들에게 손 내밀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 입장에서야 어쩌면 당연한 근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시기엔 다른 형제들 볼 면목 또한 없으실 터. 결국 아버지의 가슴앓이의 정체는 부모에겐 불효자요 자식에겐 못난 애비라는 당신 스스로의 자책이었습니다.

“아버지. 큰아버지께 말씀 들었어요. 돈 마련해 드릴 테니 다녀오세요.”
“안 갈란다. 몸도 안 좋고...”

“어제까지 식사도 잘 하시고 기분도 좋으시더니... 어디가 안 좋으세요?”
“그냥 여기저기...”

안가시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에 제 가슴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몸이 안 좋다는 아버지 말씀은 분명 거짓말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얼굴 맞대고 사는 자식 입장에서 이젠 아버지 눈빛만 보아도 아버지 기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몸이 안 좋다고 하셔도 안 가실 아버지가 또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하시기 전. 울산에서 경북 봉화의 그 첩첩산골까지 기차에 버스를 갈아 타시면서도 한 해 두 번씩은 꼭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오셨던 아버지셨으니 가시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결국은 돈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뻔한 살림살이에 목돈 마련하느라 동동거릴 자식들 생각에 선뜻 가시겠단 말씀을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에게 연락해 부랴부랴 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다시 한번 다녀오시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앞에 놓인 돈 봉투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계시던 아버지께서 슬며시 돌아앉아 버리셨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을 치고 올라왔습니다. 돌아앉은 아버지의 등은 왜 그리 작아 보이던지... 목 언저리까지 내려온 아버지의 허연 머리칼은 왜 또 그리 서글프던지...

아버지는 어제 하루 종일 바쁘셨습니다. 목욕도 하시고 이발도 하시고 구두도 닦으시고 손수 와이셔츠도 다리시고... 마치 소풍 가기 전 날 한없이 들뜬 철부지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에게도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예순 여섯 머리 허연 자식이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고 철부지처럼 들떠 계시는 모습에 왠지 죄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곁에 계신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늘 애간장이 타는 게 이 딸자식의 마음인데 하물며 고향땅 뒷산에 모셔놓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그동안 아버지는 또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셨을까 싶었습니다.

왜 진즉 아버지를 모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다녀오지 못했나 싶어 그저 죄송스러웠습니다. 입으로만 '아버지, 아버지' 하며 애타게 불렀을 뿐. 아버지의 가슴 저 깊은 곳에 진정 어떤 아픔과 서글픔이 차오르고 있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 김정혜
친정집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아버지의 낡은 슬리퍼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 김정혜
늘 앉아 TV를 보시던 아버지의 방석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방석 옆에 놓여진 아버지의 사탕을 한 손 가득 집어 보았습니다.

ⓒ 김정혜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간간이 읽으시던 책을 집어 들고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았습니다.

ⓒ 김정혜
순간. 서늘해지는 제 가슴으로 뜨거움이 차오릅니다. 아버지는 매일매일 무슨 생각을 하시며 하루를 보내셨는지 이제야 궁금합니다. 길어져 버린 담뱃재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그 하늘가엔 도대체 무엇이 있었던 건지 이제야 궁금합니다. 늘 우물거리는 사탕 말고 다른 건 도대체 무엇을 드시고 싶은 건지 이제야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집을 비우신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이렇게 아버지가 보고 싶은 건, 그저 허전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건 죄스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깊은 곳을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었다는 뼈저린 죄스러움 말입니다. ‘불효가 깊을수록 죄스러움은 더 큰 법이지’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오늘밤. 저를 잠 못 들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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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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