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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입양가족들.
ⓒ 김범태
지난 9일 충남 금산의 한 청소년수련원. 200여명의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표정으로 웃음꽃을 한껏 피우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가족 단위 참가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아침고요입양복지회(회장 한상경)가 주최한 '들꽃사랑 가족대회'에 자리를 같이 한 입양가족들. '입양! 사랑과 기쁨의 이중주'라는 주제로 이틀 동안 진행된 이번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작은 음악회, 레크리에이션, 풍선 날리기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마음껏 누렸다.

또 지역별 간담회, 부모교육 세미나 등의 순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도하기 위한 부모의 올바른 역할과 양육의 중요성을 공부하고, 입양문화 활성화 및 정착을 위한 정보교류와 경험담을 교환했다.

자리를 같이 한 입양부모들은 입양은 불임부부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등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입양가족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고통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를 입양한 후 가족의 사랑이 더욱 커졌다"며 많은 어려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보람과 소중한 기쁨을 나누었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한상경 박사(전 삼육대 원예학과 교수)는 "사람이 외로운 건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며 "입양은 고독한 어른을 위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경기도 가평군 축령산 기슭에 한국적 자연미와 정서를 그대로 담은 '아침고요수목원'을 맨손으로 일궈내 화제가 되었던 인물.

원예전문가에서 입양사업가로 발걸음을 옮긴 한 박사는 사회적 무관심과 소외 속에 정상적 양육을 포기당한 어린 생명들에게 가정의 따뜻한 사랑을 엮어주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 입양사업의 활성화를 통한 인간애 실천을 목표로 지난 2004년 9월 창립된 아침고요입양복지회는 입양홍보, 입양가정 지원, 입양 상담 및 안내사업 등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소중한 가정을 열어주고, 지원하는 일을 전개하고 있다.

회원들은 자신들을 '들꽃사랑 가족'이라고 부른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들꽃을 따뜻한 마음으로 허리 굽혀 살펴보듯,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서 기댈 곳을 찾고 있는 어린 영혼들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펴겠다는 마음에서다. 그 사이 들꽃사랑 가족들은 어느새 50여 가정으로 늘어났고, 위탁가정과 입양예정 가정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 한 입양가족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김범태
양부모, 친생부모, 아동의 알권리 위해 '공개입양' 장려

아침고요입양복지회는 특히 '공개입양'을 장려하고 있다. 이 단체가 이처럼 공개입양을 장려하는 이유는 입양의 3주역인 양부모와 친생부모, 아동이 각자의 상황에서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모임의 차혜정 총무는 "아무리 아픈 과거가 있더라도 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성숙해가게 된다"며 "입양아동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성장과정에서 입양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이 아이의 성숙에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생각만큼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며 "아이에게 입양했다는 말을 하기가 두렵다는 생각보다, 아이에게 입양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 때가 더 두렵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이번 모임에서 몇몇 입양부모들은 "나중에 아이가 자라면 친부모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래야 아이가 자신의 자존감을 확보하고, 건전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추구하며 혹시 모를 상처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은 국내입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공개입양을 장려하여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입양아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입양 자체가 자연스럽고 별스럽지 않은 일로 여겨질 때 입양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각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혈통중심의 전통적 사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민 모두가 '입양은 또 하나의 출생'과 같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입양을 건전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또 다른 사랑의 몸짓"

얼마 전 차인표, 신애라 부부와 안젤리나 졸리 등 연예계 스타들이 공개입양을 하면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소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입양은 일반사회에서 거리감 있는 이야기로 비쳐지고 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입양 아동수는 754명으로 해외입양 아동수 1294명을 합한 전체 입양아동수(2048명) 대비 36.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평균 국내입양 비율인 41.6%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여전히 국내입양보다 해외입양 비율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해외입양아 수출국'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들꽃사랑 가족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입양한 것은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많이 배웠거나, 혹은 풍족해서가 결코 아니"라며 "입양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또 다른 사랑의 몸짓이자 함께 기뻐하는 삶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아침고요입양복지회는 앞으로도 적극적인 입양홍보를 통하여 건강한 입양문화를 이루어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며, 입양가정들을 위한 정서적 지지와 함께, 입양아동들이 밝고 명랑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사랑과 행복의 징검다리를 놓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인식의 변화를 통해 평생 엄마, 아빠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수도 있었던 어린 생명들이 사랑의 향기가 피어나는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입양 가능"
'한 가정 한 아이 입양운동' 꿈꾸는 김문영, 박명희 부부의 입양일기

▲ "입양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김문영 씨 가족.

서울 방배동에 사는 김문영, 박명희 부부. 이들이 입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년생인 두 딸이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이 되던 해였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부모에게 버려진 불쌍한 삼남매를 알게 된 박 씨는 주저 없이 이 아이들을 찾아가 물었다.

"얘들아, 우리 집에 가서 살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그렇게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와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쌍둥이 남자아이가 이들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결코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출을 밥 먹듯 하는 엄마와 알코올중독에 찌들어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빠로 인해 아이들의 정서는 짓밟혀 있었다. 아이들은 친척집을 전전하였으나 도벽과 산만함으로 주변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으며 살고 있는 터였다.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한 탓인지 기본적인 생활예절은 물론, 제멋대로 행동하는 습관으로 부부의 가슴을 아프게 하길 여러 번. 하지만 부부는 그럴 때마다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버릇을 고쳐갔다.

라면과 불량식품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건강에 좋은 다양한 먹거리를 해주고, 양서를 읽히며, 약속을 실천했을 땐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면서 아이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다는 소문이 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게는 9년, 짧게는 3년 혹은 1년씩 부부는 2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개중에는 부모가 수배자도 있어 새벽에 경찰이 들이닥치기도 했고, 배은망덕한 일도 많이 겪어야 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이들의 사랑에 반응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에서 이 일은 자신들이 꼭 해야 할 일임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아이들이 수줍어하고, 천방지축이었던 녀석들이 어느덧 다소곳해지고, 경찰서를 단골손님처럼 들락거렸던 아이들이 어엿하게 학교를 졸업하던 순간의 일들이 부부에겐 친자식의 일처럼 행복하고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부부는 지금도 아들 요한이와 성민이 형제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요한이는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입양했고, 성민이는 세 살때 새 가족이 되었다. 작고 귀엽기만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부는 이 아이들이 더디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들만큼 예뻤다고 한다.

그렇게 귀엽기만 하던 요한이가 어느덧 아홉 살이 되었고, 성민이는 여섯 살이 되었다. 부부는 가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만약 저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건조했을까'하고 생각한다. 두 딸도 가슴으로 얻은 새로운 동생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보살핀다.

박씨는 이후 자신의 여동생 가정에 한 아이를 입양하도록 도왔으며, 관심을 보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입양을 권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한번은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진관 사장이 입양에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이를 성사시킨 일도 있었다.

지난 2~3년 사이 그녀를 통해 여덟 가정이 입양을 하면서 박씨는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적지 않다는 사실과 입양이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고 미소 짓는다.

이제 이들 부부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한 가정 한 아이 입양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 아이 정도는 키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며, 오늘도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아파하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우리의 가정을 활짝 열어주면 좋겠다는 것이 부부의 꿈이자 가장 큰 바람이다.

"입양은 희생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고, 감싸 안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입양입니다."

어느새 '입양 전도사'가 된 이들 부부의 목소리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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