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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상태 전 대광고 교목실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자리에서 교인으로서 사과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선, 일부 기독교인들의 단군상 파괴를 사죄드립니다. 또한 불교계의 길벗들에게도 사과드립니다. 가족의 동의 없이 교회에 재산을 헌납하는 행위에 따라 피해를 입은 분들께도 사과드립니다. '불신지옥'을 외치며 폭력적 전도행위를 일삼은 것에 대해서도 사과드립니다."

류상태 전 대광고 교목의 말이다. 류씨는 지난 11일 연세대 학생회관 3층 푸른샘에서 열린 강연회 '채플 강제는 예수를 배반했다'에서 한국기독교를 이같이 비판했다.

류씨가 강연한 연세대에서는 올해 채플 논란이 한창이다. 기독교 건학 이념으로 운영되는 연세대학교에서는 채플(예배)수업을 시행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모든 학생은 매주 1시간씩 열리는 이 수업을 4학기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연세대에서는 2005년 봄 학기 내내 엄수홍(기계공학 2)씨가 타종교인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 학생들을 무시한 강제 이수제도에 항의, 채플시간마다 대강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연합채플(채플 수강 학생이 노천극장에 모두 모여 치르는 예배) 논란이 시작됐다.

'연세대 채플의 자유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번 연합채플을 앞두고 '채플자율화운동선언'을 발표, 연합채플 보이콧을 학생들에게 촉구했다.

류씨의 강연은 연합채플과 다른 수업들이 한창이던 11일 오전 11시에 열렸다. 그래서인지 강연회장은 한산했으나 류씨의 목소리에는 노천극장의 연합채플 '말씀'에 못지않은 강단이 스며들어 있었다.

류상태 씨는 2004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강의석 사건'의 한 주역이다. 당시 대광고등학교 3학년이던 강씨가 예배참석의 선택권을 요구하며 시위와 단식을 벌이면서 미션 스쿨의 종교의식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을 때, 류씨는 강군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고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했다.

"채플 강제, 신성모독이자 불평등조약"

강연 서두에서 한국 개신교의 폭력적 행위를 사죄한 류상태 씨의 강연은 '강의석 사건'에 대한 회고로 이어졌다. "그 일로 대광고등학교가 못된 학교로 소문났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광고는 모범사학이고 깨끗한 학교입니다. 그 일 역시 재정 비리가 아닌 종교와 사상의 문제에서 비롯됐던 것입니다."

류씨는 처음에 볼 때는 굉장히 예의바르지만 대화가 시작되면 인격 대 인격으로서 당당하게 사람을 대하는 학생이었다고 강씨를 추억했다. 처음엔 류씨도 강씨에게 '못 이기는 체하고 예배에 참석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의석 군이 40일을 넘게 단식하며 뼈가 드러나는 것을 보며 기독교의 폭력적 역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이 훼손되었다는 생각에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류씨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류씨는 한국 주류 기독교계의 현재 모습을 우려했다.

"기독교의 독선과 배타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쓰나미나 카트리나를 두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동성애가 횡행하는 곳에 내려진 벌'이라고 이야기하는 주류 교단의 목사들을 보십시오."

류씨는 교리를 넘어 예수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며, 예수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했다.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적 전도행위는 예수를 배반한 것이며 채플 강요도 그러한 행위의 일환이라는 지적이다.

류씨는 "평준화된 고교와 달리 대학은 각자 선택해서 입학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저 '대학도 채플은 자율화하는 것이 좋을 텐데' 정도로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채플 강제는 불평등조약'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또한 류씨는 채플 강제가 도리어 신성 모독이라고 역설했다. 류씨는 "믿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입회시키고 학생들이 졸거나 잡담을 하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제도가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하라"고 연세대 교목실에 당부했다.

"채플, 폐지하라는 게 아니라 선택 자유 주라는 것"

채플자유화운동, 모두 승리하는 길로 나아가야

11일 열린 류상태 전 대광고 교목실장의 강연과 동시에 진행된 연합채플에서는 돌발 사건이 일어났다.

당초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등록금 '폭등'과 송도캠퍼스 건설에 항의하는 의미로 정창영 연세대 총장의 단상 입장에 맞춰 30초간의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그러나 정 총장은 올라오지 않았으며 연합채플 내내 계속된 레드카드 물결은 기독교인과 신학대학생들, 행사 연주를 맡은 음대생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에 몇몇 신과대 학생들은 학생회관 앞에 총학생회의 사과를 요구하는 자보를 붙였고, 총학생회는 퍼포먼스 준비의 미숙함과 기독교인들에게 상처를 준 점을 사과했다.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해 연세대 자유게시판에서 기독교인의 자존감과 종교 자유, 둘 모두를 위해서라도 채플이 자율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에 채플자율화를 새롭게 고민하고 있다는 의견, 채플에 큰 반감은 없었지만 대체교양강좌를 만드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 채플자율화에 찬성할 수는 없으나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필자는 채플자율화운동이 종교와 신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승리하는 길로 나아가기 바란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이제 첫걸음을 뗐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채플 강제에 대한 류씨의 비판은 이어졌다.

한 학생은 "연세대 당국과 교목실은 줄곧 채플은 '기독교의 이해' 수업과 함께 건학 이념을 발현하는 축이라고 설명해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류씨는 "학교에서 채플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주라는 것일 뿐”이라며 '종교의 이해' 과목조차 철학수업으로 대체할 기회를 주는 서강대의 사례를 들었다. "'기독교의 이해' 과목이 객관적으로 종교에 접근할 계기가 된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채플은 분명히 종교 '세레모니'입니다."

'연세대에서 채플이 1986년경부터 필수이수제도가 됐는데 혹시 그 배경에 대해 아는가'라는 질문도 나왔다.

류씨는 "정말 그렇습니까? 오히려 후퇴했던 거네요. 그런데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다만 1980년대 중반 어느 교계 지도자의 비리 사건으로 한국 교회가 위기의식을 느끼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정도는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신과대학교에 다닌다는 어느 학생은 "채플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데에는 학교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기부 등과 관련해 채플이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목사직을 반납한 뒤 노점상 일을 했던 것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류씨는 조금 멋쩍어하며 처음에 자신 있게 1년으로 잡아놓았던 계획이 4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다고 토로했다. '자리'를 둘러싼 텃세 등 노점을 하는 데 현실적 장애가 여럿 있었던 데다가 마침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연구원이 됨에 따라 생계 걱정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끝으로 류상태씨는 "대학교건, 사립학교건, 기독교 학교건, 정체성의 제1순위는 학교"라고 강조한 뒤 "연세대학교가 '학교'로서의 길을 가기 바란다"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 지난 11일 오전 11시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는 연합채플이 열렸다.
ⓒ 유뉴스

"자율화가 채플을 진리케 하리라"
연세대 채플자율화운동 선언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선교사업에 기원을 두고 있는 우리 연세대학교의 건학 이념은 기독교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은 우리 학교는 신학대학도, 기독교인만이 입학하고 재학하는 학교도 아니며,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건학 이념은 무종교인이나 타종교인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 만큼의 느슨하고 관대한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채플이수제도는 이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네 학기동안 채플을 이수해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졸업을 할 수 없다. 채플은 어떻게 주최하느냐에 따라 형식이 달라질 수 있지만 명백한 종교의례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채플이 단순한 대형교양강좌였다면 교목실에서 주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성경 구절의 낭독이나 찬송가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행사를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의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치루는 것은 다원주의와 인간의 자유 및 권리에 역행하는 것이며, 동시에 민주적 다원적 지표를 담아낸 현대 헌법에의 도전이기도 하다.

한국의 주류 기독교는 사람들이 가난과 독재에 억압받고 있을 때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현실 문제에서 눈을 돌렸고, 그 이면에서 어떤 교인들은 독재자의 조찬기도회를 여는 따위의 방식 등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사회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교회들이 들어서 있으나, 그들 교회는 신앙의 방향을 물질적 욕망으로 틀며 스스로 타락한지 오래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수두룩하나 예수처럼 살려는 사람은 드물고, 성전은 도무지 예수를 믿는지 기복신앙을 믿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이들로 채워진 아수라장으로 변질됐다.

그래도 대학의 기독교라면 시정잡배들의 기독교와는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길거리에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외치며 아무에게나 달라붙는 폭력적 전도를 일삼는 이 판국에, 연세대학교의 기독교 정신은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이고 한편으로는 코스모폴리탄적 소양을 담지하고 있다. 뿐더러 우리 학교에서,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특별히 채플의 강제이수제도가 유지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본의 대표적 미션 스쿨인 도시샤 대학교가 일찍이 채플을 자율화했으며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가 1886년 채플강제규정을 폐지한 것은 이들 학교의 관계자들이 기독교 정신이 부족한 탓에 건학 이념을 망각한 결과가 아니며, 일본이나 미국이 한국과 다른 별천지라서 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진정하고 견결한 건학 이념은 강제가 아닌 자율 속에서 피어오르는 법이며 이러한 진실은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다.

우리의 주장은 결코 채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어떤 학교에서든 특정 종교를 믿는 학생들끼리 모여 의식을 치룰 수 있는 법인데, 기독교 학교에서 채플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율화된 채플이 즐겁고 알차게 치러진다면, 교인이 아닌 학생도 청강을 하거나 이를 계기로 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건학 이념의 명분 하에 모든 학생들을 한데 묶어 특정종교의 행사에 입회토록 하는 제도를 반대할 뿐이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진리는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구절은 “자유가 우리를 진리케 하리라”는 자의식과 양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소극적 불만을 떨쳐내고 적극적인 비판에 나선다. 자율화가 채플을 진리케 하리라.

2006년 5월 연세대 채플의 자율화를 바라는 사람들 http://religionfreedom.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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