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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학년 친구들이 그리워하는 선생님 모습
ⓒ 장옥순
그 어느 해보다 말도 많았던 '스승의 날'을 보내는 오늘. 우리 학교도 학교교육계획을 수립할 때는 스승의 날을 휴업일로 결정했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생각하며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스승의 날을 뜻 깊게 하자는 교장 선생님의 깊은 뜻을 받아 들여서 등교하는 날로 했습니다. 이미 학교달력이나 게시판에 휴업일로 예고되어 있었지만 번복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승의 날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눈초리를 의식하여 위축된 교단의 모습, 전국의 학교들이 절반 이상 학교의 문을 닫은 오늘은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에 서 있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그 어느 해보다 숙연하고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무장하게 된 우리 학교 스승의 날 풍경을 스케치하는 내 마음은 행복함으로 충만하답니다.

휴업일을 번복하지 말자는 선생님들의 은근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등교를 결정하여
스승의 날 기념식을 준비하게 한 교장 선생님(최수성)의 깊은 뜻을 늦게나마 헤아리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계기교육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어버린 학교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 학교에서 실시한 스승의 날 계기교육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 장옥순
나는 아침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1학년 아이들에게 옛날 선생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습니다. 아직도 글자를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이 있으니 편지를 쓰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직원협의에 참석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낭독해 주시는 교육감 서한문, 교감 선생님의 사도헌장, 교무부장 선생님이 낭독하는 전남교사명, 새내기 선생님이 무명교사 예찬을 읽어가는 동안 잔잔하게 일어나던 감동의 물결로 숙연해진 교직원들. 선생님들의 용기를 북돋워주시며 선물까지 챙겨주시는 교장선생님의 마음 씀에 다시 한 번 감동을 했답니다. 날마다 고된 발을 소중히 하라시며 건네주시는 양말 선물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선생님들을 고무시킨 교장 선생님은 낮아짐을 다짐하는 '세족식'을 준비하게 하며 처음 해보는 낯선 행사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하신 겁니다. 유치원생부터 6학년에 이르기까지 전교생 140여 명이 참석한 행사장. 선생님들의 가슴에 꽃이 채워지고 학생회장의 편지글 낭독에 이어 선생님의 사랑과 손길이 더 필요한 어린이 중심으로 발 씻어주기 행사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고학년 아이들은 쑥스러움을 감추면서도 모두 함께 행복했습니다.

▲ 행복한 낮아짐
ⓒ 장옥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해보다 감동적인 날이었습니다. 처음 교단에 서던 다짐을 되새기며 사도헌장을 음미하고 무명교사 예찬으로 마음을 다잡은 오늘 행사는 얼마나 더 교단에 남을지 모르는 나머지 삶을 지켜주는 횃불이 되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스승의 날 행사가 아닐까요? 조그마한 제자의 발을 내 자식의 그것처럼 정성스럽게 씻어주며 마음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의 소중함!

우리 1학년 고은이는 행복한지 발을 씻겨주는 내내 물어봅니다.
"선생님, 왜 제 발을 씻어주세요?"
"응, 고은이를 사랑하니까 씻어주지."

▲ 아이들은 사랑과 정으로 자랍니다.
ⓒ 장옥순
미리 준비한 새 양말을 신겨주는 동안 늘 눈물이 많던 고은이가 행복하게 웃으며 환하던 모습, 늘 넘어지는 권영이의 발에 그처럼 상처가 많은 걸 처음 본 그 아픔을 잊지 않으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작고 미약하겠지만 마음으로 빌고 노력하노라면 그 아이들이 가는 길에 작은 안내자는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의 이름마저 쓰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림에다 내 이름을 써놓고 하늘땅만큼 사랑한다고 소리 지르던 영찬이, 내 얼굴보다 몇 배나 예쁜 얼굴을 그려놓은 하늘이의 그림을 친구들 그림 옆에 붙여놓고 한참 동안 행복했습니다. 오늘처럼 마음에 정이 넘쳐흘러서 가슴을 적시게 하는 날이 많아지도록 우리 아이들을 정으로 길러야겠습니다.

두 아이 발만 씻겨 주었다고 투덜거리는 유림이를 생각하니, 내일부터는 돌아가면서 씻겨주어야겠습니다. 그것도 제일 말썽부린 아이들부터 날마다 해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부자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니, 교단에 서 있는 동안 날마다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지난 시간이 참 아쉽습니다. 아이들의 키보다 더 낮아야 발을 씻겨줄 수 있으니 더 낮아져야 함을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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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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