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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2 TV ‘문화체험 오늘의 현장’ 꼭지.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당시(99년) TV 녹화화면 사진
ⓒ 정학윤
약 7~8여 년 전에, 문화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생활 속에 있는 문화현장을 찾아내고 이를 알리기 위하여 애쓰던 KBS2 TV ‘문화체험 오늘의 현장’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문화라 하면 고급문화와 예술문화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고차원적이고 일반과 괴리된 문화의 개념을 확장하여 ‘문화란 삶의 방식’이어서 ‘생활현장’이 곧 ‘문화현장’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기자가 지켜본 99년 내내, 충북 음성 원남면에 있는 ‘한길교회’에서 마을 전체 사람들이 바이올린을 배워서 ‘마을공연’을 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던지, 지하철역사 내의 성악공연 등을 취재한다던지, 소박하게 열리는 국악공연의 현장 등, 삶의 장소에서 뿜어내는 생활과 결합된 문화현장 등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특히나 99년 11월에 방영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공모전(조소)인 ‘우리들의 눈’은 대단했습니다. 한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는 그들이 자신들의 귀와 코를 만져가면서 ‘조소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던 것입니다.

이처럼 문화란 특정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가 문화주체라는 것과, 삶과 결합되어 생명력을 가진 문화현장들을 알리고, 그 의미들을 확산시키고자 했던 이 프로그램은 99년까지 뉴스직전의 시간대에 일일편성을 통하여 방영되다가 주간편성으로 전환되는 듯하더니 이내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치열한 시청율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가 버거웠을 겁니다. 이후 기자는 그런 생생한 프로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실 더 세련되고 현란한 물량공세로 치장된 TV프로그램들이 없었다고는 하지는 못할 것이나, ‘문화체험 오늘의 현장’에서 알려준 ‘자신을 문화주체와 창조자로서 인식해야 한다는’것. ‘문화의 현장이 갤러리나 극장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일상에서 시작된다는 것’등의 메시지들과는 왠지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아직도, KBS2 TV에서 방영되던 ‘문화체험 오늘의 현장’을 추억함은 그 프로그램이 가졌던 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세상은 반드시 진보하지 않는가 봅니다. 살아 숨쉬는 문화의 전도사였던 그의 출현을 다시 기다립니다.

KBS2 TV ‘문화체험 오늘의 현장’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기자의 가정이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당시(99년) TV 녹화화면
ⓒ 정학윤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오늘은 나무를 심는 날이었죠. 요즘은 꼭 식목일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태어났다던지 결혼기념일 같은 날에 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꿈을 심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는 것이겠죠?

오늘 첫 순서는 아이에게 꿈과 미래를 심어준 가족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대구 지산동 정밝음이네집. 밝음이는 요즘 찰흙 만들기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장난감 대신에 만들기 시작한 찰흙. 아이 장난으로 여기기에는 손가락 놀림이 능숙합니다. 흙을 조물락거리던 손끝을 따라 여우가 한 마리 만들어졌습니다.

- 그게 뭐야?
새가 파닥 파닥 거려요
- 그게 무슨 새야?
참새. 여우가 참새를 먹는 거야. 히히히

▲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TV 녹화화면 사진
ⓒ 정학윤
이렇게 하루하루 만들어낸 작품들이 집안 가구 위에 한 가득입니다. 밝음이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들. 밝음이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과 사람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가족들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밝음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가족들이 전시회를 열어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전시회는 밝음이의 솜씨만을 뽐내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원래 처음 이것을 생각할 적에는 아파트 주민들을 모아서 할 작정이었습니다. 폐쇄적인 아파트에서 이웃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아빠는 밝음이와 함께 밝음이가 직접 만든 포스터를 아파트 구석구석에 붙였습니다.


▲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밝음이가 만든 작품들 TV 녹화화면 사진
ⓒ 정학윤

▲ 밝음이의 작은 전시회. 밝음이가 만든 작품들 2 TV 녹화화면 사진
ⓒ 정학윤
"자! 잘라라(테이프 커팅)" "박수"

밝음이의 첫 전시회 예상외로 많은 관람객들이 모였습니다.

"애들아! 깨지니깐 만지지 말고 살살 구경해야돼"

작품을 살피는 어린 평론가들. 그 눈빛이 사뭇 진지합니다. 작품을 놓은 위치 하나 하나 작품 이름 하나까지도 세심한 신경을 쓴 덕분에 수준 높은 전시회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주워온 재봉틀도 전시대로는 일품입니다. 집안가구를 이용한 전시공간. 그리고 어린 손끝에서 빗어낸 작품들. 친구들과 이웃 주민들도 모두 만족해 합니다.

- 어떻게 보셨나요?
이웃 아줌마 : "음. 굉장히 깜찍하고 귀여워요. 그리고 애들이 어떻게 이런 동작이나 표정을 만들 수 있는지... 굉장히 신기하네요"

- 재밌어?
친구 : "밝음이가 만들었는데요.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 뭐가 제일 귀여워?
친구 : "여우가 토끼 물고 가는 거요"

아파트공간에서 만들어낸 작은 전시회 한 소녀에게 희망을. 이웃들에겐 함께 나누는 기쁨을 가져다주는 전시회입니다. / 99년 당시 TV에 방영된 내용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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