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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의 한 사립 고등학교가 학생의 폭력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은 폭행사건이 벌어진 이 학교의 전경이다.
ⓒ 강성관

광주광역시의 한 사립 고등학교가 학생의 폭행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어 물의를 빚고 있다. 무엇보다 교내에서 폭력을 휘두른 학생이 재단 이사장과 친인척 사이인 데다, 학교 측이 가해 학생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사건이 불거진 뒤, 피해 학생 학부모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 관련 내용의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을 당부했다. 경찰은 학교 조사내용을 토대로 재조사를 벌여 가해 학생에 대해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이 사건을 조사했던 학생부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각각 입건했다.

학교폭력 사건이 검찰까지 간 이유

20일 광주 서부경찰서와 해당 고등학교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24일 저녁 8시 30분경 이 학교 A군은 같은 반 학생 B군을 금속 재질의 대걸레 자루로 폭행했다. 사건 발생 1시간 전쯤 두 학생은 돈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B군이 A군의 뒤통수에 침을 뱉었고, 그뒤 A군이 모멸감을 느끼는 말을 했다. A군은 수업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쉬는 시간에 탁구를 치고 있던 B군의 머리와 얼굴을 약 10여 차례 집중적으로 때렸다.

이로 인해 B군은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고, 이후에도 폭행 후유증에 시달려 1개월 이상 신경외과 전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또 폭행 과정을 지켜보던 C군도 손가락 뼈를 다쳐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C군은 A군이 대걸레 자루를 휘두르면서 날카로운 쇠판(걸레를 고정시키는 장치)이 날라와 손가락 뼈를 다쳤다.

B군은 지난 2004년에도 학내에서 폭행 당해 눈을 크게 다쳐 대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군의 아버지 D(45)씨는 "A군은 우리 아들과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그 때의 일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런데도 우리 아들의 머리와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렸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 학생부장 E교사는 폭행사건을 목격한 10여 명의 학생들과 A군의 진술서 등을 토대로 지난 5월 8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A군에게 '교내 봉사활동 7일'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 피해 학생의 진술은 반영되지 못했다. E교사는 "B군의 진술을 받으려고 해도 부모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안 된다'며 입원해 있는 병원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D씨는 학교 측의 사건조사와 진행과정, 조치내용 등이 미덥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생부장이 교장의 지시를 받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계획적인 폭행을 우발적 사고로 처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쇠파이프로 머리 10차례'가 '막대기로 머리·몸 3~4차례'로 둔갑?

D씨의 주장에 따르면, E교사는 이 사건을 목격한 학생들의 진술서 중에서 A군에게 불리한 진술내용을 모조리 수정했다는 것이다. 특히 '쇠파이프로 머리를 10여 차례 넘게 때렸다'는 진술 내용을 '막대기로 머리와 몸을 서너차례 때렸다'는 식으로 진술서가 수정됐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실제로 폭행을 목격한 학생 10여 명은 E교사의 지시에 의해 적게는 한 차례에서 많게는 16차례에 걸쳐 진술서를 수정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학교 측은 당시 장면을 목격한 학생들의 최초 진술서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제출된 최종 진술서만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시교육청 조사 결과, 목격 학생들의 진술서는 문맥 뿐 아니라 사건 당일 A군이 사용한 폭행 도구의 재질(이에 대한 표현), 횟수·구타 부위 등도 수정된 것으로 일부 확인된 셈이다. 이는 물론 E교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3일 E교사에 대해 '증거인멸' 혐의를, 폭행 당사자인 A군에 대해서는 폭력혐의와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 청구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에 대한 영장 청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돼 현재는 불구속 수사 중이다. 감사를 벌인 광주시교육청은 E교사에 대해 '경고' 조치했다.

이와 관련, 사건 수사를 했던 광주 서부경찰서 한 관계자는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최초의 진술 내용이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며 "문맥이 틀려서 수정한 부분도 있지만 수정하면서 구타 횟수 등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축소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목격 학생들이 최초로 작성한 진술서를 보관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증거인멸 혐의가 있다고 본다"고 입건 배경을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A군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한 이유에 대해 "대걸레 자루가 비록알루미늄 재질이긴 하지만 걸레를 고정하는 '쇠판' 부분을 피해 학생 쪽으로 향하게 한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 감사실의 한 관계자도 "첫 진술과 비교한 결과 학생부장이 여러 차례 아이들의 진술을 수정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학생지도 차원에서 수정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내용이 뒤바뀐 것은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명백하게 축소하려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게 아니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고 밝혀 E교사의 사건 축소에 상당한 혐의를 두고 말했다.

학교 측 "문맥 흐름 안 좋아 고쳐쓴 것"

이에 대해 학교 측은 A군이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학교 측은 '교내 봉사활동 7일'이라는 징계 내용에 대해 "우리 학교에서는 가장 큰 중징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E교사는 "굉장히 황당하고 억울하다"며 "피해 학생도 가해 학생도 같은 제자인데 어떻게 그렇게 했겠냐"고 항변했다. 그는 "가해 학생이 이사장과 친인척 관계라는 것도 몰랐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아무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고 덧붙였다.

진술서 수정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채팅할 때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고 문맥, 띄어쓰기가 맞지 않아 수정한 것"이라며 "교장 선생님이 '글이 되겠느냐'고 해서 교육적 차원에서 고쳐쓰기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달라진 것(내용)은 없고 학생들마다 본 것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장 역시 "실수한 대목이 있을 수 있지만 고의로 조작, 축소하지는 않았다"며 "최초 진술서를 보관하지 않아 우리도 답답하다, 피해학생 학부모가 지나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재단 이사장과 가해 학생의 관계 때문에 학교 측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재단의 한 관계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피해 학생 아버지 D씨는 "우리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싫다면서 밤에 울면서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있는데 가해 학생은 웃으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느냐"며 "학교나 가해자가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도 없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흥분했다.

그는 "학교 측이 사건을 철저히 축소시키려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학생이라는 이유로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영장이 기각돼서는 안된다"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편, B군을 폭행한 A군은 재단 이사장 친형의 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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