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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광양경찰서 현직 경찰 간부가 미리 신고된 노조의 대규모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지역민들의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는 식의 '거짓말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해 빈축을 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일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이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건물에서 농성중인 가운데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온 가족들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정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 병력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남 광양경찰서 현직 경찰 간부가 미리 신고된 노조의 대규모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지역민들의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는 식의 '거짓말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해 빈축을 사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이같은 보도자료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인용해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광양경찰서가 이메일을 통해 배포한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미 공식 허가된 장소에서 민주노총 관계자 등이 집회를 열 계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를 '불법 집회'라고 못박고 사실 관계를 왜곡했다. 또한 집회에 대한 일방적 비난 목소리만 담아 '경찰이 여론공작과 여론몰이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보도자료는 경찰 홍보계가 아닌 광양시청 문화홍보과를 통해 기자들에게 배포돼 '경찰과 시청이 짜고 포스코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한 것'이라는 비난도 자초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 등이 물의를 일으킨 경찰 관계자 문책과 확인과정 없이 보도자료를 전달한 광양시청의 공개 사과 등을 요구하고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출처 불명 '건설노조 집회 비난' 자료... 경찰, 뒤늦게 작성사실 인정

광양시민 불법집회 우려의 목소리 높아
(중략)
강○○(48·상업·광양시 태인동)씨는 "지난 2004년에도 건설노조의 불법집회로 도로가 점거되어 시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느꼈는데 또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시민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41·회사원·광양시 중동)씨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와 태풍 에위니아로 피해가 극심해 모두 힘들어하고 있는 이때에 불법, 폭력시위가 이어진다면 포항에서와 같은 불법시위 반대집회가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략)- 문제의 보도자료 내용 중 일부 -


지난 20일 오후 전남 광양시청 출입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배포된 이 자료는 21일과 22일 양일간 열릴(20일 현재) 전남동부건설노조 집회를 '집중포우로 국가위기 상황'에서 '지역경제 전체가 흔들릴 위기'에 꼭 열어야 하느냐는 식으로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또한 두 명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 임의로 보도한 것과 관련해, 광양경찰서 측은 이 사건의 내용 자체를 부인해오다 전남동부건설노조 등이 광양시청에 항의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24일에야 뒤늦게 공식 시인했다.

이 자료를 직접 작성한 광양경찰서 강아무개 경무계장은 24일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 때문에 검문 검색이 강화되니까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잇따랐다"며 "이런 시민의견을 반영해 홍보용으로 자료를 작성해 배포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시청도 문제... 이걸 그대로 받아쓴 언론사는 뭐냐?"

▲ 광주전남지역 한 일간지는 21일 '건설노조 광양집회 명분없다 태풍피해... 시민들 거센 반발' 제목의 기사를 1면 톱 기사로 다루면서 경찰의 보도자료에 가상으로 등장하는 강모씨와 김모씨의 발언을 똑같거나, 조금 수정해 그대로 받아썼다.
ⓒ 오마이뉴스
이 사건 직후 광양시청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21일 권흥택 광양시 부시장은 건설노조와의 면담에서 "시청은 보도자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도 "출처 등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의 요청으로 배포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그는 "5공 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잘못을 시인했고, 노조는 책임자 처벌과 정정보도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광양시청은 24일자 <전남일보> 2면 하단 박스(6*6.5cm)에 광양시장 명의의 '전남동부와 경남서부지역 건설노조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공식 사과했다. 시장은 경찰 요청에 따라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과 관련해 사과했다. 그러나 24일 광양시청 문화홍보과 담당직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요청해서 보냈을 뿐"이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광주전남지역 유력 일간지 중 한 곳은 사실관계가 틀린 출처 미상의 보도자료 논조를 그대로 따라 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신문은 지난 21일자에 '건설노조 광양집회 명분없다... 태풍피해 지역경제 악영향, 시민들 거센 반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그러면서 광양서 경무계장이 가공한 강OO씨의 발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쓰고, 김OO씨의 발언은 앞부분만 약간 바꿔쓴 채 1면 톱기사에 그대로 인용 보도됐다.

이에 대해 기사를 작성한 김아무개 기자는 "시청 등에 보도자료 내용을 확인했고 건설노조에도 집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 등 모두 확인하고 기사화했다"며 "보도자료를 보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기사를 썼는데 뭐가 문제냐"고 되레 반문했다.

강모씨와 김모씨는 가상인물로 밝혀졌다고 해도 김 기자는 "강모씨, 김모씨가 실제 존재하는지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광양 지역언론의 한 기자는 "그런 보도자료를 보낸 경찰 잘못이 크지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사실관계도 틀린 내용을 그대로 베껴쓴 언론사는 뭐냐"며 "언론이 경찰의 여론작업에 휩쓸린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자는 "기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것도 1면 톱기사로 게재하면서…"라며 "경찰-행정기관-언론이 삼박자가 돼 여론몰이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민주노총 "광양경찰 조직적 여론공작"

▲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 등은 24일 오전 광양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서장 파면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경찰이 조직적으로 여론공작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 뉴시스 제공
이에 대해 전남동부건설노조,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등 노동계는 "광양경찰은 경무과장 등 여론공작, 직권남용의 책임을 물어 관련자를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전남동부건설노조 등은 24일 광양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정 중립을 지키면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할 공권력이 앞장서서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느낀다"며 "광양경찰은 포스코 자본의 나팔수이고 경비대냐"고 힐난한 뒤 광양경찰서장의 파면을 거듭 요구했다.

특히 노동계는 강아무개 경무계장의 노조 비난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등에 대해 경찰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더 답답해하고 있다. 실제 광양경찰서 과장급 한 간부는 노조 관계자들에게 언성을 높이며 "내가 지시해서 쓴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동부 건설노조 한 관계자는 "우리는 불법집회를 한 적이 없고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도 불법시위를 하는 집단으로 매도했다"면서 "수해복구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도 총파업을 하면서 피해복구 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이런 식으로 해주니 포스코 자본이 문제해결에 나서기나 하겠느냐"고 흥분했다.

이와 관련, 강아무개 경무계장은 '조직적 여론공작'이라는 비난에 대해 "노조의 주장일 뿐이다, 더 이상 할 말 없다"고 반론했다.

한편 전남동부건설노조는 지난 10일 파업출정식을 열고 전문건설업체의 성실한 교섭 등을 요구하는 집회 등을 광양시청과 광양제철 인근에서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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