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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 출범식에서 발표된 ‘입시교육의 실태 및 입시 제도에 대한 고등학생 의식 조사보고’에 따르면 성적이나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육체적 건강을 해친 적이 있다는 학생의 비율이 38.5%다.

또 성적, 입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는 학생이 32%다. 좌절감을 느끼거나 의욕상실에 빠진 적이 있다는 학생은 64.9%다. 성적, 입시 스트레스로 학교를 그만 두고 싶었던 학생이 45.6%, 가출 충동을 느꼈던 학생은 22.4%, 자살 충동을 느꼈던 학생은 20.2%, 실제로 자살을 기도했던 학생은 5%에 달한다.

자라나는 후대의 38.5%의 건강을 해치고, 64.9%를 좌절감에 빠뜨리고, 20.2%에게 자살충동을 느끼게 하는, 그리하여 결국에는 공동체 붕괴에까지 이르게 하는 살인교육, 망국교육의 실체가 드러났다.

▲ 2006.07.26.아이들살리기출범식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홍세화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
ⓒ 하재근
정부가 입시제도 개혁안으로 내놓은 2008년 입시안에 대해선, 학생들의 부담만 가중된다는 의견이 84.1%, 친구를 경쟁자로 내몬다는 학생이 80.6%로 압도적이었다. 정부의 사탕발림과는 달리 당사자인 학생은 누구보다도 정확히 진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교육개혁에 저항하는 전교조에게 공공의 적이라는 낙인찍기를 즐기는 정부는 학생들에게까지 낙인을 찍을 수 있을까.

학생들은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선 학교 정규수업이, 수능성적 향상을 위해선 과외와 EBS수능강좌가, 대학별 논술고사를 위해선 과외, 사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입시개혁으로 모든 것을 다해야 하는, 일명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힌 학생들의 현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여전히 2008년 입시안을 입시문제의 대안으로 밀어붙이려 하며, 각 대학은 대학별 학생선발의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입시개혁, 교육개혁을 어떻게 해도 결국은 살인교육, 망국교육이 될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승자독식 사회와 승자독식 입시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서열체제라는 엔진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이 대학서열체제에서 전리품 독식 승자가 되려는 경쟁이 바로 입시 경쟁이다. 경쟁 패배자에 대한 냉혹함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모든 가정이 생명력과 경제력을 총동원해 죽음을 불사한 경쟁에 뛰어든다.

우리 공동체는 아이들에게 이런 살인적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내가 전리품을 독식하기 위해 남을 밟아야 하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교육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영혼이 날로 황폐해지고 그 행태가 어른들의 그것을 닮아가는 것은,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는 살인적 무한경쟁 상황, 즉 ‘정글’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쟁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학교평가, 교사평가, 성과급차등지급 등을 통해 교육에 전면 경쟁체제를 도입하려 한다. 교원임용의 유연화와 학교운영방식의 유연화, 그리고 책무성 강화라는 교육개혁 기조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 즉 보다 강도 높은 경쟁이라는 지점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서열체제의 현실에서 그 경쟁은 결국 입시성적 경쟁이 될 것이며, 정부의 교육개혁 결과는 초중등 교육의 완전붕괴와 입시경쟁중심의 살인, 망국 교육 고착화가 될 것이다.

▲ 아이들살리기출범식의 각 교육주체 대표들
ⓒ 하재근
정부는 제발 현실을 돌아보라. 정부 관료와 청와대 정책가들의 인간성에 호소한다. 지금의 경쟁이 부족하단 말인가? 자살을 기도했던 학생이 5%다. 지금의 죽음만으론 모자란단 말인가? 아직도 피가 부족한가?

승자독식 사회, 승자독식 입시구조, 그 배후에 있는 대학서열체제라는 엔진을 부수지 않고는 그 어떤 초중등 교육개혁, 입시제도 개선도 무의미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2008년 입시안 같은 허황된 대안과 온갖 경쟁강요 시장화 교육개혁안들을 전면 폐기하고 일차적으로 국공립대 입시통합안부터 고민하라.

대학서열체제 혁파야말로 정부가 그렇게도 원하는 대학교육의 질 향상으로 가는 유일한 정도다. 서열체제 하에서의 특성화 구조 개혁은 공염불일 뿐이다. 대학서열체제는 학문의 역동적인 경쟁상황을 막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경쟁상황을 조장하려 애쓰는 정부가 한국 교육에서 학문적 경쟁상황을 막는 단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 대학서열체제로부터 애써 눈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무지 때문인가, 정부가 기득권들의 탐욕을 대리하기 때문인가.

이유가 무엇이든 정부의 빗나간 교육정책으로 지금 이순간도 우리 공동체의 후대는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려 있고, 그로 인한 죽음의 내음이 전 국토를 배회하고 있다. 대학서열체제가 존재하는 한 백약이 무효하다. 지금 당장 정책을 내놓기 어렵다면, 최소한 시장화 교육개혁을 중지하고 국공립대 입시 통합과 대학평준화를 위한 연구부터라도 먼저 시작하라. 진정한 교육대계는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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