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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처가에 맡겨두었던 둘째 지민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동안 지민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한시도 엄마품을 떠나지 않는 지민이를 한 달 넘게 돌보느라 장모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드디어 네 식구가 한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지민이가 집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육지에 계시던 친할머니 덕분입니다.

▲ 어머님이 가져오신 호박
ⓒ 홍용석
오늘(10일) 육지에서 어머님께서 오셨습니다. 올해 여든이신 연로하신 분이 저희 둘째를 돌봐주시러 멀리 제주까지 오셨습니다. 그 연세에 육지에서 멀리 손녀를 보러 오신 것만도 죄송하고 고마운데 어머님께서는 그냥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조그만 가방에 호박 몇 덩이하고 깻잎 고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로 허리가 많이 편찮으신 어머님은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십니다. 그런데도 항공사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가방 하나 가득 손수 키우신 반찬거리들을 가져오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어머님께서 가져오신 것들로 반찬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 어머님이 가져오신 풋고추
ⓒ 홍용석
어머님께서는 또 더덕도 몇 뿌리 가져오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예전부터 집 울타리 아래에 더덕을 심어오셨는데, 이번에 막내집에 오시면서 손수 키우신 더덕을 몇 뿌리 가져오셨습니다. 어머님께서 가져오신 더덕 중에 유난히 큰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것 같아보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큰 더덕을 캐셨어요?"
"지난 봄에 봐두었다가 이번에 올 때 캐왔다. 뿌리가 깊어서 파기가 힘이 들더라."

▲ 어머님이 가져오신 깻잎
ⓒ 홍용석
어머님께서는 지난 봄에 우연히 발견한 커다란 더덕을 일부러 캐지 않고 놔두셨다가 이번에 막내 주시려고 먼 제주까지 가지고 오셨습니다. 어머님의 사랑에 가슴이 찡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내가 식사준비를 마쳤습니다. 온 식구들이 저녁상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제일 먼저 어머님이 가져오신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서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풋고추맛이 옛날 어머님께서 상에 올려 주시던 그 때의 고추맛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저녁은 예전에 고향에서 어머님이 차려주시던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비웠습니다.

식사를 마치신 어머님은 고향 동네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마을 앞 누구는 여태 장가를 못 갔고… 큰길가 누구는 아직도 아이를 못 낳고… 다들 그다지 좋은 소식들은 아닙니다. 고향소식을 다 전하신 어머님은 이번에도 이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십니다.

▲ 지난 봄에 봐 두신 커다란 더덕
ⓒ 홍용석
"다들 어렵게 산다. 잘사는 사람들만 보지 말거라."

어머님은 이번에도 어렵게 사는 막내를 위로하십니다.

"예, 저희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좋은 날이 올겁니다."

저는 자신 있고 밝게 대답하였습니다. 어쩌면 저의 진심이었습니다. 지금은 좀 어렵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고향소식을 들은 후 소화도 시킬 겸 어머님이랑 아이들이랑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집을 나서다보니 어느새 저희 식구가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문을 나서는 아들의 표정이 무척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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