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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소 다로 외상(왼쪽)과 아베 신조 관방 장관.
ⓒ 연합뉴스

"핵을 둘러싼 논의와 핵무장을 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별개다."(아베 신조 총리의 11월 8일 국회 답변)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제기된 일본의 '핵무장론', 정확히 말하면 '핵무장 논의 필요론'이 한 달째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본격적인 핵무장 찬반 논의가 아니라, '논의를 해도 되는지'가 쟁점이 되고 있는 '이상한' 논란이다.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자민당 정조회장이 지난달 15일 "일본이 고수해온 비핵 3원칙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하자"고 제안한 이래 책임 있는 입장에서 "수정해야 한다"거나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사는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논쟁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논점으로 사라져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이 가세해 계속 군불을 지피고, 여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이 핵무장 하는 일은 없겠지만, 논의를 막아선 안 된다"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불씨를 살려가고 있다.

일본정부 '미국 핵 억지력에 의지가 최선' 이미 결론

일본 정부는 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 3원칙'을 1971년 국회 결의로 채택, 지금까지 '국시'로 삼아왔다. 이런 선택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으로서 강력한 국민 여론이 뒷받침하고 있다.

12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995년 시점에서 핵무장을 선택할 경우의 득실을 따져본 뒤, 미국의 핵 억지력에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1995년은 NPT 체제의 무기한 연장이 결정된 해다.

당시 방위청이 작성한 보고서는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①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파괴를 선도하게 되고 ②미국의 핵우산과 미일안보조약에 대한 불신 표명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으며 ③주변국에 자주국방의 길을 걷는 것으로 비쳐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핵무장의 역풍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비록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지만 일본의 핵무장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지금 '핵무장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속셈은 도대체 뭘까?

두 갈래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실제 핵무장론자들이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며 분위기를 잡아가는 것일 수 있다. 또 하나는 '논의' 자체가 가져올 다양한 정치적 효과를 노린 고도의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다.

플루토늄 생산이 허용된 유일한 비 핵보유국

'핵무장론'을 주도하고 있는 나카가와 정조회장이나 아소 외상은 보수적인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보수우익 노선을 걸어온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생각 깊숙한 곳에는 실제로 일본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신념이라면, 그들은 결과적으로 신념의 실현을 지체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다. 논의는 논의대로 진전시키기 못하면서,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경계심만 잔뜩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국제 핵질서에서 누리고 있는 특수한 기득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일본은 NPT체제가 인정하고 있는 5개 핵보유국 이외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재처리가 허용된 나라이다. 이는 1988년 발효된 미·일간 신원자력협정에 의해 가능하게 됐다.

미국이 왜 일본에게만 이런 특수한 지위를 부여했는지, 그 내막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80년대 초 '밀월관계'를 형성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총리 사이에서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원자폭탄 수 천 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확보

▲ 북핵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0월 19일 저녁 서울 한남동 외교통상부장관 관저에서 만난 한ㆍ미ㆍ일 외교장관들이 만찬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아소 다로 일본외상.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정택용

일본은 이후 플루토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원자력발전 계획을 세워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재처리공장을 세우는 한편, 유럽으로부터 플루토늄을 수입해왔다. 이렇게 해서 비축하게 된 플루토늄의 양은 현재 40t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3월 시운전을 시작한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도 점차 생산량을 늘려 2012년부터 연간 8t씩을 양산하는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원자탄 1개를 만드는데 필요한 플루토늄의 양이 5kg 정도라고 본다면 일본은 핵무기 수천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핵무장의 3대 조건은 ▲원료 ▲기술 ▲의지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기술과 의지가 있더라도 NPT체제에 의해 철저히 원료 확보를 통제 당하기 때문에 핵무장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은 원료가 있고, 기술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의지'인데, 이를 의심받게 되면 자연히 원료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야당들이 두 사람의 사퇴를 요구하고, 자민당 내에서조차 이들의 돌출행동을 못마땅해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들의 언행이 국제 핵질서에서 일본이 갖게 된 기득권마저 손상시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자민당 원로인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전 외상은 '내가 아는 한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핵무장론자는 한 사람도 없다. 찬성론자가 없기 때문에 핵무장론은 논쟁으로서 성립할 수 없으며 의미가 없다'고 분명한 선을 긋는다. 그는 레이건-야스히로 '거래'의 내막을 잘 알고 있을 사람이다. 그런 그의 눈에는 나카가와나 아소의 문제제기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모호한 아베 총리의 태도

문제는 아베 총리의 태도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리면 그만이다. 더 이상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꼭 토를 단다. "논의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아베 총리는 96년에 출간한 저서 '보수혁명 선언'에서 비핵 3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미국 함선은 현재 핵을 적재한 채 우리나라 항구에 당당히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은 지켜졌다. 우리는 핵과 관련해서 완전히 깨끗하다고 역대 내각은 말해왔다. 언뜻 성실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당치도 않은 위선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모호한 대응에도 '비핵 3원칙은 위선'이라는 의식이 근저에 깔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리로서 이를 직접 표현할 경우 어떤 국제적 파장을 몰고 올지 정도는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자꾸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이다.

핵무장론은 중국에 대한 압박?

일본이 이렇게 '핵무장론'의 불씨를 이어가는 것은 고도의 국제정치적 계산이라는 시각도 있다. '가상적국'인 중국을 겨냥한 '시위'와 '압박'의 성격이 강하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일정 한도 내에서의 논의는 묵인해주리라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독하게 마음 먹었으면 북한의 핵실험을 저지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결국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후 대북 제재 절차에서 중국의 자세에 대해서도 미·일은 의심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가할 수 있는 최대의 압력은 '일본의 핵무장 위협'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를 뻔히 들여다보고 있을 중국이 이를 얼마나 '압력'으로 느낄지는 미지수다.

일본의 '핵무장론'이 지금처럼 변죽만 울리는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논의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기에 전략의 의도가 숨어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의 실익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핵무장론'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일본에 엄중히 묻게 될 것이다. 지금 국제 핵질서 속에서 일본이 누리고 있는 특수한 지위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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