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6 난공불락 로체남벽 원정대가 현지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오마이뉴스> 특집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로체남벽은 8516M로 현재까지 이 곳을 등반한 산악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로체남벽 원정대의 현지 체류 기간은 2006년 10월 25일부터 2007년 1월 6일까지 입니다. <오마이뉴스>는 21일 보내온 1신을 시작으로 4~5일 간격으로 원정대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충직 대장을 비롯한 김형일, 성낙종, 안치영, 강기석, 최준열 대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 대사관 신고 - 남상정 주네팔 한국대사(가운데)에게 이충직 대장이 로체남벽 원정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끝은 이석우 월간 <사람과 산> 네팔주재기자.
ⓒ 한국산악재단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로체남벽원정대는 주네팔 한국대사관과 네팔정부 문화관광부의 브리핑과 입산절차 등 행정 절차를 11월6일 모두 마쳤다.

주네팔 한국대사인 남상정(55) 대사는 "한국원정대는 한국 언론에서는 세계최고라고 요란한데 히말라야 현지 언론과 외신에는 한국 산악관련소식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이 많다"고 지적했다. 비전문 산악인인 외교관이 현실을 냉철히 지적하는데 있어 산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우리 원정대는 다음날 남상정 대사 주최 만찬에 초대 받고 원정대에 관한 간략한 브리핑을 마쳤다. 현지 문화관광부에 로체남벽 원정대원은 총 6명으로 신고했으며 루트는 과거 슬로베니아의 토모체슨이 시도했던 중앙좌벽으로 정했다. 주요 신고내용은 루트와 캠프, 산소, 배터리 수량에 대한 것이었다. 6일 현재까지 아직 일본팀은 입산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지서 구입할 장비는 카투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며 모두 구했다. 원정시즌이 끝난 상황이어서 각 원정대에서 사용하던 상급 중고 장비들이 장비점에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대원들이 2달이라는 원정기간 동안 식성에 맞는 김치 100kg을 카트만두에서 제일 큰 한식당인 정원(옛 비원)의 이석우(52) 사장이 담가 주었다.

80년대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한 인연으로 네팔에 자리를 잡은 이석우 사장은 월간 <사람과 산> 네팔 주재기자이자 히말라야를 찾는 한국원정대원들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원정대원들을 위해 김치 100kg 담가준 든든한 후원자 이석우씨

▲ 일본의 다나베 오사무(45)대장과 우측에 부인, 이충직 대장 좌측에 일본대 센다(32) 부대장이 한국대가 체류하는 빌라에베레스트 호텔을 방문하여 로비에서 원정대 소개 브로슈어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 한국산악재단
6일 저녁은 일본팀이 초대한 식사모임이 있었다. 왕궁 정문 인근의 고도(古都)라는 일식집이었는데 우리측 전대원이 참가하고 일본은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참가했다. 일본 원정대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정중했다. 다나베 오사무(45) 대장은 우리 팀을 손님이라며 상석에 앉길 권유했고 이충직 대장은 연장자인 다나베 대장에게 상석을 극구 사양하며 양보했으나 다나베 대장이 손님이라며 완곡한 요청으로 끝내 앉게 되었다.

정갈한 음식이 순서대로 큰 접시에 나왔고 이를 덜어서 각자 먹는데 다나베 대장은 이충직 대장과 한국 대원들이 먼저 들도록 권했다. 일본 팀 전원은 반주로 나오는 맥주는 물론 심지어 물까지 먼저 마시길 권유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 일본팀에서 마무리하는 변(辯)을 이충직 대장에게 요청했고 이 대장은 한국팀 .일본팀 모두 남벽등정을 하고 무사하게 돌아가서 나중에 서울 인수봉 등반을 합동으로 하자고 인사말을 했다. 이에 다나베 대장과 대원은 흔쾌히 박수로 화답했다.

인사말이 끝나자 다나베 대장은 로체남벽 사진을 꺼내 보이면서 낙석과 눈사태로 주의할 구간, 난이도가 높은 구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다나베 대장은 베이스캠프 자리가 협소한 관계로 반씩 공정하게 나누어 갖자고 지도를 그려와서 우리 측에 제의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한국팀에 대한 일본팀의 이토록 자상한 배려와 예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게 특별히 없는데 말이다. 잘 사는 선진국 국민, 또는 '친절한 일본인'이라고 하기에는 그리 평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념과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산악인 고유한 정신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라 믿고 싶다.

다나베 대장 옆에는 동갑인 전형적인 일본 여성상인 부인이 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녀는 항상 메모를 했다. 우리의 모든 대화를 모두 기록했고, 또한 가끔씩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질문을 해서 자신의 기록에 추가했다. 다나베 대장은 항상 부인과 동행하는데 자신의 개인 비서역도 맡아서 하며, 대부분의 원정등반에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한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일본팀에는 별도의 베이스캠프 매니저가 있는데 곧 일본을 출발해서 나중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본팀 대원들의 특성은 대부분 산에 열정적으로 몰입해 있는 시기의 산악인들이었다. 직업을 보면 산장관리인, 등산가이드, 장비점 직원, 등산아카데미 강사 등등으로 장기간 원정을 떠나는 젊은 산악인의 직업 특성에 있어서 한국와 일본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 카트만두 공항-쌍발 전세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하여 대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 한국산악재단
국경 초월한 산악인의 우정...일본원정팀 타나베 대장과의 만남...

11월 7일, 우리가 묵었던 빌라 에베레스트 호텔을 출발, 현지 대행사 직원인 닥쿠르(28)의 안내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김형일 부대장은 일주일만에 일본팀이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꿈에서 보았다하고, 강기석 대원은 꿈에 베이스캠프 세우는데 모래바람이 많이 불더라는 말을 했다. 어떤 대원은 꿈속에서 유치원 앞을 지나는데 <고향의 봄> 노래가 들리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대원 각자가 많은 준비 과정을 거쳐 드디어 카라반을 하는 첫날이라 그런지 각자 정신적인 부담감이 크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가 보다.

아침 8시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는 11시에야 카트만두를 출발하여 12시경에 루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쌍발 14인승 전세기는 시트 천이 헤진 간이 낚시의자를 붙여 놓은 것처럼 의자에 승객과 짐이 섞여서 동승했다. 고개조차 들 수 없는 기내에 그래도 한껏 멋을 부려 치렁치렁한 네팔 전통 옷자락을 걸친 여승무원이 합장으로 '나마스테'하며 원정대를 맞는다. 여승무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서비스는 물 한 잔도 아닌 오직 이착륙 시 인사 한 마디 '나마스테'가 전부였다.

루크라 공항은 급경사 산비탈에 있으며, 활주로가 짧지만 착륙 시, 오르막 경사를 비행기가 활주하면서 속도를 자연스레 줄이도록 설계된 공항이다. 이륙 시는 계곡을 향한 내리막 활주로로 짧은 거리에도 가속도가 신속히 붙게 되어 있어 주어진 산악 지형을 지혜롭게 활용한 사례다.

현재의 네팔 시국을 대변하듯 공항주변은 중무장한 군인들이 전투태세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순식간에 인력시장이 형성되었다. 우리의 짐을 수송할 남녀노소의 포터들이 모여들어 인건비 흥정을 했다. 1인당 30킬로그램씩 짐무게를 달아서 배분을 했고, 남체바잘까지 하루에 6달러씩 왕복 3일 동안 인건비는 18달러를 주기로 했다. 포터들 대부분은 슬리퍼나 발가락이 나온 헤진 운동화를 신고 수송에 참여했다.

▲ 원정대 짐을 수송할 포터들이 짐 무게를 측정하며 대기하고 있다.
ⓒ 한국산악재단
이 포터들 중에는 나이 50 넘는 아저씨와 13살, 9살 된 왜소한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로체 챌린저 대원 같은 어린이는 30킬로그램을 이마에 지게 끈을 대고 혼자서 일어 설 수가 없어서 다른 포터가 옆에서 도와주어 간신히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질 못 한다.

원정대 행정을 맡아 현지 인원 고용을 담당하는 강기석 대원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아마도 그는 강기석 대원이 짐 수송을 만류할까 그런지 씩 웃더니 얼른 짐을 메고 이동한다. 9세인 어린 소년 포터에게 짐을 줄 수 없다고 하자 소년은 자신의 손으로 배를 가리키고 다시 입에다 갔다대며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 같은 인류애적인 측면에서는 연장자와 연소자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 한다. 당장의 얼마간의 수익에 비해 무릎과 허리 관절을 해친다면 결코 장래에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포터들이 짐을 30kg씩 수송하고 있다.
ⓒ 한국산악재단
포터들 몸에 무리가 가니 짐 무게를 줄여서 이동하고 일당을 줄이자고 하니 자신들의 관례를 무시한다며 반발 한다. 포터들의 하루하루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짐을 수송할 일거리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어찌 원정을 하는 우리의 관점으로 볼 수 있으랴? 그러나 히말라야 오지를 여행으로 찾는 외국인들은 자신들이 고용하는 포터들인 세르파족의 생계와 열악한 직업 인권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난공불락 로체 원정대 홈페이지 : www.invincible.or.kr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