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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과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결국 회담 재개 일정을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사진은 지난 2005년 7월 26일김계관 북한측 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가 1단계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전수영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과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결국 회담 재개 일정을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사전접촉 형식의 이번 회동에서 양측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 2일 북·미·중 베이징 회동에서 전격적인 6자회담 재개 합의 발표로 부풀어올랐던 북핵문제의 대화 해결에 대한 기대감은 다시 바람이 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조속한 협의 재개를 통해 진전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당초 예정했던 12월 초반 개최가 어려워지고, 이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휴가가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북핵문제는 상당 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북·미·중 협의는 28~29일 합쳐 약 15시간에 걸쳐 마라톤 회의로 이어졌다. 중국이 자리를 주선했지만 북·미 간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도중에 자리를 피해줘 양자접촉과 3자접촉을 병행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핵 포기 로드맵의 실천 요구하는 미국

회담의 쟁점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갖가지 보도가 난무하고 있지만 대체로 '추론' 수준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회담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상식 선의 설명만 하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 정부에 회담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차관보가 30일 서울에서 예정됐던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과의 조찬 약속도 취소하고 곧바로 귀국한 것은 미국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국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6자회담은 2005년 합의된 '9·19 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입장에서 협의에 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게서 상황을 핵실험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물론, 핵개발 프로그램 포기를 위한 로드맵(road map)의 구체적 실천의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힐 차관보는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직전 워싱턴에서 가진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 측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진심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 회담 테이블로 돌아갔을 때 될 수 있으면 빨리 비핵화 약속을 얻어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주목되는 '남·북·미 정상 간 종전선언 공동서명' 발언

▲ 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이에 대해 북한은 무엇보다도 '핵 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며 최대한 '몸값'을 높이려는 자세로 나왔을 것이다. '9·19 성명'에 규정된 핵 포기의 '대가'보다 더 많은 보상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실험 이전부터 6자회담에 나오는 조건으로 삼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동결계좌 해제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려 했을 것이다.

양측이 이렇게 표면적으로 내세운 입장을 고수했다면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핵 보유국 인정 여부'라는 입구에서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의가 장시간 계속된 것을 보면 양측이 뭔가 구체적인 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 안이 무엇인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정확히 드러나겠지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언급했다는 '남·북·미 정상간 종전선언 공동서명'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핵실험까지 마친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일거에 포기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과 경제재건을 일시에 주는 포괄적 타결안으로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북·미 간 적대관계의 종식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이에 대한 구체안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을 낳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비중과 역할이다. 중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북·미 간 중재에 나선 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자세다. 지난해 '9·19 성명'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중국은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처럼 전면적으로 북·미 간 중재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힐 차관보가 지난 20~21일 베이징을 방문한 지 1주일 만에 다시 베이징으로 날아간 것은 중국의 중재역할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다. 힐 차관보는 20~21일 방문 때도 김계관 부상과의 회동을 기대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은 1주일 만에 북한을 설득해 기어이 김 부상을 베이징으로 불러냈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유엔안보리의 신속한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한 데 이어, 지난달 19일에는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평양에 특사로 보내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일단 저지시켰다. 이어 11월 초 힐 차관보과 김계관 부상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6자회담 재개 합의를 이끌어냈다.

커지는 중국 의존도

▲ 중국의 달라진 외교행보는 후진타오 주석 체제의 안정화와 함께 뚜렷해지고 있는 미·중 관계의 호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 AP / 연합뉴스
이 같은 중국의 달라진 외교행보는 후진타오 주석 체제의 안정화와 함께 뚜렷해지고 있는 미·중 관계의 호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4월 또 다시 미국을 공식 방문하는 등 대미관계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후 주석과 부시 대통령은 최근 전화를 통해서도 외교 현안에 대해 수시로 논의하는 일이 잦아졌다. 힐 차관보가 베이징에 가 있던 지난 27일에도 양 정상은 전화통화를 했다. 중국은 북핵문제에 있어서 미국과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대외무역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론 중국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핵 포기 요구에 북한이 끝끝내 버틴다면 중국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현 국제관계의 지형을 볼 때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현 단계는 중국이 북·미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통해 문제해결의 길을 찾아나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가 29일 회담을 마친 뒤 발표에서 "3개국 대표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6자회담을 개최하고, 적극적인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굳이 '합의'를 강조한 것은 중국 측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6자회담과 북핵문제 향방의 열쇠는 확실히 중국의 손에 들어갔다. 앞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한국과 일본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베이징으로 날아가 3자회담장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북핵 협상구도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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