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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제일중고등학교(1974년 개교)는 3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대전 지역 야학의 산증인입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대전지역의 청소년노동자들과 성인들에게 검정고시과정을 교육해 왔습니다. 그동안 약 3000여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했습니다.

학사 재건축 완공, 거북이샘(손재용 교감) 뒤집어지다

▲ BBS 대전제일중고등학교 전경
ⓒ 김철호

대전제일중고등학교는 1980년대 이래 대전 용전동 시유지에 조립식 무허가 가건물에서 공부를 해 왔습니다. 오래세월이 지나는 동안 학사는 낡아서 여름이면 비가 새고 겨울에는 추위에 떠는 등 고생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대전시에서는 시유지사용을 연장해 주지 않는 바람에 새롭게 학사를 건축할 수도 없었습니다. 특히 화장실이 낡은 ‘푸세식’인데다가가 남녀 공용이라서 이만저만 불편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전시는 시유지는 내어 놓으라 난리이지요. 낡은 학사를 재건축하거나 새로 짓기도 어렵지요. 학생이나 샘들이나 모두가 체념한 채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말만 무성하던 학사 재건축이 시작되고 이제는 새롭고 말끔한 모습으로 단장되었습니다.

학사 재건축을 마치는 날, 대전야학의 터줏대감 손재용교감은(한남대 사회복지과)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지요. 그동안 때때로 시비도 걸고 함께 고민하기도 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야학을 떠나면서, 이제는 새로운 교사 충원도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학사를 재건축동안 학교를 떠난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깊어졌습니다. 이즈음에 오랜 숙원이 해결되었으니 그 기쁨 또한 컸겠지요.

▲ 말끔하게 단장 된 교실
ⓒ 김철호

▲ 악명 높았던 옛 화장실을 회상하며, "여기가 어디야"
ⓒ 김철호

낡을 대로 낡은 학사는 여름에는 덥고 지저분하며, 겨울에는 춥고 스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화장실은 귀신이라도 나올 듯 으슥하기만 했습니다.

▲ 재건축 완공 기념식
ⓒ 김철호

관료주의 행태..."야학은 더 이상 청소년시설이 아니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1990년대부터 야학에 재정지원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올 6월 느닷없이 2007년부터 야학보조금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야학생 중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이 턱없이 낮아진 상황에서는 더 이상 청소년육성기금으로 야학을 지원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사실 요즈음에 이르러 대다수 야학생들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40대 이상의 중년층들입니다. 또한 한글을 배우려는 노인층들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야학생의 대부분은 어려운 경제생활가운데 힘겹게 학업을 계속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학이 학생들에게 수업료나 교재비를 걷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야학들은 교사들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털거나 후원금을 모아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결국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여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야학운영자금 지원중단은 수만 명의 야학생들의 미래의 희망을 짓밟고 빼앗는 어이없는 관료주의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새 길 새희망의 기쁨(민정기씨)
ⓒ 김철호

2000년대 들어 야학생구성은 변화를 보여 왔습니다. 대전제일중고등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민정기씨(29세)는 올해 검정고시를 마치고 꿈에도 그리던 대학(대덕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야학에는 민정기씨 보다 훨씬 더 많은 4-50대만학도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이유로 ‘탈학교’한 청소년들 중 일부는 고비용의 학원이나 대안학교를 엄두조차 낼 수 없어 야학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대전제일중고등학교 한글 반에는 캄보디아출신 국제결혼이주여성이 어르신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태균이’도 학원대신 야학을 찾아 국어, 산수, 과학을 공부합니다.

이렇게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이 야학에서 희망을 찾고 미래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설계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저소득소외계층의 배움터이자 희망터인 야학을 외면하는 정부정책은 이 땅의 저소득소외계층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잔인하고 치졸한 폭력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도 여전히 야학은 살아 있습니다

▲ 뒤집어지는 거부기 샘(대전제일중고등학교 식구들)
ⓒ 김철호

시대가 변해도 우리 주변에 여전히 야학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풋내기 대학생입니다. 야학생 역시 어린 동생들이 줄기는 했지만 형, 누나 또는 부모님연배의 학생들입니다. 도리어 요즈음은 국제결혼이주여성이나 그들의 자녀들, 사교육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의 어린학생들, 한글을 익히려는 어르신 등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야학은 이들에게 번듯한 졸업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야학은 서로서로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을 배울 뿐만 아니라, 여럿이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학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엔조이에도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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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와 불평등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다. 필자는 희년빚탕감 상담활동가로서 '생명,공동체,섬김,나눔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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