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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물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 예비명단 35개가 열거되어 있다. 그 땅과 역사만큼이나 신청할 목록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자연경관에서 역사유적지에 이르는 이 명단에는 고조선 문화권인 랴오닝성 우하량(牛河梁)유적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무형문화재를 일컫는 ‘비물질문화유산’을 클릭해 들어가면, 국가 목록 민속 분야 1순위에 춘절을 비롯한 청명절, 단오절, 칠석절, 중추절 등의 절기문화가 나열되어 있다. 이밖에도 의학 분야에서는 침과 뜸 등의 동양의학이 최우선 순위로 올라있다.

2005년 11월 강릉단오제가 그 문화적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2004년, 한국이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언론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흥분했다. 한국의 문화약탈이라는 분노에 찬 글들로 언론이 도배되었다. 만약 2천년 역사의 단오절이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이는 중국의 수치이며 중화민족 감정상 절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격분하였다.

@BRI@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던 무형문화 분야에서 한국에 일격을 당한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 대응에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을 시작하였다. 바로 한 달 뒤인 2005년12월22일, 중국 국무원은 문화유산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와 등록을 선포하였고,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문화유산일’ 제정을 결정하였다. 매년 6월 둘째 주 토요일을 문화유산일로 지정한 중국은 2006년부터 TV와 모든 언론을 동원한 전국적인 행사를 하고 있다. 침과 뜸 등의 동양의학과 춘절, 중추절 등 한국과 관계된 목록들이 최우선 순위로 올라있는 것은 바로 한국에 앞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해야만 한다는 여론의 반영이다.

농경사회에서 계절의 변화는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는 모든 일들이 음력 절기에 따라 이루어지면서 1년을 24절기로 나눈 음력 절기는 한 사회의 생산과 소비, 공동체의 문화를 결정하였다. 이 음력(陰曆)을 중국에서는 농력(農曆)이라고 부르고 있다. 농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 음력 역법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대체로 기원전 104년 한무제(漢武帝) 시기에 제정된 태초력(太初曆)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음력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본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는 수확의 풍성을 기원하는 단오와 추석이었다. 또한 새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축원의례로 설과 정월대보름이 있다. 설날을 비롯하여 단오, 추석 등의 절기문화는 중국에서 발원하여 동아시아 문화권 여러 나라들이 함께 공유해온 보편성을 지닌 생활 밀착형 문화이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다. 그래서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단오(端午)’의 단(端)은 옛말에서 초(初)를 의미하였으며, 초오(初五)는 단오(端五)라고 쓰기도 하였다. 또 오월(五月)은 흔히 오월(午月)이라고도 했다. 이는 ‘단오’라는 의미 역시 5월 초5일 날짜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의 고유명사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단오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초나라 문인 굴원(屈原, BC 340-277)이 진나라에 망한 조국을 애통해하며 강에 투신하자 백성들이 굴원의 시신이 물고기 밥이 되지 않도록 강에 물고기 밥을 뿌려주며 추모한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현재 남아있는 풍습으로는 용모양의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달리는 용선 경주와 밥을 나뭇잎에 싸서 찐 종자(粽子)를 먹는 정도가 보편화되어 있는 풍속이다.

2004년 당시 중국 언론은 단오절이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에 대해 분분한 의견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중국 고유의 문화를 한국이 약탈한 것이므로 등재될 수 없다는 분기에 찬 글들이었지만, 그중에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역사적 가치성, 완전성, 진실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점에서 한국은 이미 강릉단오제를 1967년부터 국가중요문화유산 제13호로 제정하여 보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창적 문화로 이루어진 성대한 경축행사가 해마다 발전하여 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민족 절기로 자리 잡았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단오절은 중국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이미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문화로 융합되어 진실되고 완전한 문화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어 신청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표명한 것이다.

이 글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매우 많다. 중국에서 ‘비물질문화’라 칭해지는 무형 문화 가운데는 한국의 문화로 정착된 것들이 상당수 있어 앞으로 이 무형문화의 선점을 두고 문화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문화를 둘러싼 이 갈등은 고구려 문제나 영토 문제 못지않은 힘든 싸움이다. 그렇지만 문화란 교류와 계승 속에서 변화 발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편 만의 일방적인 전유물이 될 수 없고, 누가 ‘원조’인가하는 논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 춘절에 ‘복(福)’자를 집 대문에 거꾸로 부치는 풍속이 있다. ‘복이 왔다(到福)’의 발음과 ‘복자가 거꾸로 되었다(倒福)’의 발음이 ‘따오푸’로 같기 때문이다.
ⓒ 김성남


물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지만 중국의 춘절이나 중추절이 세계 무형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우리 역시 분개하며 정부의 무능을 탓할 것이다. 하지만 춘절이 그들만의 독창적 가치와 전승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분개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설날이 고유한 문화적 독창성을 갖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고, 있다면 설날의 별도 등재도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문제는 설날에 우리만의 독창적 문화와 풍속이 얼마나 계승되고 있는가를 염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은 한자와 음력 달력을 공통으로 사용하였고, 불교와 유교 등의 사상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문화란 역사유적지나 유물처럼 정지되어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그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 발전되고, 혹은 소멸하기도 하면서 그 공동체만의 독특한 문화로 형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더구나 24절기를 기본으로 한 절기 문화는 농경사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변화 발전하여 각 지역마다의 고유한 문화로 정착되었다.

이는 당연히 그 민족 고유의 문화인 것이다. 24절기의 기원이 중국이니, 각 나라의 절기 문화가 모두 중국 것이라는 유아적 발상을 거두고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성숙함이 필요할 때이다.

#세계문화유산#중국#설날#춘절#단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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