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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이전에 의회가 이라크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내가 대통령이 되어 전쟁을 끝장내겠다."
"부시 대통령이 90일 이내에 이라크 주둔 미군병력을 재배치 하지 않을 경우 의회에서 전쟁승인을 취소하겠다."

▲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지난달 19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앤런 대학에서 타운홀 스타일의 행사를 갖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이번 달 초 9명의 민주당 대선 경선자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인 민주당 전국위원회 동계 회의와 최근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밝힌 이라크전에 대한 입장이다.

그런데 힐러리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기한까지 제시하면서 단호하고 호기있게 발언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이라크전 찬성 전력과 관련해서는 모른체 하거나 발뺌성 발언을 계속하고 있어 그의 열성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측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해말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찬성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당시의 결정을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언급하여 측근들과 지지자들을 크게 낙심시킨 바 있다.

힐러리가 이라크전 찬성 전력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이같은 태도는 최근들어 그의 계속된 이라크 강강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동료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야유와 냉소를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힐러리가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이라크전을 끝장내겠다"고 한 것은 우선적으로 민주당내 주요 인사들이 자신의 이라크 전 입장을 의혹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대한 대응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힐러리의 가장 강력한 맞수인 오바마와 에드워즈는 힐러리의 이라크전 끝장 발언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대신, 그의 이라크전 찬성 전력과 당내 강경 반전여론에 느슨한 입장을 취해온 데 대해서는 즉각 뼈있는 발언을 했다.

배럭 오바마 의원은 힐러리 클린턴이 처음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을 암시하려는 듯 2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처음부터"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 왔음을 두 차례나 상기시켰다. 특히 힐러리와 마찬가지로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찬성표를 던진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입장은 힐러리와 크게 대조되었다. 그는 자신의 찬성 결정이 "실수였다"고 토로하면서 "전쟁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배반 행위"라고 강조했다.

힐러리의 참모들은 힐러리에게 내년 봄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당내 이라크전 반대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시의 입장이 실수였음을 인정할 것을 수차례 요구해 왔지만 힐러리는 그때마다 거부해 왔다.

"거짓으로 사과하기 보다 지지 잃는 길 택하겠다"

'사과하지 않겠다'는 힐러리의 입장은 그녀의 선거캠프 내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이 같은 입장이 힐러리의 경선가도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측도 있다. 힐러리의 몇몇 참모들은 민주당 내에서 강경 반전여론이 얼마나 지속될 지, 이로 인하여 힐러리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게 될지에 대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예비경선을 11개월 앞둔 현 시점에서 이라크전 반전 정서는 힐러리의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이 되고있다는 것이고, 이때문에 측근들과 당내 주요 인사들은 물론 기부자들도 힐러리가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힐러리는 지난 17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표면적으로 배럭 오바마와 존 에드워즈를 겨냥하여 "유권자들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이라크전 찬성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찬성투표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라면 그들이 투표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면서 "거짓으로 사과하기보다는 차라리 유권자의 지지를 잃는 길을 택하겠다"고 더욱 분명한 메시지로 사과 주장에 대응했다.

힐러리는 현재 이라크전에 대한 재정 지원은 반대하지 않지만 미군의 이라크전 증파에 대한 반대 법안을 상원에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그녀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새로 올린 비디오에서 90일 이내에 이라크 주재 미군병력을 재배치할 것을 부시 행정부에 요구하면서 요구대로 하지 않을 경우 의회에서 전쟁승인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이처럼 힐러리가 이라크전에 대해 나름대로 할말은 하면서도 지지자들의 요구에 반하여 이라크 침공에 찬성표를 던진 사실에 대해 끝내 사과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힐러리의 한 참모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이라크전 (찬성)으로 인해 곤경을 겪고 있지만 이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한 민주당 후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녀는 강건한 이미지를 유지할 것이며 이러한 이미지가 2008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이미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자신도 이라크전 찬성에 대한 사과는 2000년 대선 당시의 앨 고어나 2004년 대선 당시의 존 케리, 1990년대에 자신이나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 등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우유부단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 분석가들의 전언이다.

'결단력 있는 지도자' 이미지 얻기 위한 전략?

@BRI@힐러리는 사석에서 고어나 케리가 국가안보문제에 있어서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인식시키지 못한 것이 대선패배의 한 원인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굳건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힐러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녀의 지지자들도 십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내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민주당원들이 힐러리를 강하고 굳은 이미지로 보고 있으며, 이 이미지는 최초의 여성 군통수권자가 되고자 하는 힐러리에 대한 지지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라크전 찬성에 대한 섣부른 사과는 이 이미지를 허물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민주당원들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힐러리가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만은 그다지 강경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많은 민주당원들이 이라크전에 반대하고 이라크 철수시한 설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힐러리는 군대증파에는 반대하면서도 '즉각 철수는 안된다'며 철수시한 설정에는 반대하고 있다.

2004년 대선에서 케리의 자문역이었던 로버트 쉬럼은 "힐러리가 '이라크전 찬성은 내 실수였다, 당시의 정보조작으로 나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잘못 판단했다'라는 말을 왜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힐러리가 전통적인 민주당의 입장과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의 민주당은 이라크전 반전 정서가 매우 강하며 이라크전에 대해 변화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캠프 내에서도 사과문제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었지만 결국 작년 12월 힐러리가 이에 대해 단호하게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 논의는 수그러드는 듯 했다. 힐러리는 곧바로 NBC '투데이쇼'에 출연해서도 상원의 이라크 결의안에 대해 다시 찬성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정치분석가들은 힐러리의 '무 사과' 입장 고수를 정치적으로 '전부 아니면 전무' (all or nothing)식 도박으로 보는 측도 있다. 힐러리가 지난 대선에서 케리가 이라크전 찬성에 사과하며 우왕좌왕 태도로 이미지를 구긴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은데다, 기왕에 형성된 자신의 강경 이미지로 정면승부를 걸 심산이라는 것이다.

힐러리의 이같은 태도를 높이 사고 있는 측들은 힐러리가 현재의 이라크전 입장으로 인해 예비선거에서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지만, 예비선거를 통과하여 민주당 대선후보로 본선에 나갈 경우 무소속이나 공화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는 데 유리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힐러리와 대비되는 인물로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존 맥케인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같은 경우,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현재의 이라크전 계획을 옹호하고 있지만 본선에서는 이로 인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과 거부 근본이유는 '행정권 존중'에 대한 신념 때문"

한편 힐러리가 이처럼 당내의 비난과 예비경선에서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과를 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다른데서 찾고 있는 측도 있다.

즉 힐러리의 지도력과 국가안보에 대한 견해는 백악관 안주인으로 있던 8년 동안 주로 형성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힐러리는 행정권에 대한 의회의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회의 군 통수권 침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모들에 따르면 힐러리는 2002년 부시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군사정보에 기초해서 이라크전을 결정했다고 믿고 찬성투표를 했으며,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겠지만 대통령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대통령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책임감을 느끼며 행정권을 행사할 때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어쨌든 힐러리는 '이라크 전비 재정지원 찬성, 즉시 철군 반대'라는 종래의 이라크전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라크전 찬성 전력을 더해 공화당의 보수층 표심을 갉아내려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힐러리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전쟁을 끝장내겠다'는 선언으로 진보층을 달래는 양수겸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년 초 대선후보 예비경선과 때를 맞추어 이라크 사태가 현재보다 더욱 악화되어 반전분위기가 비등점에 이르렀을 경우, 힐러리가 이라크 정책에 대한 현재의 줄타기 전략을 고수하게 될 지 의문이다.

최근의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63%가 내년까지 미군의 전면철수를 주장했고, CBS 여론조사에서는 10명중 7명이 이라크전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반전여론이 점점 세를 더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라크 사태가 심화될 경우 어느 시점에서 과거 월남전 반전 분위기와 버금갈 만한 상황으로 진전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 영국이 이라크전에서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밝힌 터여서 그렇찮아도 느슨한 동맹국 체제가 와해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 반전 분위기는 더욱 폭넓게 확산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힐러리가 내년초 예비선거에서 다행히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본선에서 지지층으로부터 이라크전 입장을 수정하라는 요구와 함께 이라크전 찬성 전력을 사과하라는 거센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작년 중간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라크전이 다시 최대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본선에서 전쟁을 주도한 공화당 후보는 물론이고 이에 동조 찬성한 민주당 후보에게까지 '책임'을 묻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에도 송고했습니다. 기사 작성에 <코리아위클리> 마이애미 안태형 주재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힐러리#클린턴#이라크전#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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