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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 정하지 못한 호남민심, 어디로 갈까.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정당의 연설회에 참석한 광주시민들이 연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강성관

"무주공산(無主空山). 마음 둘 곳이 없다. 여기는 보기 싫고 저쪽은 아직 '정(情)'까지는 못 주겠고…."

'2007 대선'을 9개월 앞둔 시점에서, 호남인들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서 돌아선 호남 민심이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에게 쏠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 '눈길'이 '마음'까지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생겼다. 손학규의 탈당이다.

역대 대선에서 이른바 '전략적 선택'으로, '표 몰아주기' 투표 행태를 이어온 호남이 전례 없이 고심하고 있다. '이명박·손학규·정동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표류하고 있는 호남 민심을 들여다 봤다.

[이명박] 지지도 1위..."본선에선 글쎄?"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과 소속 대선주자들에 대한 호남민심은 전에 없이 '관대'하다. 범여권이 여론조사에서 맥을 못추는 사이 한나라당 주자들에 대한 호남지역 지지율을 합치면 50%대를 육박한다. 당 지지도 역시 '두 자릿수' 지지율 가능성에 상기된 표정이다.

지난달 21일 광주 MBC가 광주전남 시민을 상대로 '호남을 대변하는 후보로 적합한 인물이 누구냐'를 묻는 조사에서 이명박 전 시장이 오차범위인 4.2%P 차이로 정동영 전 의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단순 지지도 조사에선 이 전 시장이 30%대로 단연 1위다. 이는 과거 호남의 투표 성향은 물론 여론조사에서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결과다. '반한나라당' 정서가 다소 누그러진데다, 정권창출에 대한 절박감이 예전에 비해 흐려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 과거 '호남 배타적 영남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경제를 잘 살릴 것' 같은 기대감이 더해진 결과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만난 상인 노오필(47)씨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밀어줬는데 실망감이 크다"며 "이명박 전 시장은 경제를 잘 했고 추진력도 있으니까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에 대한 호남의 지지도가 '적극적 의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나라당 광주시당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한나라당'이 아닌 '사람'에게 방점이 찍힌 것이기 때문에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대선전에 들어서면 '한나라당 후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지지율이 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관건은 '두 자리 수' 지지세 유지이다. 이 전 시장이, '인물'에 비해 3배 이상 뒤쳐진 '당'에 대한 지지세를 유지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가 관전포인트다.

의견이 갈린다. 낙관론을 펴는 쪽은 이념·민주화 등 가치지향적 선택보다는 지역경제 발전 등 실리적 선택 가능성, 정권 창출의 절박감 약화, 반(反)한나라당 정서 퇴색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 여권에서 아직 가시화된 주자가 없고, 대선 구도가 반한나라당으로 짜여지면 힘들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쪽에선 "뚜렷한 범여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소극적인 지지"라며 이명박 상승세를 일축하는 분위기다.

[손학규] "탈당 잘했다"면서도 '냉정한' 시선 유지

ⓒ 오마이뉴스 이종호
좀체 주목받지 못했던 범여권에 관심사가 하나 등장했다. '손학규 탈당'이다. 호남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탈당 잘했다"는 반응이 높게 나왔다. 한나라당에 맞설 마땅한 주자를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손 전 지사를 '대항마'의 반열에 일단 올려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학규 캠프의 광주쪽 한 관계자는 "호남민심의 호의적 반응은 손학규를 비(非)한나라당 세력의 대안으로 기대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탈당으로 인해 호남의 반한나라당 정서를 자극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은 엇갈린다. "예상보다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지 않다"는 점에선 평가가 일치한다. 하지만 "호남이 손학규를 범여권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후보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적극적 분석과 "탈당 변수가 범여권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기대감의 표시"라는 소극적인 평가로 갈린다. 손학규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 보다는 범여권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탈당 변수가 한때의 '눈요기'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전망도 포함돼 있다.

고건 전 총리가 그랬다. 범여권의 지지세가 가장 강했던 호남에서 고 전 총리는 한때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지만 불출마 선언 직전, 그의 호남 지지율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손 전 지사에게도 호남 민심은 향후 정치행보의 주요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단위 조사에선 범여권 대선 후보 중 '선호도 1위'로 꼽히지만 호남에선 여전히 정동영 전 의장에게 많이 뒤쳐져 있다. 한나라당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과 비전을 어떻게 보여줄지, 그 여하에 달렸다.

[정동영] 여권주자로 유일... "호소만 있고 비전은 없어"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열린우리당을 그렇게 밀어줬는데,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당이나 쪼개고…, 신당 만든다는 것도 자기 자리(지역구) 챙기는 것 아니냐. 재미가 있어야 무슨 얘기라도 하지, 말하기도 싫다."

전남 여수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서민석(35)씨의 말이다. 여권의 대선주자 중 누구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전북 출신의 정동영 전 의장이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곳은 바로 호남이다. 지지도에선 이명박 전 시장에 비해 한참 떨어지지만 '적합성'에선 박빙의 1위다.

5%를 밑돌던 정동영 전 의장의 대선행보에 속도가 붙은 건 고건 전 총리의 낙마 이후였다. 고건의 빈자리를 노리고 "호남을 대변하는 후보 한 명 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열심히 다리품을 팔았다. 하지만 호남은 특별한 신호를 주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한나라당 후보들의 지지도가 높은 것에 대해 정 전 의장은 "통탄스럽다"고 했다.

천정배 등 다른 여권 주자들은 그나마 가시권 밖이다. 호남인들의 여권에 대한 불만은 "한나라당과 호남이 손을 잡으면 안된다"는 '호소'만 있다는 것이다. 김용남(62·광주 방림동)씨는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서 국민들 잘 살게 해주겠다는 게 없으니까 무슨 말을 해도 와닿지 않는다"며 "맨날 광주에 대고 표 달라고 하지 말고 확실한 대권 주자를 내놓으라"고 말했다.

김재석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여권주자들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동반추락한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정 전 의장의 경우 과거에 민주당 정풍운동을 주도한 이후 지지를 이끌만한 국가적 비전과 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범여권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신념에 가깝게' 믿고 있다. 언젠가 노 대통령이 "호남 사람들이 내가 좋아서 몰표를 준 것이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한 것처럼 '반한나라당 전선'을 걷어들일 의사가 없다는데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조정관 교수(전남대 정치외교학)는 "'평화개혁세력의 후보'가 나오더라도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지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범여권에 '노풍'과 같은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아직 '속살' 드러내지 않은 호남민심

이명박, 손학규, 정동영 이 3명의 인물 프리즘으로 드러나는 호남의 민심은 얼마든지 전복될 수 있다. 아직은 호기심, 관심, 기대감 등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직 '속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약화된 반한나라당 정서 속에서 '인물'에 대한 선택이 될지, 반대로 반한나라당 구도 하에 '대안'을 찾게 될지, 대선 때마다 민심의 풍향계를 제공해온 호남인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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