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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무안·신안 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선거전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주민들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다. 무안·신안 선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을 사고있다. 사진은 15일 오후 당좌도 등을 거쳐 목포 여객터미널에 도착한 배에서 하선하고 있는 관광객들과 신안 주민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솔직하게 김홍업이는 DJ 아들이라고 나온 것 아니여? 우리보고 대를 이어서 충성하라는 거여, 뭐여? 인자 바꿔야제"
"술 한 잔 하면 욕도 나오고 그라제. 근디 또 생각해보면 민주당, DJ밖에 없는 것 같어라"
"내키지는 않은디 김홍업이 떨어지면 DJ 체면이 뭐가 돼겄어? 글고 뭐 찍을 사람도 달리 없는 것 같어?!"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고향이자 가장 큰 정치적 후원지역인 전남 무안과 신안. 주민들은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고민도 된다. 무엇보다 DJ에 대한 애증이 묻어난다.

DJ의 차남 김홍업(56)씨의 무안·신안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것을 두고 지역민심은 이렇게 갈린다.

김홍업 후보와 민주당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출마 자체에 대해서는 썩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신안군보다 1만여명 정도 선거인 수가 많은 무안에서는 소지역주의 양상도 보이고 있다. 선거구 통합 이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줄곧 신안 출신이 배지를 차지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김 후보에 대한 반발하거나 소지역주의적인 민심은 고민스러워 보인다.

[반대] "김홍업이 당선시키면 우리만 욕먹는 것 아녀?"

▲ 14일 오후 무안 장터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유세를 유심히 듣고있는 무안 주민들. DJ에 대한 애증이 어떤 표심으로 나타날지 관심이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14일 무안읍 장터 거리에서 만난 이재구(57·무압읍)씨는 "솔직하게 김홍업이는 DJ 아들이라고 나온 것 아니여? 우리보고 대를 이어서 충성하라는 거여, 뭐여? 인자 바꿔야제"라며 "차라리 한나라당 찍을 것이여"라고 역정을 냈다. 이씨는 "DJ가 출마를 막았어야지, 이희호 여사도 여기까지 와서 김홍업이 짠하다고 말하고 그러면 안되제"라며 "인자 나는 아니여"라고 잘라 말했다.

옆에 있던 손용호(56)씨도 손사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손씨는 "저번에 신안군수 선거할 때 어땠어? 무소속이 돼버렸잖어"라며 "인자는 우리도 후광 업고 나온 막대기를 찍어주는 시대는 지나버렸어, 인자 안 찍어"라고 거칠게 말했다.

이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연설을 유심히 듣고 있던 40대 남성도 "DJ 집안이 너무했지"라며 "글고 왜 신안출신들만 의원질 계속 해먹어?"라고 격앙됐다.

장산도 등을 거쳐 온 배를 타고 목포에 도착한 30대 한 남성은 "김홍업이 당선되면 우리 욕 먹는거 아니요?"라며 "뭐라고 말하기는 그런데 이거는 아닌 거 같소"라고 우려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15일 목포 북항에서 만난 강아무개(45·무안읍)씨는 "김일성이 김정일이한테 대물림한 것처럼 DJ가 그런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나이드신 분들보다는 젊은 층에서 반대 목소리가 많다"고 했다.

강씨는 "여기도 싫고 저기도 그렇고 해서 선거 기권한다는 사람들도 있더라"며 "무안에서는 이번에는 신안 사람말고 무안 사람이 배지 달아야 한다는 말도 있더라"라고 전했다.

이같이 만만치 않은 비난 여론과 무안지역의 소지역주의에도 '대안이 있느냐'는 것을 두고 고심해서인지 지지 후보를 명확히 밝히는 주민을 만나기 어려웠다.

전남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재현 후보의 경쟁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텐데 대안으로 내켜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 고민의 결과가 당락을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찬성] "이재현도 비리 저질렀는디... '미워도 다시 한번'"

▲ 지난 12일 김홍업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는 동교동계, 우리당, 민주당 지도부 등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이희호 여사는 주민들에게 "홍업이도 고생 많았다"며 "아들을 국회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출마 초기에 비해 김 후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수그러지고 있는 분위기다.
ⓒ 민주당 제공
그래도 출마 선언 당시 김홍업 후보에 대한 비난은 시일이 갈수록 다소 누그러진 듯 하다. 지난 12일 이희호 여사·동교동계 인사들·민주당 지도부 등이 대거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한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안터미널에서 만난 김미순(64·청계면·여)씨는 "대통령 아들이라고 욕들도 하고 그란디, 나는 대통령 아들이여서 더 나은 것 아니여? 이런 맘도 생기던디"라며 "글고 이재현 전 군수도 비리를 저질렀고 김홍업도 그랬는디 그럼 누구 찍여야 혀?"라고 되물었다.

김씨는 "내키지는 않아도 어제 일은 잊고 오늘 잘하믄 되제"라며 "글고 DJ 아들이라고 자식들도 고생을 했잖어"라고 호의적으로 말했다. 김씨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60대 할머니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도 하는디 그래도 DJ를 외면할 수는 없제"라고 거들었다.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만난 김아무개(45·여)씨는 민심을 묻는 기자에게 "잘 모르겠지만 신안 사람들도 아들이 또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요"라면서도 "처음에는 막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디 인자는 쬠 수그러진 것 같애라"라고 전했다.

이들의 말에서 DJ 일가에 대한 애증이 묻어난다. "김홍업이 떨어지면 DJ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걱정과 "그러면 이재현 전 군수가 대안이냐"는 물음 사이에 민심이 놓여있는 듯 하다.

지난 12일 김홍업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이희호씨가 "저희 가족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서 고행했고 홍업이도 많은 고생을 했다"며 "우리 아들 홍업이를 국회로 보내달라"고 한 호소가 비난 민심을 어느정도 진정시켰다는 평도 있다.

무안 장터에서 신발장사를 하는 노대영(44)씨는 "DJ 아들이라고 안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역차별 아니냐"고 했다. "아직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았다"는 노씨는 "오히려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면 지역발전에 더 나을 것 같다"면서 "내키지는 않지만 갈수록 조금씩 호의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아무개(58·압해도)씨는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박씨는 "솔직히 보기는 싫은디 그럼 마땅한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지, 술마시면서 처음에는 'DJ가 저러면 안돼, 확 엎어버려야지' 성질을 내는데 잠시 생각하면 또 아니거든"이라며 "이재현도 비리있고 김홍업도 있는디, 이재현은 나이가 70인데 누가 더 낫것소"라고 했다.

무조건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김홍업 후보에 호의적인 민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안 장터에서 만난 조아무개(64)씨는 "우리가 뭐 병신인지 아요? 무작정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제"라며 "지역발전하는데 더 낫다고 한께 그라제"라고 말했다.

'자연인' 김홍업과 '정치인' DJ만 있다

▲ 25일 무안·신안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무안과 신안 주민들을 이틀 동안 만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김홍업 후보가 아닌 그의 아버지 DJ였다. 그래서 "DJ가 선거나온 것도 아닌데 DJ, DJ하고 있는 꼴이 우습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목포 북항에서 만난 임중민(38·신안 안좌도)씨는 "저는 마땅치가 않는데 어르신들은 DJ 체면이 어떻게 되느냐는 걱정이 앞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전남도당 관계자는 "DJ에 대한 애증도 있겠지만 이재현 후보가 비리전력과 나이 때문에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기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게 김홍업 후보 선거인지, DJ 선거인지 분간이 안간다"며 "이런 선거 분위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 김홍업은 어디가고 'DJ의 차남'이라는 '자연인' 김홍업과 '정치인' DJ만 존재하는 듯한 분위기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김홍업 후보측은 '강력한 추진력과 힘을 가진 김홍업'이라는 인물론을 전략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역주의를 깨고 DJ가 이뤄낸 '민주혁명'을 '선거혁명'을 통해서 완성해 달라"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호소에 무안·신안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관심이다. 무안과 신안 주민들은 비정상적인 정치행태에 대한 반발과 대안부재라는 현실 정치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선뜻 민심은 한 편으로 향하지 않고 있다. 선거는 자신에게 최선을 뽑는 O·X가 아닌 여럿 중 하나를 골라하는 차악이라도 '선택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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