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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발레를 개척해온 서울발레시어터의 발레는 카멜레온 발레다. 이번에는 막춤발레로 춤의 땅을 또 한뼘 넓혔다
ⓒ 김기
국내 3대 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가 5일과 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올린 국내 초연작 코펠리아는 몇 가지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다.

카툰발레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이고 초연된 서울발레시어터의 코펠리아는 국내에서는 처음이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자주 공연되는 명작 발레 중 하나. 특히 코펠리아를 위해 작곡된 레오 들뤼베르의 빼어난 발레 음악으로 손꼽힌다.

세계 발레 레파토리 중에는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은 것이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데, 연말이면 경쟁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호두까기인형이 그렇다. 코펠리아 역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가족 레파토리이다.

부인을 잃고 광적으로 인형제작에 매달리는 코펠리우스 박사. 결혼을 앞둔 프란츠는 너무도 아름다운 인형 코펠리아에 반해 몰래 박사의 집으로 들어간다. 한편 이와 동시에 프란츠의 신부 스와닐다와 친구들은 우연히 주운 열쇠를 이용해 박사의 집으로 들어가 태엽으로 돌아가는 인형들을 발견하고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는 동안 박사가 들어오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스와닐다는 코펠리아가 있는 커튼 뒤로 숨는다. 그때 스와닐다의 약혼자 프란츠가 들어와 박사에 발각되어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고 잠든다. 박사는 프란츠를 이용해 코펠리아에게 생명을 불어넣고자 주문을 외우자 기적처럼 코펠리아가 춤을 추자 기뻐한다.

▲ 무대 미술 이태섭과 의상 이재희가 만든 무대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흥미롭게 자극했다. 코펠리우스 박사 집으로 몰래 들어간 동네쳥년들이 인형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장면
ⓒ 김기
그러나 그것은 코펠리아가 아니라 커튼 뒤에 숨어있던 스와닐다인 것을 알게 되어 슬퍼하는데, 이를 본 동네 청년들은 따뜻한 위로로 박사를 보듬고, 프란츠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쓴 스와닐다의 사랑에 프란츠 역시 감동하여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으로 인형이 등장하는 점에서 호두까기인형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49)이 13년 만에 무대에 올라 공연 전부터 무용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달 후면 우리 나이로 50줄에 들어서는 제임스는 무대에 서기 위해 몇 달 전부터 감량과 함께 단원들과 클래스를 해왔다. 그는 무대 위에서 나이를 잊은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에서 진정 눈여겨 볼 부분은 따로 있다. 원작에서 중국 인형이었던 코펠리우스 박사 집의 인형을 한국 인형으로 바꾸고, 1막에서는 배우들이 즐겁게 파티하는 장면에서는 "얼씨구 좋다"를 외치게 하는 등 발레라는 외래 형식을 통해서도 어린 관객들에게 모국정서를 제시하고자 하는 등 즐거운 파격을 보인 것. 그 장면에서 이 날 공연에서 가장 유쾌한 장면도 곁들여졌는데, 무대 위의 무용수들이 모두 소위 막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 13년만에 무용수로 무대에 오른 50줄을 바라보는 제임스 전. 20대의 기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20대는 넘볼 수 없는 자신의 역을 즐기는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조로하는 발레리노들의 경향을 볼 때 새로운 가능성과 고민을 담은 용기였다.
ⓒ 김기
발레에서의 막춤은 놀라웠다. 안무가 제임스는 당연히 얼씨구 좋다와 연결된 대답을 한다. 파티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잔치 분위기 그대로 무용수가 아닌 흥에 겨운 자연인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사석에서 자신에게는 한국정서가 너무 없어서 마음 속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도 시도하기 두렵다던 그이지만, 굳이 한국이라는 의도를 갖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난장'으로 넘어간 제임스 전은 역시 한국인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계명작이든, 한국적 정서를 잘 녹인 수작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객석이 그에 호응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미 예매를 통해 이틀 3회 공연 입장권이 90% 정도 팔려나간 진기록을 세웠기에 관객의 반응은 초대권으로 채워지는 공연들보다 더욱 중요하다. 공연예술계에서도 가장 열악한 무용공연이기에 전회 매진은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긴장되는 전제였다고 김인희 단장은 말했다.

우선 놀라운 사실은 어린이관객들의 관람 수준이 정말 훌륭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어린이로 채워진 객석은 공연 전 당연히 어수선했다. 그러나 공연 본종이 울리고, 객석 조명이 꺼지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함성과 함께 큰 박수로 막을 열었다. 그리고 박수쳐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어찌나 잘 아는지 공연장에 살다시피 하는 기자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 공연 막바지 결혼식 장면.
ⓒ 김기
본래 3막의 긴 작품을 제임스는 2막으로 줄였다. 그래도 공연 시간은 2시간 가까이 되는 대작이다. 후반으로 가면서 조금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더러 보였으나 어린이들은 만화 속 캐릭터처럼 친근한 모습에 시종 즐거운 모습이었다. 대부분 미취학 아동들의 너무도 감동스러운 관람 매너를 보면서 십년 후 우리나라 문화수준에 대해 안도해도 좋을 듯싶다.

서울발레시어터는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그동안 가족 레파토리를 꾸준히 무대에 올려왔다. 국내 전문무용단체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호두까기인형을 비롯해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백설공주 등 비단 5월만이 아니라 연중 어린이들을 위한 발레공연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평소 공연 때와는 달리 공연 전 로비에서 어린이 관객들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공연 후에는 원하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출연자 사인을 해주는 등 관객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린이를 통해 엄마와 아빠가 서울발레시어터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엄마가 다른 작품을 보고 다음에 아이 손을 잡고 가족공연에 나타난다. 창단 11년 동안 지속해온 가족대상 전략이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무용공연으로는 흔치 않게 기획사와 공동제작을 한 서울발레시어터의 만화영화같은 카툰발레는 한 달 후 고양 어울림극장에서 재공연된다. 고양시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 극장에 일찍 도착한 관객들을 위한 선물로 어린이들 얼굴에 이쁜 그림을 그려주는 등 가족공연에는 갖가지 이벤트가 있다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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