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옛 건물을 활용해서 만든 스타벅스의 한예인 스차하이 스타벅스 모습
ⓒ 조창완
4~5년 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적이 있다.

“그 도시에 가면 먼저 스타벅스를 찾는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 그곳에 대한 마음의 안정이 생긴다. 스타벅스가 많으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사실 나는 8년 전 중국으로 건너와 스타벅스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기에 이 말이 어색했다. 하지만 지난 2~3년간 베이징에 스타벅스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말을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여행자들이 안식을 찾는 자리에 스타벅스의 마크가 자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청시대 황궁인 구궁(故宮)이나 스차하이, 왕푸징 같은 명소는 물론 고급 오피스 안까지 스타벅스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비교적 비싼 그 커피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런데 지난 13일 중국 구궁 안에 있는 스타벅스가 영업을 정지했다. 논란이 시작된 지 2년여 만이다.

중국 유력매체인 CCTV의 한 진행자가 중국의 심장부인 구궁 안에 서양 문화를 대표하는 스타벅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논란이 확산되었다. 자금성 측은 스타벅스 측에 영업은 하되, 스타벅스의 상호를 쓰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스타벅스로서는 그 요청을 들을 수 없었고, 얼마 전 영업을 철회한 것이다.

구궁 안 스타벅스 철수에 부정적 여론, 왜?

▲ 스타벅스 철수 사실을 전달한 기사 캡처
ⓒ 조창완
정상적인 결과라면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도해야함에도 중국 내 목소리는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 '국수주의에 빠져서 결국은 우리가 패배한 것'이라는 보도가 지배적이다.

사실상 관변매체라고 할 수 있는 신문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런민르빠오(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세계뉴스 신문인 <환치우스바오>(환구시보) 23일치에는 의외의 칼럼이 실렸다.

11면 궈지룬탄(국제논단)에 실린 이 칼럼의 제목은 '구궁에서는 어느 나라 음료라도 팔 수 있다'다. 류양(劉仰)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쓴 이 글의 내용은 "구궁 안에서 스타벅스를 철수하게 한 것은 지나치게 수구적인 태도며, 논리성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간단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국 문화는 수천 년 간 외래문화를 수용해 자기화함으로써 성장했다. 스타벅스도 그런 예일 뿐이다. 스타벅스가 철수해야 한다면 구궁 안에 있는 시계관 등 서양 문물에 속하는 것은 모두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앤밍위앤(원명원)의 시양루(西洋樓) 등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80년 전 황제들도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6년 전에 정식으로 영업허가를 맡고 들어온 스타벅스를 철수시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문화는 박물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과 같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스타벅스 철수, 중화주의의 발로일까

▲ 도시풍의 건물에도 스타벅스가 눈에 띈다. 사진은 신동안상가 안 스타벅스
ⓒ 조창완
류양의 주장처럼 중국은 수천 년 간 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중국 문화를 만들었다. 수천 년 간 북방의 유목민족이 중원을 침략당한 후 200~300년만 지나면 자국의 문화를 읽고 중국에 흡수돼 버린 것은 그런 힘의 발로다.

나는 수년전에 한 지인에게 "왜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영어를 배우는지 아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의 답은 "영어를 해서 영어 국가를 먹기 위함이다"였다. 물론 비약된 논리일 수 있지만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사실 서구나 한국, 일본 등의 힘을 빌려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세계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중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국은 다른 나라의 힘을 통해서 성장한 나라다. 물론 외국 기업이 중국에 들어오는 것은 그만한 매력이 있는 것이기에 원인과 결과를 나누기 힘들다. 하지만 어떻든 중국에 들어온 기업들이 중국 발전에 기인한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외국기업이 중국에 들어오게 된 배경에는 광대한 시장의 매력도 있지만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중국의 이런 매력이 사라져가고 있다. 들어올 때 약속하던 각종 지원이나 혜택도 정부의 지시 등의 이유로 사라지고, 오히려 공회(한국의 노동조합 해당)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스트라이크를 유도하는 등 외국기업이 발전하는데 다양한 악재를 던지고 있다.

외교에 있어서도 패권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일도 빈번하다.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눈 한 외교관은 "중국 측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강압적인 제안을 던져서 놀란 적이 있다"며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베이징의 스타벅스 숫자는 매년 100%씩은 증가하는 것 같다. 구궁에도 있었지만 스차하이 후통의 입구에도 옛 건물 입구에 스타벅스가 있다. 중국 서민문화의 상징 같은 장소의 초입에 있는 만큼 이곳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건 분명하다. 이외에도 왕푸징 신동안시장 지하를 비롯해 많은 곳에 스타벅스가 존재한다. 어떻든 이번 일로 스타벅스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스타벅스 철수는 자살골

▲ 스타벅스의 철수가 중국의 패배라고 쓴 한 칼럼 캡처
ⓒ 조창완
이런 일련의 사태를 두고 '문화충돌'로 표현하는 이까지 있다. 유력한 매체인 난방두스바오(南方都市報)의 20일자 칼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타벅스 사건 중의 문화충돌'(星巴克事件中的文化冲突)이라는 제하의 이 칼럼에서 설용(薛涌)은 "이 사건은 경박하게 흘러간 인터넷 문화 등이 작용하면서 흡입되는 외국 문화를 매도해 철수하게 한 사건으로 대미 무역 역조 등을 생각할 때, 중국에게는 득보다 손실이 많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스타벅스 퇴출과 문화오독'(星巴克被逐與文化誤讀 7월20일 長沙晚報)의 필자는 이번 일을 문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꼬집었다. '구궁 스타벅스 퇴출로 우리가 졌다'(退出故宫的星巴克打败了我们 7월19일 황포(黃波))는 "공자학원 등이 캐나다로 가는 등 중국 문화가 세계로 나가는데, 스타벅스 사건은 우리의 허약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결국 자금성 안 스타벅스는 사라졌다. 반면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은 자금성 안에 4개의 음식점포를 열었다. 한식뿐만 아니라 중식 패스트푸드 점포다. 영업은 하되, 자신의 모습을 갖추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흡사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고사가 떠오른다. 지금의 광활한 영토를 만든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만주족은 개(犬)에 대한 고마운 역사가 있다. 누루하치의 선조가 개로 인해 목숨을 구한 일이다. 사실 그 개가 아니었으면 청나라가 안 만들어졌고, 청이 없으면 지금처럼 강성한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어떻든 그 개로 인해 청나라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문화를 금지했다. 하지만 북방에서 개고기는 아주 중요한 보양식이었기에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양두구육'의 고사가 생긴 유래다.

스타벅스는 인터넷 등 경박한 비판문화가 만들어낸 현대판 '양두구육' 사건일까, 아니면 패권주의 국가로 가는 중국의 '자문화 중심주의'의 한 발로 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궁#스타벅스#철수#중국#양두구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