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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 수행하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3일 오전 평양 백화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모습. (사진 중앙의 이재정 통일부장관 뒷편:화살표 방향) <사진공동취재단>
▲ 김 위원장 수행하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3일 오전 평양 백화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모습. (사진 중앙의 이재정 통일부장관 뒷편:화살표 방향)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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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선언'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가장 주목을 끌면서 논란을 야기한 부분은 남북한이 종전선언 추진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이 선언의 4항에서는 "평화체제 논의와 관련,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3자가 되면 자신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중국은 자신이 배제된 3자 종전선언 가능성을 경계하고 나섰다. 국내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남한 배제론'은 적실성이 떨어진다. 합의 주체가 남북한인데,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다는 것은 정상회담 합의를 북한이 어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중국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따라서 3자는 남-북-미를 의미하고, 여기에 중국까지 포함한 4자 회담이 열릴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3자, 또는 4자 평화협정... 북한의 의도는?

종전선언 당사자 문제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빠진 것이 있다. "3자 또는 4자"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삽입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1954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외국군(주한미군과 북한 주둔 중국군을 의미)의 철수를 전제로 남북평화협정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1974년 3월 26일 미국 의회에 보내는 서한에서 평화협정 체결 회담을 제안하면서 남한을 배제한 북미평화협정을 주장했고, 이는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4년 5월에는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모든 나라"가 평화협정 서명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며, 남-북-미 3자 평화협정을 선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단 한번도 중국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이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은 중국의 참여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3자' 종전선언을 제안하지 않고, '4자'라는 표현을 포함시킨 것일까? 이와 관련해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배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평화체제 포럼이 남-북-미-중 '4자회담'으로 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종전선언... 북한의 입지 강화 위한 전략적 '베팅'

 지난해 10월 28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
 지난해 10월 28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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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이러한 해석을 뛰어넘는 '전략적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중국의 대북정책을 '단속'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중국은 작년 7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10월 핵실험을 강하게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비난 및 제재 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또한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중국은행을 통한 송금을 거부했다. 이는 북한의 중국에 대한 불신을 자극하는 요인들이 되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중국의 배제 가능성을 담은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요구한 데에는, 위와 같은 반북 성향의 대북정책에 대한 외교적 보복이자, 앞으로 또 다시 중국의 대북정책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의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판짜기에 들어간 동북아에서 북한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일종의 '베팅'을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3자는 남-북-미로 굳어져 있고 중국이 4자로 확대해 참여를 희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참여 여부에 대한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종전선언이 정전상태를 종결하고 평화협정으로 가는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면, 한국전쟁 당시 핵심적인 교전당사자이자 정전협정 서명자인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하는 것과 평화협정 체결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결을 선언하는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 상태를 종결하고 무력 충돌의 원인을 제거하는 평화협정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종전선언은 '과거 청산'이라는 의미가 있고, 평화협정은 '미래 설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중국은 종전선언은 물론 평화협정에도 참여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평화협정 체결 회담에 참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 역시 북한의 입장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둘러싼 이러한 속성과 상황 전개는 북한의 입지를 높여준다. 우선 북한은 대중관계가 종속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과시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 종속관계로 비춰지느냐, 대등한 관계로 비춰지느냐는 북한의 전략적 미래와 관련해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또한 중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북한의 몸값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해석이 적실성을 갖는다면, 향후 북한의 외교전략의 목표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는 '체제 생존'이라는 당면한 전술적 목표를 넘어 미-중-일-러 주변 4강을 상대로 실리위주의 등거리 외교를 전개하면서 동북아에서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이는 1950-60년대에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두 나라로부터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았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사회주의권의 붕괴 및 한중·한중 수교와 북미·북일 수교의 미실현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던 처지에서의 극적인 반전을 예고해준다.

동북아 정세, 북한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듯

북한이 이처럼 주변 4강을 상대로 전략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 및 러시아와의 우호협력관계를 유지·발전시키면서도 과도한 영향력을 제어하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해야 하는데, 이는 점차 가시권 안에 들어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북한의 '짝사랑'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은 북한의 전략적 의도에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북한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시켜야 할 이유가 있다.

북미관계가 급진전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점차 가시권 안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악화는 재편되고 있는 동북아 질서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맥락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과 일본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임기 내 북핵 해결"을 희망하는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미국이 평양으로 가면, 일본도 주저하겠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

 지난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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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략적 목표와 관련해, 미국의 최고 북한통으로 꼽히는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북한분석가와 존 루이스 스탠포드대 교수의 지적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2007년 1월 27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거론되어온 에너지 지원, 경제제재 해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등은 북한에게는 "전술적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며,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을 통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지역 강대국들을 견제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중국도 이를 잘 알고 있고, 사석에서는 그렇게 말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필자의 해석을 포함한 이러한 주장들은 검증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목표를 "체제 생존"이라고 일컫는 화석화된 해석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그는 '살아남기'를 지나, 훨씬 더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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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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