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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놀이 미진한 듯한 옅은 색이 오히려 더 황홀하다.
▲ 단풍놀이 미진한 듯한 옅은 색이 오히려 더 황홀하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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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일까, 비명일까? '단풍'하면 뭐니뭐니해도 내장산. 맨 처음 소문을 누가 내기 시작했는지, 요즘 최고 단풍미인 내장산은 엄청 괴롭다. 사람들 등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풍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다. 남쪽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 드디어 내가 내장산 가이드로 낙첨되었다. 악명이 얼마나 높으면 출발도 30분 일찍이다. 그러니까 시청앞에서 6시 30분 출발. 사장님 미안한 지 7시 출발 때처럼 나오란다. 보통 6시면 나가니까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거다.

출발 인원은 37명에 개별 자유 여행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책임질 것은 교통과 입장료뿐이다. 물론 안내는 기본. 문제는 버스가 어디까지 들어가느냐다. 작년에는 기사님이 아는 식당이 있어서 관광단지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오늘 같이 간 기사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셔틀, 기다리기도 바꿔타기도 힘드니, 순전히 손님 차원에서의 배려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전부가 안 되면 일부라도. 내가 먼저 내려 앞장선다. 상가 간판을 읽으며 쭉 걸어나간다. 줄레줄레 나를 따라 오는 손님들, 나도 잘 파악이 안돼 배지를 본다. 매표소 거의 다가서 식당이 나온다.

그러나 준비가 미흡했는지 도무지 정신이 없다. 안주인인듯한 여자는 종업원에게 소리를 치고 식당 안은 정리가 안되어 있어 어지럽다. 새벽 4시 40분에 아침을 먹어 배가 고팠지만 가만히 지켜보다 돌아선다.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관광지 음식은 참 마음에 안 든다. 지난해에 갔던 식당도 별로 맛이 없었다. 그냥 지켜 보고 있기도 고역, 차라리 산에 먼저 올라갔다 와서 얘기를 해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선다.

단풍은 아직 수줍은 새색시 수준. 매표소 안에 들어서자 단풍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참을 걷다 뒤돌아보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 매표소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케이블카 타는 곳이 있다고 손님들한테 설명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잘못 왔나? 두리번거리다 두어번 되돌아가 봤지만 아무리 봐도 낯설고 케이블카 타는 곳도 보이지 않는다.

단풍놀이 아직은 수줍은 새색시 수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풍놀이를 나왔다.
▲ 단풍놀이 아직은 수줍은 새색시 수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풍놀이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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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도 쪽으로 걷는데 셔틀버스가 온다. 매표소, 케이블카 타는 곳이라고 써 있다. 그제야 안심하고 걷는다. 2년 전에 개인적으로 다녀갔다. 그리고 작년에는 손님들만 들어가게 하고 나는 차에서 다른 일을 했다. 그런데도 낯설다. 여행이 일상이다보니 요즘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하긴 매일 지나다니는 길도 낯설 때가 있다.

셔틀버스 서는 데에서 왼쪽은 케이블카 타는 곳, 오른쪽은 내장사 가는 길이다. 낯선 이유를 알겠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만 내 길동무는 걷기를 무지 싫어한다. 아무리 내려서 걷자고 성화를 해도 그는 끝까지 차로 밀고 올라온다. 단 사진 찍을 게 있을 때만 달라진다. 카메라 가방 메고 어찌나 빨리 뛰는지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니까 2년 전에는 차를 타고 매표소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낯설었던 것이다.

안내도를 보고 우선 일주문을 지나 내장사로 간다. 백제무왕 때(636년) 영은조사가 세웠단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여기에도 있었던지 (조선 중종 34년) 사찰(승려)의 행패가 심하여 폐찰령을 내리고 소각하였다고 한다. 그뒤 다시 수축하였으나 세차례나 소실, 지금의 절은 1959년에 지어진 것이다. 본래는 영은사였으나 최근에 산 이름을 따서 내장사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내장사 여기까지는 아주 바글바글이다.
▲ 내장사 여기까지는 아주 바글바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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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는 혼잡했다. 내장산에 왔으니 내장사는 갔다와야지 하는 심리가 작용한 모양이다. 난 발자국만 찍고 돌아나와 산책로로 접어든다. 이제 낯익은 풍경이 들어온다. 휴게소 직전 앉아서 쉬었다가 돌아간 기억이다. 안내도를 보고는 '어이쿠! 저기까지 언제 들어갔다 나와' 하면서 발길을 되돌렸었다.

원적계곡은 계곡이라기보다 작은 개울이다. 개울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논다. 아이들을 좋아하니 그냥 갈 수 없지. 가까이 다가가 노는 모습을 보니 아는 얼굴들, 바로 우리 손님들이다. 아이 셋에 어른 셋.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 뒷자리를 원했다. 지정좌석은 중간이었는데. 자리를 바꾸면 혼란스러워 고심 끝에 사장님과 상의, 바꾸어 주었더니 기사가 와서 보고는 한마디했다. 아이들이 뒷자리에 있으면 신경 쓰인다고. 나도 알고는 있지만 하도 원하기에 그런건데,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다시 원위치 하겠단다. 너무 울렁거려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미안해 하면서. 난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는 척하다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무조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에는 함정이 있다. 단체를 움직일 때는 내 주관을 보여주고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인솔하는데 지장이 없다. 한 마디 더 하자면 단체 여행은 유치원 소풍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시간은 복창을 시켜도 늦으면 딴소
리다, 왕왕. 사람들은 단체가 되면 단순해지는가 보다. 유치원 아이들처럼 말이다.

"아니, 왜 케이블카 안 타시구요?"
"시간이 영 안 되겠더라구요. 기다리기도 지루할 것 같고."
"잘 하셨어요. 케이블카야 다른 데 가서도 얼마든지 타지만 여기 산은 다른 데하고는 다르잖아요. 아이들과 이렇게 노는 것도 좋고요."
"예, 그래서요."

아이들을 향해 바이바이를 외치고 내 갈 길을 간다. 처음부터 케이블카에 관심이 많았던 손님들이다. 그래서 행여 내가 안내를 잘못해 입구에서 헤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처음부터 기선을 잘 잡은 모양이다. 셔틀을 타고 오고 그 다음부터 걸어서 왔으니. 내 걸음보다 빨랐던 것이다.

이제 한적한 길이다. 내 예상대로 내장산에 왔으니 내장사는 찍고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반 이상, 이를테면 거의가 단풍놀이 야유회를 온 것이다. 떼로 몰려 다니면서. 가을산이지만 올라올수록 단풍은 보이지도 않고, 나무 그림자로 어둑해진 길을 혼자 걷는다.

숲속 음악회 숲속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즉석 음악회지만 관객이 많아지자 연주자의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려진다.
▲ 숲속 음악회 숲속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즉석 음악회지만 관객이 많아지자 연주자의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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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인데 기타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풍악과 달리 기타소리는 산과 잘 어울린다. 작게 들리던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형체를 드러낸다. 작달막한 초로의 연주자가 보이고 주변엔 등산객들이 모여 있다. 즉석 연주회다. 관객까지 생기자 연주자 신이 난 표정.

나도 서서 구경꾼이 된다. 궁금했다. 왜 즉석 연주를 하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다. 더구나 그는 혼자인 것 같은데. 그러나 곡이 끝나자 관객 중 한 명에게 노래를 요청했고, 노래에 맞춰 기타반주도 시작되었다. 길을 가던 한 아주머니 얼른 나무가지를 주워 마이크를 만들어주고 자신도 서서 구경을 한다. 재밌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니 돌아선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게 궁금증인데 어찌 다 풀고 살겠는가, 하면서.

원적암 작아서 아름다워 보였던 산속 암자...
▲ 원적암 작아서 아름다워 보였던 산속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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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 가파른 오르막이다. 느리게 돌로 만든 계단 위에 발을 올려 놓는다. 원적암 직전 같다. 불출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원적암. 고려 때 창건했다는 암자다. 이 곳에는 인도로부터 들여온 유명한 상아(옥돌이라고도 함)로 만든 자그마한 와상이 있었다는데(아쉽게도 1910년 일본인에게 도난),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비자림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 가을 단풍과 함께 내장산의 대표 명물.
▲ 비자림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 가을 단풍과 함께 내장산의 대표 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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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암을 나오자 바로 비자나무숲(백양사 비자림과 함께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이 보인다. 비자나무는 아주 크다. 아름드리 나무 그늘은 길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밑에는 데크를 놓아 관광객들이 숲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서로 얽혀 하늘을 덮고 있는 비자림은 아주 장관이었다. 단풍도 좋지만 비자림도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너덜너덜 너덜겅 너덜겅은 바위산이 오랜 세월동안 작은 돌맹이로 분리되어, 한지역에 수북하게 쌓인 비탈지대를 말한다.
▲ 너덜너덜 너덜겅 너덜겅은 바위산이 오랜 세월동안 작은 돌맹이로 분리되어, 한지역에 수북하게 쌓인 비탈지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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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을 지나자 곧 너덜겅이 나온다. 바위가 부서져 내려 길 위에 깔렸다는 길이다. 꼭 돌맹이를 사람이 깔아 놓은 것 같은 길을 걷는다. 아무 뜻 없이 길을 가지만 길에는 다 나름의 역사가 있다. 길의 고마움과 길이 된 역사도 함께 생각해본다.

이번에는 벽련암이다. 서래봉 중봉 밑에 있어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기이한 암자다. 원래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다가 근세에 와서 영은암(현 내장사)을 내장사로 개칭하고 이 곳은 백련사라 하다가, 나중에 벽련암으로 고쳐쓰게 되었다고. 그러나 백련사가 언제 백련암으로 격하되었는지 알 수가 없단다. 그러니 꼼짝없이 이름을 빼앗긴 절이 되었다. 풍광은 내장사보다 빼어나지만 멀리까지 오려면 다리품을 팔아야 해서 거슬렸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일.

벽련암 바위산을 머리에 이고 있어 풍광이 아주 기이하다. 원래는 이 절이 내장사였다는데...
▲ 벽련암 바위산을 머리에 이고 있어 풍광이 아주 기이하다. 원래는 이 절이 내장사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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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련암 스님 한 분이 벽련암 선운당을 향해 가볍게 올라가고 있다.
▲ 벽련암 스님 한 분이 벽련암 선운당을 향해 가볍게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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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오솔길, 저만치 앞에 스님이 걸어간다. 벽련암에서도 본 스님, 걸음걸이가 꽤 빠르다. 날렵한 모습이 주로 다니면사 수행하는 스님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도 스님을 보았다. 언제 그렇게 많이 왔는지 벌써 정읍 들머리를 걷고 있었다. 내가 앞지락이 넓은 탓인지 이런 분들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많다. 각기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한 것이다.

단풍 가로수 단풍 가로수를 따라 셔틀버스가 달린다
▲ 단풍 가로수 단풍 가로수를 따라 셔틀버스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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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손님도 많고 부산하다. 그리고 안주인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 소리 없이 비빔밥 한 그릇을 먹고, 계산을 하려니 돈을 안 받는다. 기사님 것도. 난 아직 애숭이여서 그런지 이럴 때 불편하다. 돈 주고 밥을 먹더라도 내 손님에게나 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안주인이 눈에 띄지 않으니 그냥 나온다.

시간이 되었는데 세 사람이 없다. 아까 벽련암가는 길에서 만난 세 아가씨다. 전화를 해보니, 이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두고 갈 수도 없고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 기다리다 또 전화, 지금 뛰어오는 중이란다. 3분 후 한 명, 또 간격을 두고 한 명, 또 한 명. 거친 숨을 쉬면서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출발! 그래도 꺼진 불도 다시 본다는 심정으로 사람 숫자를 세어본다. 맞다. 그리고 아가씨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한다.

"휴게소에서도 늦으면 정말 두고 갈 거야."

아르바이트든 정식 직원이든 내가 하는 일은 서비스 업종.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미안하다는, 그리고 정말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을 두고 내 자리로 돌아온다. 휴우, 오늘도 무사히. 이제야 긴장이 풀린다.

덧붙이는 글 | 10월 27일 다녀왔습니다.

* 내장산 입장료 : 어른 2000원 어린이 400원
* 케이블카 요금 : 편도 4000원 왕복 5500원

* 셔틀버스는 내장사 입구에서 관광단지(제1주차장)까지는 무료이며,
매표소 안에서는 1000원입니다.



#내장산#단풍#단체여행#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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