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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우러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돌아가는 계절의 순연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와 귀를 열어주고 찌들은 영혼들을 흔들어 빈 마음을 가득 채워줍니다.
 

풍경(風磬)을 처마 끝과 마당 출입문에 달아놓고 또 다른 자연의 소리를 듣습니다. 풍경 소리의 울림은 단순한 쇳소리가 아니고 자연으로부터 침묵과 영혼을 퍼 올려 주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여름에는 풀벌레 새소리와 더불어 더위에 지친 몸을 닦아주고, 가을에는 설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혀 줍니다.

 

요즘처럼 온 세상이 탱탱하게 얼어버린 한 겨울 밤에 듣는 풍경소리는 유별납니다. ‘땡그랑 땡그랑’ 한음절의 단순한 쇳소리가 정적을 흔들며 영혼의 소리로 들려옵니다. 들을수록 서걱거리는 마음을 따사로이 적셔주고 굳어버린 머리 속을 말갛게 씻어 내립니다.

 

몇 해 전 여름, 중국 소주 한산사에 갔을 때 소주가 자랑하는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에 '밤중에 들려오는 저녁 풍경소리'란 구절이 마음에 들어, 조만한 풍경 하나를 사다 오막살이 추녀 끝에 매달아 놓고 은은한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달랑대는 종소리에 풍교를 건너며 중국의 낙원 소주에 두고 온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일, 또 하나의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경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옵니다. 끌어 오르는 번뇌 망상을 씻어 내리고 더러워진 몸뚱이를 털어 버리라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그토록 잘난 체 해온, 위선으로 도배질한, 내 얼굴을 살펴보라 합니다. 눈엔 눈곱이, 코에는 콧물이, 입에서는 가래침이 가득합니다. 항문 배꼽 등 구멍 나 찌들은 곳마다 속물을 씻어내라며 성화를 부려댑니다.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얻어맞으며 살아갑니다. 쇳덩이로 제 몸을 후려치고 몸부림을 잠재우며 은은한 소리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만났을까. 쇳덩이가 제 몸을 달궈내며 ‘땡그랑’거리는 이유를 올 한해가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겨우 알아차릴 듯합니다.

 

달력 한 장이 덩그러니 달랑거립니다. 올해도 또 그렇게 세월은 우리 곁을 떠나려는가 봅니다.한 해를 보내며 어떤 소리로 일년을 채웠나 되돌아봅니다. 헛된 말로 사람을 속이고 번드르르한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려 허송한 것은 아닌지….

 

지금 서쪽으로 넘어가는 동지섣달 짧은 해가 노루꼬리만큼 서산마루에 걸려 있습니다. 사위어가는 저녁노을을 받아 황금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또 풍경을 울려 댑니다.

 

오늘 밤엔, 한 해 동안 무디어진 눈과 귀를 풍경소리에 담아 깨끗이 털어 버리고, 영혼의 울림을 되새김질하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까 봅니다. 가슴에다 또 하나의 풍경을 달고 우레와 같은 침묵을 배우며 말입니다.

 

‘땡그랑땡그랑.’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클릭하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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