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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교육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세상은 더욱 시끄러워진다. 환영하는 쪽도 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인수위는 "기러기 아빠를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영어교육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오마이뉴스>는 25일 강남의 영어유치원과 학원가, 그리고 영국문화원을 다녀왔다.

[영어유치원] 7살 원생 - "Who are you?"

 대치동에 있는 A영어유치원에 비치된 외국 '원서'. 이곳에서 한글을 보기는 어렵다.
 대치동에 있는 A영어유치원에 비치된 외국 '원서'. 이곳에서 한글을 보기는 어렵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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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강남 대치동에 위치한 'A' 영어 유치원에 들어서자 7살 남자 아이가 물었다. 물론 한국 아이다.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했다. 영어로 답해줘야 하나, 그냥 한국말로 해야하나 고민이 됐다.

"He's parents of student."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옆에 서 있던 박모 상담실장이 구세주처럼 대신 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Wow really? Nice to meet to you!"라며 손을 내밀었다. 얼떨 결에 아이와 악수를 했다.

사실 기자는 미혼이지만, 영어유치원 상담을 받아보기 위해 학부모라고 밝혔다. 멋쩍어져서 이번엔 기자도 영어로 물었다.

"What's your name?"
"I'm sam"

또다시 어리둥절해졌다. 박 실장은 "유치원에서는 영어로 된 닉네임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치원의 신발장에 붙은 이름표에는 모두 'Allison' 'Jolly' 'Tomson' 등의 영어 이름만 적혀 있었다. 신발장만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당연히 교재는 영어로 돼 있고, 동화책도 미국이나 영국의 '원서'다.

교실에서는 외국인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 동요가 들렸다. 물론 영미권 동요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면에는 교실 "only speak English"가 적혀 있었다.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조심하세요"가 아닌 "One step at a time. Be careful"이라고 적혀 있었다.

A영어유치원에는 5~7세까지 약 150명의 원생들이 다니고 있다. 이 원생들은 오전 9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영어로 듣고, 말하고, 쓰면서 생활한다. 물론 주 2시간 정도는 모국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1개월 등록금은 92만원으로 일반 유치원에 비해 약 3배 정도 비싸다. 그래도 영어 조기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A영어유치원에는 강남만이 아니라, 송파와 서초에서도 아이들이 '원정'을 온다.

학부모들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교실마다 카메라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의 모습은 실시간 인터넷으로 '생중계' 된다. 학부모들은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만 연결하면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교사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고, 아이들 인권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박 실장은 "부모님들 안심시켜 드리는 데 좋고, 실제로도 많은 분들이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이곳에서 3년 과정을 마치면 고등학교 영어책을 읽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며 "글로벌 시대에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초중고 시절의 높은 과외비를 생각해도 영어유치원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영어 교육이 강화되면 영어 유치원의 인기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한영국문화원.
 주한영국문화원.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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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원] 원장 - "솔직히 우리야 만세지!"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간곡히 부탁한 것도 아니다. 우리도 놀랍다. 이렇게 빨리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될 줄이야… 우리야 사실 뭐, 솔직히 '만세'다. 이젠 우리도 당당한 교육 주체로 인정해달라. 그게 교육은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다. 실체를 똑바로 보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

강남 대치동에서 어학원을 운영하는 김성균(가명·45) 원장의 말이다. 김 원장은 현재의 심정을 솔직하게 "만세!"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사교육 시장이 생각만큼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고 확신했다.

이미 팽창할만큼 팽창했다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대신 그는 "과거보다 안정적 학원 운영이 가능해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다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학생들과 원활하게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교사들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그런데 사교육 시장에는 원어민 교사들과 영어 좀 되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그러면 당연히 사교육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똑같이 영어로 수업을 해도 한 반 30명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학교와 10명 내외로 하는 학원이랑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겠냐"며 "학교에서 영어를 책임지겠다는 이명박 당선인 쪽의 정책은 현실을 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밝혔다.

김 원장은 "초등학생 모집을 늘리기 위한 구상으로 요즘 많이 바빠졌다"고 웃었다.

[주한영국문화원] 예은 엄마 - "교육 정책 뭘 해도 믿음 안 간다, 이젠 지쳤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예은(가명)이가 주한영국문화원에 설치 된 컴퓨터 앞에 앉아 영어 놀이를 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예은(가명)이가 주한영국문화원에 설치 된 컴퓨터 앞에 앉아 영어 놀이를 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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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젠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놔도 믿음이 안가요. 여건만 되면 아이를 외국에 보내고 싶어요."

안소은(가명·35)씨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딸 예은(가명)이를 보며 말했다. 예은이는 주한영국문화원에 마련된 교육용 컴퓨터 앞에 앉아 영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안씨의 집은 인천 계양구에 있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영국문화원과는 꽤 먼 거리다. 그럼에도 안씨는 딸을 영국문화원이 운영하는 어린이 영어교실에 보내기로 했다. "학원보다 믿음이 간다"는 게 이유다.

딸 예은이는 오는 3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1시간 30분의 영어 수업을 위해 인천 계양구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와야 한다. 물론 안씨도 함께 온다. 예은이가 수업을 듣는 동안 안씨는 복도에서 책을 볼 생각이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딸과 함께 다시 좌석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7주 수강료는 32만5000원이다. 일반 사설 학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힘들겠지만 어쩌겠어요. 이젠 뉴스에서 교육 관련 소식만 나오면 부담이 돼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벌써 대입 소식에 눈과 귀가 쏠린다니까요. 이게 올바른 교육인지 참…."

안씨는 예은이 교육 때문에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영국문화원 복도에는 안씨와 같은 학부모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며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오후 4시 15분.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과 학부모의 '상봉' 영국문화원이 복잡해졌다.

영국문화원 관계자는 "늘 있는 풍경인데, 정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교육 정책이 바뀌었다고 사람들이 더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방학을 이용해 외국에 나간 학생들이 있어서 지금은 오히려 덜 혼잡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둔 김성은(42)씨는 "새 정부 쪽은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인다고 하는데 그걸 어느 부모가 믿겠냐"며 "뭘 해도 똑같고, 게다가 사교육 시장만 키워줄 것이면 그냥 하던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 손을 잡고 잠시 침묵하던 김씨는 "아이들도 힘들겠지만, 이젠 우리 부모들도 지긋지긋하고 지쳤다"고 말했다. 김씨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울상이었다. 김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길을 재촉했다.

그는 "이젠 글짓기 학원에 가야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영어#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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