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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산, 장산의 돌서렁 찾아서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재송동 옥천사 방향에서, 장산 정상에 올라 안적사에서 폭포사로 산행코오스를 잡았다.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옥천사와 안적사, 폭포사를 다시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몇 년 전에 지인들과 재송동 방면에서 두어 번 올라갔던 기억을 더듬어 가보았더니, 그 사이 너무 집이 많이 들어섰다. 해서 옥천사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산행길에 접어들었는데, 옥천사가 보이지만, 산문 찾기 너무 어려워 먼발치에서 옥천사만 보고 산행길을 재촉했다.

 

장산의 돌서렁 전설, 바다의 물고기들이 '석어'로 변했다

 

장산은 여느 유명세를 타는 산에 비해, 미지의 신비를 간직한 산이다. 장산 기슭에는 크고 작은 돌바다가 수십 군데 있다. 돌밭을 애추, 테일러스(talus), 너덜겅이라 하고, 돌서렁으로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개벽이 된 이후, 바다 용궁의 용왕을 따라온 수많은 물고기들이 바위로 변해서 돌서렁이 생겼다고, '가마골 향토 역사연구원'의 주영택 원장은, 장산 돌서렁의 안내문을 통해 밝히고 있었다.

 

등산로의 입구부터 넓고 긴 돌서렁이 한없이 이어졌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길이라 기분이 상쾌하다. 돌 서렁의 돌탑들이 돌바다 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누가 세워두었는지 알 수 없는 돌탑들이 여러 개나 서 있었다. 저토록 돌탑을 쌓을 수 있는 정성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장산의 이름의 유래는 장초나무(거친 복숭아, 산도(돌복숭아))에서 비롯

 

등산로를 따라 걷는 재미도 괜찮지만, 돌서렁 길을 따라서 산행하니 여느 산행에서 느낄 수 없는 등산의 맛이 제법이었다. 무엇보다 돌서렁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시가지의 풍경도 다른 날과 달리 더 운치가 있었다. 높고 우람한 돌과 바위를 만날 때마다, 뒤돌아 보는 돌서렁은 감동 그 자체의 장관이었다. 만어사의 더덜겅이 유명하고, 금정산의 더덜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그에 비교되지 않는 장엄미가 있었다.

 

산행길은, 재송동 체육시설에서 약수터가 있는 곳까지 제법 나에게는 길이 가팔랐다. 장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이 가파른 길을 이용해야 여기서는 지름길이라, 약 1시간 정도 걸어서야 장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돌길이라 무척 힘들어 천천히 올랐다. 군데군데 오래된 소나무 숲이고, 그 천 년 소나무들은 천 년 바위와 어울려, 겸재 선생의 산수화 속에 들어온 듯했다.

 

일만개의 돌 속의 바다, 그 물고기들 헤엄치고 있었네.
돌 속에서 쏟아지는 그 바다를 거슬러 올라갔었네.
내 어릴 적 검정 고무신 한짝 둥둥 떠 내려 오고 있었네.
할머니 하얀 고무신 배 한척 나를 태워주었네.
달이 일렁이는 돌탑을 떡시루처럼 머리에 이고, 
일만개의 물고기들 앞장 세워 용궁을 찾아갔네.
불타는 노을바다에 장산 혼자 잠기어 갔네. 
 
- 자작시 '장산 돌서렁에서'
 

길은 언제나 길을 부르고, 정상에서 동래 방면의 산행 길을 돌아서, 안적사로 향했다. 입춘이 지났지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서 계곡길은 매우 위험했다. 군데군데 얼음이 꽁꽁 얼어서 빙판길이었다. 조심조심해서 장산의 억새군락지에서 '장산산악회'가 주최하는 시산제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어 잠시 구경했다. 요즘 보기 드문 구경거리였으나, 목표의 산행을 두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가 없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나만의 장산 산행지도 만들며

 

정상에서 안적사로 내려가려면 가파른 임도(시멘트)를 타야 한다. 그래서 사찰 옆의 숲길을 이용했다. 이 길은 어느 위치에서든 앞이 탁 트여 경관이 좋다. 등산코스로는 정말 괜찮은 길이다.

 

숲 속에는 새들이 와서 노래를 불렀다. 무슨 새들인지 나뭇가지의 잎에 가려서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무심하게 무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안적사에 도착했다. 여느 때는 고적한 산사 풍경인데, 왁자한 분위기였다. 모처럼 예불을 드리려고 했는데, 신년 법회를 열고 있었다. 대웅전 댓돌 위에 스님들의 고무신과 불자들의 신발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나는 대신 대웅전 앞에서 합장하고, 내가 아는 시 같은 불경 하나 외웠다. 

 

버들가지 청정한 물

삼천세계 두루 뿌려

팔공덕수 공한 성품

인간 천상 이익하니

아귀들은 고통 벗어

죄와 허물 소멸하고

불길 변해 연꽃 되네

'거향수찬(향수 받드는 찬탄)' 

 

여우눈 만나다

 

지난번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안적사 경내를 둘러보고, 구곡산 방향의 등산로를 향했다. 제법 큰 돌탑에서 구곡산 가는 길과 길이 연결되어 있어, 쉽게 구곡산을 오를 수 있었다.

 

시간이 점심 때를 한참 지나서, 구곡산 억새 군락지에서 먹는 점심 도시락 맛이 꿀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소리가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일까. 느긋하게 보온병의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장산 마을을 지나서, 폭포사로 향하는데 흰 꽃가루 같은 게 흩어졌다. 눈으로 구별하기 힘든 눈이었다. 넓은 하늘의 한 편은 너무 맑은데, 한 편의 하늘에서, 여우비가 아닌 여우눈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뿌리고 있었다.

 

버들피리 그리운 봄이 왔다

 

부지런히 내려오고 있는데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애드벌룬을 달고 어디론가 길게 날아갔다. 처음으로 만난 이 산행길,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와 함께 물소리도 어디론가 흩어진다.

 

그 물소리 따라 폭포사에 도착했다. 염화 미소의 관음보살상에 마음의 기도를 드렸다. 절실한 불자는 아니지만, 속 예불을 드리고 나니, 마음이 나비처럼 가볍다. 그런데 날씨는 참 변덕스럽다. 장산의 정상은 꽁꽁 얼음이 얼었는데, 개울가에는 귀여운 버들강아지가 많이 피었다.

 

어릴 적 버들피리를 만드느라 손을 다쳤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어디선가 버들피리 소리 나는 듯도 하다. 파랗게 물이 오르는 나무들 보니, 정말 봄은 봄이다. 대천 호수 위의 헤엄치는 오리떼들, 오늘따라 내 마음처럼 무척 여유 있어 보인다.

 

모처럼 미지의 세계를 유람한 듯한 여유자적의, 올해로서는 마지막 겨울 산행이다. 아니다. 봄, 여름, 가을 지나 다시 올 그 겨울의 첫 산행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월 24일 다녀왔습니다.


#돌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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