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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월 25일부터 2박3일동안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어린이 역사 캠프 2기 - "나, 역사가와 기자의 만남"'이 열렸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대학생 시민기자인 박상익 기자는 이 캠프에 지도교사로 참여했습니다. [편집자말]
 광성보에서 모두 함께.
 광성보에서 모두 함께.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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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커서 어린이가 된다.

나는 아기를 좋아한다. 금귤만한 손과 구슬 같은 눈이 반짝이고, 그 작은 입에서 옹알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나 입이 헤벌어진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엄마 등에 업힌 아기의 눈을 보면 그 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라고 여길 정도다.

그러나 어린이는 사절이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투정을 부리며 우는 아이를 보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떤다.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사촌동생들과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면 진이 쫙 빠진다. 아기는 아예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자신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시켜주면 잠잠해진다. 하지만 아이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인터넷이란 '신무기'를 장착해 더욱 대하기 어려운 상대가 되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와 저글링(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의 합성어인 '초글링'이란 말까지 나왔으랴. 그 옛날에도 파피루스에 "요즘 녀석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라고 쓰여 있지 않았던가. 

아기는 Yes! '초글링'은 No!

그래서 2월 25일 부터 2박3일간 '오마이스쿨 어린이 역사 캠프'에 지도교사로 참여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난 약간 꺼려졌다. 아니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간 기사 쓸 때 많이 도와주던 <오마이뉴스> 선배 기자의 부탁이라 섣불리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심각한 고민 끝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한 번 부딪혀 보는 거야. 초글링이 뭐가 무서워! 난 어른이잖아!'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교육 중 쉬는 시간에 맛있는 고구마를 '냠냠'
 교육 중 쉬는 시간에 맛있는 고구마를 '냠냠'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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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그날(?)'이 왔다. 2월 25일 강화도 오마이스쿨로 가는 버스 안. 옆자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친구의 입을 빌려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데도, 아이들은 쑥스러운지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너희 집 냉장고는 어떻게 생겼니?" 같은 우스개 질문을 해보라고 하니 정말로 "너네 집 냉장고는 양문 냉장고니?" 하며 서로 자기 집의 가재도구 현황을 묻는다. 이런 걸 두고 '대략난감'이라고 하나?

말이 없는 아이, 부모님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듯 뽀로통한 얼굴의 아이,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

아! 이 아이들과 함께 무사히 2박3일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도착하기도 전부터 '불안의 해일'이 몰려온다.

아이나 어른이나 처음 만나는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어색함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점점 외둥이들이 많아진다더니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말 걸기', 참 어렵다.

열심히 받아 적고 기사까지 쓰니 영락없는 '기자'네

 강화도 광성보에서 열심히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는 어린이 기자.
 강화도 광성보에서 열심히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는 어린이 기자.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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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오마이스쿨에 도착했다. 그리 넓진 않지만 전깃줄 없는 넓은 하늘을 보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선생님 소개 때 "운동 좋아하는 아이들과 놀아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터라 활달한 녀석들은 오자마자 축구를 하자고 성화다. 하지만 계획된 일정이 잡혀있기에, 조별 모임을 하고 바로 강화도 역사 탐방을 위한 준비를 했다.

강화역사박물관·연미정·고인돌·강화갯벌과 전등사까지.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차 역사와 생태의 보고인 강화도에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갔다. 역사 전문가인 조민재 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자신이 보고 느낀 점을 꼼꼼히 기록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기자다.

강화도는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있는 땅'이라고 한다. 고인돌부터 시작되는 선사시대의 흔적과 외세 침략의 가슴 아픈 지난 날. 그리고 남과 북이 철책을 치고 맞서는 현실까지. 하지만 통일이 된다면 어느 곳보다 주역이 될 그 곳. 아이들은 역사의 향기 속으로 점차 빠져들었다.

사전조사를 하고 떠나도 현장에서 만나는 궁금함으로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도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었던 장소인 연무당 옛터에서 "연무당은 왜 없어졌나요?"란 돌발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왜 우리는 불평등하게 조약을 맺었어요?"
"미군과 프랑 군이 쳐들어와도 강화도에서 다 막았는데, 그 왜 강화도에서 일본이랑 이런 조약을 맺었어요?"

'왜'를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진정 '어린이 기자' 다운 모습이었다. 

약하게 내리다 그칠 것 같은 눈이 펑펑 쏟아져 강화도는 순백의 정원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던 아이들도, 외규장각 앞에서 공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눈싸움으로 마음껏 달랬다. 요새 아이들이 아무리 영악하다지만 눈앞에서 해맑게 뛰어노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아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의 '호구조사'는 없다, 심층 친구 인터뷰!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어린이 기자들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어린이 기자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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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캠프의 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글쓰기 교육이다. 아무리 좋은 곳을 탐방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해도, 그날 그날 정리해 두지 않는다면 그 추억은 희미하게 남고 만다. 그 점을 막고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어 사진과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도록 지도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힘들어했지만, 점차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좀 더 자신의 느낌을 담으면 훨씬 좋은 글이 되겠는걸?"
"오늘 선생님께 배운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해보지 않겠니?"

아이들이 글을 쓰는 동안 다섯 명의 지도교사들은 아이들의 의문점을 해소해주며 아이들의 블로그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의 보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이 쑥쑥 자랄 때일 것이다.

처음엔 몇 줄 안 되는 '일기'를 쓰던 아이들이 조언을 듣고 도움을 구하면서 점차 세련된 '기사'를 쓰게 됐다. 하루 일정이 끝난 밤에 아이들의 블로그를 살펴보던 지도교사들은 초등학생 이상의 글쓰기 실력을 갖춘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 짝을 지어 친구를 인터뷰하는 시간도 있었다. '타인에게 말 걸기'와 '소통'을 가르치는 의미있는 수업 시간이었다. 글쓰기와 인터뷰 교육을 받고 나니 더 이상 '호구조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친구의 취미나 장래희망을 비교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종종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어 노는데 열중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공부'가 아닐까.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이곳 강화도가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어린이'가 되렴, 나도 '진짜 어른'이 될게

아이들이 글쓰기와 컴퓨터를 배우는 시간엔 여기저기서 "선생님!"이란 소리가 들린다. 아직까지도 가르침을 받는 대학생이기에 선생님이란 호칭이 낯설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작은 지식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고 그것이 이 사회의 새싹인 어린이들이란 사실이 기뻤다.

"아이들을 예뻐하시네요. 생각 외로…", 같이 캠프에 참가한 다른 지도교사 선생님이 말을 건넨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아이들끼리만 마음을 연 것이 아니었나보다. 같이 강화도를 탐방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서로 교감하다보니 나도 타인에게 다가서는 법을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즐거웠던 캠프 이야기를 하며 재잘거리는 어린이들 보며, 기자를 꿈꾸는 나의 새로운 경쟁상대(?)가 등장 했음을 느꼈다. '어린이 기자들'의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아이들이 블로그에 쓴 기사는 대학생인 내가 봐도 "정말 잘썼다"며 감탄할 정도였다. 그저 어린이들을 '무서운 초글링'라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다. '어린이 기자들'은 취재할 땐, 진짜 기자처럼 진지했고, 글 실력도 대단했다.

 오마이스쿨을 떠나기 전, 내가 담당했던 5조 어린이들과 함께
 오마이스쿨을 떠나기 전, 내가 담당했던 5조 어린이들과 함께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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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이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무사히 캠프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서운함이 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겠지만, 내가 맡은 아이들은 더욱 더 생각날 것이다.

조숙한 숙녀 예림이. 역사를 좋아하는 승범이. 귀여운 여지. 의젓한 현우와 서로 촌놈이라고 장난을 치던 개구쟁이 로빈이와 큰범이. 다들 멋지게 자라주렴! 선생님도 멋진 어른이 되도록 노력할게!

덧붙이는 글 | 3기 어린이 생태·역사 캠프 "어린이 기자, 강화도를 '인터뷰'하다"는 오마이스쿨에서 3월 22일부터 1박2일 동안 진행됩니다. 강좌 소개 바로가기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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