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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봄입니다.

다시 난세가 온 듯합니다.

그래서 미친 듯

춘삼월에

우리

병신들

저들의 언어로

떠들고 신나게 웃듯이            

난장춤이라도

서로 어깨 걸고

가슴 엮어

추어봅시다요.

징글토록.

무언가 우리 가슴 폐부에서

소리라도 질러보고

낙화유수

뽑아보고

흐르게 합시다.

그려.

서서히 벙그는

찬란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최자웅 ‘병신춤’ 모두

 

 

천민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시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창작한 시도 잘 포장된 상품이 되어 일반 소비자들에게 값 비싸게 잘 팔려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로또복권’과도 같은 천민자본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고, 시 정신 하나로 똘똘 뭉쳐 시대의 새로운 씨알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2006년 10월, 제1회 시낭송회를 연 뒤 ‘우리시대시인들’이란 모임을 만든 80년대 민중시인들이 제4회 시낭송회와 함께 음악과 출판기념회가 어우러지는 ‘하루주막’을 펼친다. 오는 16일(일) 오후 1시부터 밤 12시까지 종로3가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카페 ‘마르소’(02-766-3895)에서 열리는 ‘봄맞이 난장축제’가 그것.

 

‘우리시대시인들’(공동대표 최자웅 김창규)은 지난 70~80년대 춥고 어두웠던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민중시의 실천을 위해 투쟁의 일선에 서서 온몸으로 싸웠던 60여 명의 시인들이 모인 시인단체.

 

현재 고문으로는 김규동, 이기형, 민영, 김준태, 양성우, 윤재걸 시인이, 이사로는 이주형, 배명식, 박희호, 이적, 전무용, 이소리, 박남원, 김이하, 박광배, 김연자, 채상근, 정춘근, 유명선, 윤일균, 이상진, 조명, 김기철 시인이 맡고 있다.

 

이들 시인들은 “우리는 시대가 떠나고 역사정신은 옛것이 되었다는 통념을 깨고 아직도 역사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유와 민족의 구조적 모순이 해체될 때까지 홀로서기를 억척스레 진행시켜 나가고자 한다”고 못박음으로써, 특정 문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파벌과 섹트주의에 분명한 선을 그으며 공동체적 정체성 회복을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인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시의 보금자리를 이끌고 나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동안 회원들의 주머니 쌈짓돈으로 세 차례의 시낭송회를 열었으며, 무크지 발간, 행사 규모 확대 등에 따른 열띤 의견을 나눴다. 그중 늘상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재정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들 시인들은 오랜 고민과 열띤 토론 끝에 2008년도 운영비 마련을 위한 하루주막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저 흔히 열리는 그런 하루주막이 아니라 볼거리, 듣거리, 먹거리, 느낄거리가 있는 ‘봄맞이 난장축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시대에 충실한 문인이기를 선언하였기에 우리의 값진 노력으로 운영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작고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실천코자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사업은 그 선상에서 시작되고 연결될 것입니다.”-제4회 시낭송회 봄맞이 난장축제 ‘인사말’ 몇 토막 

 

16일 낮 12시부터 카페 마르소에서 열리는 ‘우리시대시인들 봄맞이 난장축제’는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행사는 저녁 5시 우리시대시인들의 시낭송회다. 이번 시낭송에는 최자웅,  김창규, 박희호, 이적, 채상근, 김교서, 이주형, 유명선, 김훈기, 김형효, 김이하, 김연자, 이상진, 조길성 시인이 자작시를 낮게 흐르는 음악에 맞춰 읊는다. 이와 함께 소식지 창간호 <우리시대시인들> 출간기념행사도 함께 어우러진다.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제2부 행사는 조명 시인의 첫 시집 <여왕코끼리의 힘>(민음사) 출판기념회다. 충남 대전에서 태어난 조명 시인은 2003년 계간 <시평>에 ‘여왕코끼리의 힘’ 외 5편의 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펴낸 조 시인의 첫 시집은 “굴절되지 있지 않은 페미니즘과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 존중이 긍정적이고 개방적이며 활기차게 선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보아라, 나는 선출된 여왕이므로 곧 법이다

가장 강한 그대는 우리들의 길잡이, 나의 남편이 되어라

선두에 서서 몸 바치는 백척간두의 생

최고의 건초와 여왕의 믿음을 받으라

행여, 그대가 독불장군의 힘을 믿게 된다면

나는 뭉쳐진 무리의 힘을 사용할 것이다

짓밟힌 만신창이로 추방될 것임을 미리 알라

두 번째 강하고 매력적인 당신, 그대는 여왕의 경호원 애인

나의 배후에서 우리들의 길잡이를 견제하라

달콤한 건초와 은밀한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대 또한 징벌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잊지는 말라

부드러운 경고는 두어 번뿐이다

우리는, 씨방을 말리는 건기의 샘을 찾아가는 여정

나의 무리들은 모두 기억하라

한 마리 코끼리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나는 너희들과 함께, 젖줄과 숨줄과 힘줄로 한 덩어리 되어

한 마을을 초토화할 것이다

 

- ‘여왕코끼리의 힘’ 몇 토막

 

오후 8시부터 시작되는 제3부 ‘하루주막’은 우리시대시인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만남과 대화의장’이다. 이날 자정까지 이어지는 ‘하루주막’에는 시인과 가수, 음악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깜짝 작은 음악회’가 열려 이번‘봄맞이 난장축제’의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사의 총연출을 맡은 이적 시인은 “우리시대시인들 곁에 오면 역사가 살아 있다. 상업적 오만함이 없다. 정신이 살아있는 눈이 빛나는 시인들을 만날 것이다. 시인은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가 있다. 하지만 역사의식과 시대적 책임감에 불타는 참시인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디 오셔서 서로 사랑하며 등 기대면 체온이 따뜻해지는 속내 깊은 시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아직은 흩어질 때가 아님을 보여주자”고 말한다.

 

 

채상근 사무처장은 “문화의 권력을 향유하기 위하여 문학을 권력화시키고 말없는 문인들을 자신의 입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군상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2000년대 시의 파수꾼으로 치열한 삶과 문학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자”고 덧붙였다.

 

‘우리시대시인들’은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반역사와 싸우는 시 낭송회를 연 바 있다. 제1회는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찾아가는 시낭송 무대’, 제2회는 ‘아프간 피랍 국민을 위한 미대사관 앞 미국 규탄 시낭송 무대’, 제3회는 ‘서해바다 평화특구 지지와 성공기원 시낭송회와 1천인 선언 애기봉 민통선’행사가 그것. 

 

사무간사 김훈기 시인은 “올해도 우리는 민통선 휴전선 평화축제를 분단사상 처음으로 준비 중이다. 아직도 분단된 상황의 백성들이 분단을 잊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젖어 산다면 다른 나라의 문인들이 뭐라고 말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분단을 말하고 민족의 구조적 모순을 얘기하면 과거로의 회귀라고 말하는 사악한 그 입들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덧붙이는 글 | *하루주막 티켓(1만원) 구입/우리시대 사무처 간사 김훈기(010-3335-6706)


#우리시대시인들#하루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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