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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친절한 대통령’이다.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생필품 50개의 물가 관리를 특별 지시했다. 어제(17일) 구미산업단지에서 열린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자리에서였다.

 

이 대통령은 “물량 수급을 통해 생활필수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에 대해 우리가 집중 관리하게 되면 전체적 물가는 상승해도 50개 품목은 그에 비례해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절한 물가관리지침'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생필품 50개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인다면 급등하는 물가고에 허리가 휘고 있는 서민들로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찍은 서민들이라면 박수 치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게 그렇다. 경제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 대통령의 지시가 과연 먹힐까 의문이다.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인지 아리송한 것이다. 다른 물가가 다 오르는데 생필품 가격 50개만 어떻게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동안 시장경제에 너무 친해져서일까?

 

사실은 생뚱맞게 들리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시장친화적 정책을 표방했던 이 대통령인데, 어떻게 시장(물가)을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것도 생필품 ‘50개’만 골라서 하겠다는 것 아닌가. 불행(?)히도 그 물가 관리 대상에 포함되는 업자들은 앞으로 밑지고 장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오늘(18일) 신문들은 일제히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하고 나섰다. 사설 제목만 보더라도 그렇다. ‘답답하고 한가한 정부의 위기대응 자세’(<한겨레>), ‘비상 걸린 경제, 미덥지 않은 경제팀’(<경향신문>), ‘금융불안, 정부의 신뢰도 제고가 중요하다’(<동아일보>), ‘환율은 시장에 맡겨라’(<중앙일보>) 등이다.

 

종합하면 미국발 금융위기에 고유가, 여기에 더해 원달러 환율 급등이라는 3각 파도가 물밀듯 몰려오고 있는데 정부의 대책이나 태세가 너무 답답하고, 한가하며,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신문 사설들을 보면 이 대통령이 언급한 ‘생필품 50개 물가 특별 관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들 신문들은 왜 이 대통령이 거듭 위기를 강조하면서 내놓은 ‘친절한 물가관리 지침’을 왜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왜 다들 미덥지 못하다고 아우성일까? 대통령이 직접 물가를 잡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 왜 엉뚱하게 “환율은 시장에 맡기라”는 소리나 하고 있을까?

 

강만수 발 환율 이상급등... 조중동도 "환율 놔둬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유가도 고유가지만, 최근 나홀로 이상급등하고 있는 환율이 물가급등의 또 하나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세계적인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만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환율정책 기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유독 원화만 추락하고 있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 기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새 정부가 무리하게 높여 잡은 성장률 달성을 위해 원화를 약세로 가져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환율 폭등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 진원지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가 “‘정부가 원화 약세를 유도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의도적으로 주려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정작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는 등 여러 가지 악재로 경제 전반이 위기 국면으로 빠지고 있는데도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한겨레>)는 것이다.

 

새 정부에 우호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정책 당국자들이 환율 정책이나 중앙은행 독립성 같은 문제를 놓고 학술 토론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시장 안정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안정을 깨기 십상”(<동아일보>)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그 당사자들을 직접 거명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최중경 1차관은 ‘환율주권’ 같은 발언으로 쓸 데 없이 오해를 불”러 “환투기 세력들이 이들 환율 매차의 등장을 보면서 원화 약세 쪽으로 베팅을 시작했다는 관측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며 “환율은 제발 그대로 둬라”고 부탁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실장은 지난 3월 8일자 기명칼럼 ‘강만수 장관이 진짜 사면받는 길’에서 이런 사태를 경고한 바 있다. 송희영 논설실장은 이 칼럼에서 강만수 장관의 ‘환율주권’ 발언 ‘중앙은행 역할론’ 등을 거론하며 “중앙은행을 조폐공사 인쇄기나 돌리는 ‘하명 수행기관’으로 삼겠다면 과거 군사정권과 뭐가 다르겠느냐”고 질타했다. “새 경제부처 장관들 중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설명해 줄 조언자가 가장 절실한 인물은 아무래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인 듯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환율 급등 방조하면서 물가는 잡겠다?

 

이명박 정부는 강만수 장관 등이 방아쇠를 당긴 원달러 환율 급등 추세를 당분간 관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어제 한국은행이 긴급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기획재정부 같은 경우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가 이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이면에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경제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고,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을 경우 성장률 6% 달성을 전제로 한 경제운용 방안의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정부는 무대책 침묵’/강진구 기자)이라고 보았다.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행보라는 풀이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정부가 “지난 1월 경상수지 적자(26억 달러)가 11년 만에 최대치로 늘어나는 등 경상수지가 빠르게 악화하면서 정부가 환율 상승이라는 손쉬운 카드를 그 해법으로 택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생필품 50개 물가 ‘특별관리’ 지침은 무엇인가? 병주고 약주는 것일까. 국민들도 그런 친절이라면 ‘노 탱큐’다.


#환율 비상#물가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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