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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은하씨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한강 둔치에서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주최 '한반도 대운하 공약실천 촉구결의대회'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부르고 있다.
 가수 이은하씨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한강 둔치에서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주최 '한반도 대운하 공약실천 촉구결의대회'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부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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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씨. 가수 이은하씨가 한반도 대운하 반대가 아닌 찬양 노래를 불렀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사와 노래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신이 부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천과 물줄기가 있는데 / 그 경치를 이제까지 버려두고 있었네 / 모두가 버려진 물줄기 속에(새로운 희망이 있어) / 모두가 노력 한다면(우린 웃을 수 있어) / 1000만년을 이어나갈 우리의 꿈이 담긴 한반도 대운하(그 물길 하나) / 다시 살아나는 경제 다 함께 웃을 수 있어 우리 할 수 있어(할 수 있어요) /...중략... / 국민 모두가 바라는 건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반도 대운하 / 소외된 사람들의 휴식처 대한민국 방방 곡곡 사랑이 넘쳐 흘러 / 내가 원하고 후대 후손이 바라는 한반도 대운하...

가사에는 물줄기가 버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교만한 게 인간입니다. 물줄기가 언제부터 흘렀는가를 안다면 이러한 가사를 만들 수가 없겠지요. 초등학생에게 물어도 비웃음 당할 가사입니다.

당신의 '한반도 대운하' 노래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섰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서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비에 젖은 산자락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이은하씨는 흥겹게 "내가 원하고 후대 후손이 바라는 한반도 대운하~"를 노래합니다.

시인이 어떤 시를 쓰든, 소설가가 어떤 작품을 쓰든, 영화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창작에는 자기 검열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객이나 독자의 입장에서 그저 작품성이 있으면 칭찬하는 것이고, 작품성이 떨어지면 슬쩍 눈감아 주면 그만인 겁니다. 그러하니 가수가 어떤 노래를 하는지 상관할 바 또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은하씨가 불렀다는 '한반도 대운하' 노래만큼은 상관하고 시비걸고 싶습니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양식이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심까지 느끼기 때문입니다.

첨단의 시대를 걷는 요즘 운하가 무엇입니까. 운하 만들면 경제 살아난다는 정신나간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강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후손에게 빌려 쓰고 있을 뿐입니다. 고이 사용하다 물려 받은 그 모습 그대로를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연 유산입니다. 그 정도는 상식 아니던가요.

지금도 신부님과 목사님, 수녀님, 교무님 등의 성직자들과 시인, 소설가, 가수 등의 문화예술인, 주부와 어린아이까지 많은 사람들이 대운하를 막아 보겠다며 수천리 물길을 걷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사람의 철없는 망상이 많은 이들을 걷게 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은하씨는 물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반도 대운하를 노래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30여년 전에 석유가 나온다며 박정희 정권 때 <제 7광구>라는 노래를 유행시킨 적이 있습니다.

'제7광구'부터 '한반도 대운하'까지 정권의 나팔수 역사 이어져

 가수 이은하씨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한강 둔치에서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주최 '한반도 대운하 공약실천 촉구결의대회'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부르고 있다.
 가수 이은하씨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한강 둔치에서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주최 '한반도 대운하 공약실천 촉구결의대회'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부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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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때는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로 민심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나마 댐을 만들어야 나라를 구한다는 내용의 <평화의댐>이라는 노래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인 게 우리네의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어떤 노래는 들으면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어떤 노래는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고, <직녀에게>를 들으면 분단된 조국의 아픔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은하씨의 노래를 들으면 화가 먼저 솟구칩니다. 어인 일일까요.

대중 가요는 현실을 대변하는 문화 코드입니다. 하여 그 시기에 꼭 있어야 하는 음악들이 만들어져왔습니다. 어떤 노래는 피로 만들어졌고, 어떤 노래는 눈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점에서 보면 이은하씨가 부르는 노래는 대중이 바라는 현실을 배신한 정치적인 노래밖에 되지 못합니다.

대중가요 역사 120년 동안 수많은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은하씨의 노래처럼 나라를 들어먹는 '최악'의 노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가요를 부르거나 작사 작곡한 사람들 지금 친일음악인으로 낙인 찍히고 있는 거 이은하씨는 알고 있는지요.

남인수씨가 불러 친일 논란을 겪은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日章旗) 그려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라님의 병정되기 소원입니다'는 그 제목이 <혈서지원가>입니다. 조영암 작곡 박시춘 작곡이지요.

내용은 다르지만 <혈서지원가>가 이은하씨가 신명나게 부르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노래와 어딘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정희 정권 부탁 거부한 신중현, 이명박 정부에게 올인하는 이은하

가수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 하나 공개하지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중가요>(현암사)라는 책에 실려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가수 신중현씨. 한국 록음악의 대부로 알려진 분이지요. 그 분이 실제로 겪었던 일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마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1972년이라고 합니다. 유신헌법이 공포된 해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청와대에서 신중현씨에게 전화가 왔답니다. 그 내용인즉슨, 국민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칭송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제시한 제목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노래>라고 합니다.

서슬퍼런 시절이었지만 신중현씨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거절의 대가는 참혹하리만치 혹독하게 다가왔지요. 그가 만든 노래 22곡이 금지곡으로 묶였고, 구치소 신세까지 졌다고 합니다.

만약 신중현씨가 그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떠했을까요? 순간적이지만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겠지요. 하지만 신중현씨는 속된 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대통령을 위한 노래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신중현씨는 국민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 노래가 <아름다운 강산>입니다.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불후의 명곡이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겁니다. 우리가 신중현씨를 존경하는 이유가 거기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절대권력에 저항했던 그의 역사를 평가하기 때문이지요.

가수 이은하씨와 신중현씨. 한 사람은 대통령을 위해 부나비처럼 뛰어 들었고, 한 사람은 대통령을 위한 노래를 거부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노래한 가수이기도 하지만 노래하는 법은 많이 다른 듯합니다. 시사하는 바도 크고요.

세간에는 이런 말이 나돕니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고요. 꼴뚜기는 유인촌 장관을 말하고 망둥어는 이은하씨를 지칭하더군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던 이들이 정치판에 뛰어들면 조심해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거든요. 이은하씨가 왜 망둥어가 되어야 하는지 팬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역사는 당신을 '당당녀'로 평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기자도 그렇지만 대중가수도 노래하는 철학이 있을 때 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철학이 없는 가수는 팬들의 사랑을 받기 힘들다는 것은 우리의 지난 역사가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이은하씨가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쩌다 그런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지 세상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은하씨가 <밤차>라는 노래를 부르며 멋진 율동을 보여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리송해>라는 노래로 군사정권을 풍자했던 기억 또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노래인 <한반도 대운하>는 아닙니다. 당신이 불러야할 노래가 아닌 것입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이은하씨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던 많은 팬들에게 아픔과 상처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이은하씨. 당신이 아무리 소리쳐 대운하를 찬양한다 해도 대운하는 건설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일을 대통령이라고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행동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대중가요 역사는 당신을 '당당녀'로 평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노래를 시작하고 나서 악플에 시달렸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아끼는 팬들의 마음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후회 하지 말고 이제라도 이은하씨가 걸어왔던 아름다운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한때 <아리송해> 노래를 입버릇처럼 불렀던 팬으로서 진정 어린 부탁입니다.


#한반도대운하#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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