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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격동 학고재 본관 입구와 내부. 서까래가 주는 고전미와 그림이 주는 현대미는 이우환의 주개념인 '호응'을 연상시킨다.
 소격동 학고재 본관 입구와 내부. 서까래가 주는 고전미와 그림이 주는 현대미는 이우환의 주개념인 '호응'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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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20주년(1988~2008) 기념 및 신관 오픈전(부제 Sensitive Systems)이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본관에서는 이우환전을, 신관에서는 외국작가 3인전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은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관장인 로랑 헤기가 직접 기획을 맡았다. 그는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예술을 분석하여 독창적 시각을 보여주는 평론가로 알려져 있다.

화랑이 많은 사간동을 지나서 소격동에 있는 학고재 거기에 또 하나의 미술공간이 확장되었다는 건 서울에 대형복합영화관이 들어선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 20주년을 계기로 도약기로 맞고 있다. 그동안 국내외 유수한 추상 작가들을 대거 소개하는 전문갤러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고풍스런 서까래가 보여 기분이 좋아지고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 자체가 미니멀리즘 풍의 작품 같아 번잡한 도시인의 마음을 씻어줘 뭐라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한국추상의 거장 이우환(1930~), 관계망과 조응 그리고 서구인의 분석

 이우환 '조응(Dialogue)' 캔버스와 돌을 섞은 안료와 유성물감 227×182cm 2007. '관계망-응답(Relatum-Dialogue)' 자연석 1개 철판 1개 2007. 두 작품은 서로 마주보고 있음
 이우환 '조응(Dialogue)' 캔버스와 돌을 섞은 안료와 유성물감 227×182cm 2007. '관계망-응답(Relatum-Dialogue)' 자연석 1개 철판 1개 2007. 두 작품은 서로 마주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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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술을,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우환은 생존하는 한국미술의 거장으로 현대적 지성미를 발휘한다. 일본에서 70년대 '모노하(物化)운동'에도 참여했다.

위 작품은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의 성격도 띠고 있다. 시간과 장소 등 대비되는 여러 제한된 조건과 상황 속에서 사물과 공간이 상호간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마침 독일의 미술사가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베(38)가 쓴 이우환 미술에 대한 신간 평론집 <타자와의 만남(학고재, 2008)>이 나왔다. 읽기가 쉽지 않으나 이우환의 미학을 서구인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라 흥미롭다.

이 책의 차례만 봐도 이우환의 관점이 보인다. '관계항'과 '조응'이라는 큰 제목 하에 '물질과의 대화', '압축으로서의 공간', '공간과의 대화', '현상과 지각', '경계와 개방성', '반복과 시간성', '대립과 공존', '불연속성', '채움과 비움', '공명' 등 작은 제목도 보인다.

최소 개입으로 최대 공간창출

 이우환 '조응(Dialogue)' 캔버스에 돈을 섞은 안료와 유성물감 227×182 cm 2006(접기용 Diptych). '관계망-응답(Relatum-Dialogue)' 자연석 2개 철판 2개 2007. 여기도 두 작품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우환 '조응(Dialogue)' 캔버스에 돈을 섞은 안료와 유성물감 227×182 cm 2006(접기용 Diptych). '관계망-응답(Relatum-Dialogue)' 자연석 2개 철판 2개 2007. 여기도 두 작품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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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통한 공간의 생산과 창출, 이를 무한 확대하는 것은 모든 작가의 과제이다. 공간이 무라면 예술은 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진정한 유를 만들려면 다시 무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원리에 도달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라는 이우환(1930~)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어떤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최소의 말로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현자의 어법과도 닮았다.

위 작품도 돌과 철판 그리고 캔버스가 서로 마주치고 있다. 그 사이 여백에 무한대의 공간이 생성된다. 바로 이우환의 힘이다. 이우환도 "여백의 미란 단지 그것이 비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서로 강력한 에너지를 반향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하고 그런 세계와 관계를 맺겠다는 이우환의 의도는 '관계망'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채움과 비움의 관계도 '조응'이라는 개념 속에서 용해된다. 이런 그의 미학은 이제 세계미술계에서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신관에 전시된 3명의 외국작가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 신관 입구의 전시작가와 전시장 및 계단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 신관 입구의 전시작가와 전시장 및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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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전에는 이우환뿐만 아니라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작가 주제페 페노네(G. Penone 61), 비유럽권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작업을 하는 독일작가 귄터 위커(G. Uecker 78), 폴란드가 고향인 프랑스작가 로만 오팔카(R. Opalka 77)도 참가했다. 이들은 다 유럽에서는 정상급 작가들이다.

로랑 헤기 관장은 이들의 접근방식은 달라도 예술의 본질과 창작의 근원을 찾아가는 데서는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통합, 저항, 헌신, 참여와 같은 담론에서, 또한 외면의 일상에서 파묻힌 내면의 의미를 되찾아 삶의 덧없음을 투영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한다.

자연과 교류를 통한 감정이입

 주제페 페노네 '번식(Propagazione)' 펠트와 종이 위에 동양잉크. 가운데 드로잉 70×50cm 1995
 주제페 페노네 '번식(Propagazione)' 펠트와 종이 위에 동양잉크. 가운데 드로잉 70×50cm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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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페 페노네는 1947년 이탈리아 가레시오에서 태어났고 파리국립미술학교 교수다. 예술을 통해 사회권위나 위계질서를 파괴하려는 전위미술운동가이고, 조악하고 진부한 것을 예술로 승격시킨 60년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작품에서 자연과 감정이입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특히 나무라는 매체로 동양에서 말하는 물아일체의 세계에 자신을 던져 이 둘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자청한다.

'번식'을 보면 가운데 나무나이테 아니면 나뭇잎 같기도 한데 하여간 그것이 멀리멀리 뻗어나간다. 작가가 이런 시각적 번식을 형상화한 것은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사람들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 삶을 재고하게 하면서 동시에 자연과의 친화를 생각해보라는 메시지인지 모른다.

이우환도 그의 작품을 보고 "그는 벌거벗은 나무의 형태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존속하는 생명의 강한 생동감을 표현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평했다.

날카로운 못을 종이보다 부드럽게

 귄터 위커 '그림액션(Painting Action)' 200×160cm 1992. 패널 위에 유화 본드 흰색 회반죽 1992
 귄터 위커 '그림액션(Painting Action)' 200×160cm 1992. 패널 위에 유화 본드 흰색 회반죽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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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의 작품을 보고 놀랐다. 한지 등에서 맛볼 수 있는 풍부한 질감과 따뜻한 온기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귄터 위커(1930~)는 동독 출신 못 오브제 작가다. 이우환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그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그러다가 중간 한 접점에서 만난 것 같다.

위작품은 계절의 순환과 자연의 변화 속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은 농축하여 정갈한 단색화에 담았다. 작가의 말대로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이 잔잔한 호수를 뒤흔들어 놓듯이 그의 그림 속에서 요동치는 파격적인 내재율은 결국 재창조를 위한 발판의 회오리이자 자기인식의 확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는 동서냉전과 세계대전의 비극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인류에 대한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을 통해 그 고통을 치유하려는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고통만큼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열도 커 보인다.

 귄터 위커 '구조화된 필드(Structured Field)' 200×160cm 1992. 패널 위에 유화 본드 흰색 회반죽 못 1992
 귄터 위커 '구조화된 필드(Structured Field)' 200×160cm 1992. 패널 위에 유화 본드 흰색 회반죽 못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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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오브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1957년부터 못을 대략 200톤 정도 썼다 한다. 위에도 역시 화면에 못이 그득하다. 왜 그리도 못에 집착할까. 갤러리자료에 의하면 작가에게 이는 바로 부정한 사회에 대한 항거이고 내적고통의 표시이고 치유의 도구란다. 못으로 못 박힌 아픔을 치유한다. 그렇다면 이는 이열치열의 극치다.

그도 한때 백남준이 교수로 있었던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20여년(1974-1995)에서 교수이기도 했다. 1999년에는 부헨발트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기념비'와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기도실'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브 클라인 등과 교류했고 제로그룹에서도 활동했다.

피나는 기록전쟁에서 승리자

 로만 오팔카 '1965/1-∞ Detail 487512', '1965/1-∞ Detail 489231', '1965/1-∞ Detail 4914800' 196×135cm. 단순미의 극치다. 그림 안에도 숫자가 깨알처럼 적혀 있다.
 로만 오팔카 '1965/1-∞ Detail 487512', '1965/1-∞ Detail 489231', '1965/1-∞ Detail 4914800' 196×135cm. 단순미의 극치다. 그림 안에도 숫자가 깨알처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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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작가 로만 오팔카(1931~). 캔버스에 숫자를 1부터 차례로 써나가는 길고도 지루한 작업을 하는 게 바로 그의 그림이다. 그 작업은 죽는 날까지 중단되지 않을 것 같다. 그의 단순한 작업의 반복은 바로 세월의 무상함을 무화시키는 방식이고 그의 예술을 완성시키는 한 과정이다.

검정바탕에 숫자는 흰색으로 쓰고 숫자의 크기는 다 같다. 이 세밀화(detail)는 196×135cm로 규격이 같다. 그는 작업하면서 숫자 읽은 목소리도 녹음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같은 머리모양과 복장을 하고 사진까지 찍는다.

이 세상의 모든 숫자를 없애기나 하려는 듯 그는 숫자를 쓴다. 이는 작가로서 시간을 잡아내는 처절한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기록성에 반복성이라는 장치를 합하여 뭔가를 남기는 것이다. 이는 바로 이 작가만의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매순간마다 시간을 기록하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삶의 덧없음과 쉴 새 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결국 승리자가 되고자 한다.

 작업 후에 자신을 사진 찍고 목소리도 녹음한다. 그의 변화하는 모습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로만 오팔카의 설치작품
 작업 후에 자신을 사진 찍고 목소리도 녹음한다. 그의 변화하는 모습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로만 오팔카의 설치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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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미술의 조응 속에서 빛나는 이우환

하여간 이번 전은 '남을 통해 나를 본다'고 서양 작가와 이우환을 비교해 봄으로써 그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보게 된다. 한국미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그의 미술세계가 얼마나 현대화, 세계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이 이번 전의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소격동 갤러리학고재는 20주년을 맞아 본관과 함께 신관을 개관하였다.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70 02)720-1524~6 www.hakgojae.com



태그:#이우환 , #로만 오팔카, #주제페 페노네, #귄터 워커, #갤러리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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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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